“쓰레기 버렸느냐, 이름 밝혀라”
  • 도쿄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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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제’ 도입 방침에 ‘사생활 침해’ 반발 도쿄 쓰레기 연간 4백90만t 몸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쓰레기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도쿄도가 드디어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인구 1천2백만인 도쿄도가 연간 배출하는 쓰레기 양은 약 4백90만t. 이는 실내 야구 경기장 ‘도쿄 돔’ 15개 부피와 맞먹는다.

 도코도는 일본 전국의 약 10%에 해당하는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서 연간 2천6백억엔(약20조원)을 쏟아붓고 있으며, 이에 매달리고 있는 청소국 직원만 해도 1만1천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예산과 직원만으로는 과다 포장, 사무 자동화의 영향으로 삿포로 시의 쓰레기 양과 맞먹는 연간 증가량에 대처하기는 역부족이다. 특히 쓰레기를 소각하는 청소 공장과 이를 매립하는 쓰레기 처분장이 부족해 골치를 앓고 있다.

 이에 따라 도쿄도는 지난 4월 ‘폐기물 처리 및 재이용에 관한 조례’를 새롭게 제정하고, 2000년까지 산업용 쓰레기 30%, 가정용 쓰레기 20%, 합쳐서 전체의 23%를 줄인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이 계획의 최대 문제점은 ‘반투명 쓰레기 부대’를 도입하느냐 하는 것이다. 도코도는 급격한 고도성장으로 쓰레기가 마구 불어나기 시작하던 20년전 처음으로 불에 타는 쓰레기와 타지 않는 쓰레기를 구분해 수거하는 분리수거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가연성 쓰레기는 주 3회, 쇠붙이 · 유리 · 플라스틱 쓰레기는 주 1회꼴로 수거하고 있다.

반투명 부대 사용, 분리수거 유도
 그러나 어디에나 얌체족은 있는 법이다. 특히 단독 세대가 전세대의 36%나 되는 도쿄도의 경우 주민 의식이 거의 없는 이들 얌체족 때문에 분리수거 제도가 아직 정착하지 못한 현실이다. 도쿄도 청소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이들 단독 세대가 배출하는 1인 평균 쓰레기 양은 8백50g. 일반 가정보다는 평균 1백g이 더 많다고 한다. 이는 단독 세대일수록 쓰레기 감량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것인데, 이들의 얌체 행위는 때때로 인명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도쿄도 청소국의 다나카 유키코(田中由紀子)씨는 무분별한 쓰레기 투기 행위로 작년 청소부가 중화상을 입은 폭발 사고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22년전 도쿄도는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바 있으나, 이번에 다시 반투명 쓰레기 부대를 도입하려는 것은 그러한 얌체 행위를 근절하려는 제2차 쓰레기와의 전쟁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도쿄도가 내년 1월 중순부터 실시할 예정인 반투명 쓰레기 부대 제도란 한마디로 불에 타는 쓰레기와 타지 않는 쓰레기를 철저하게 분리수거하기 위한 제도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검정색 쓰레기 부대 대신 내용물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반투명 부대를 도입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수거하겠다는 의도이다. 도쿄도는 이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내년 1월 중순부터 반투명 부대에 한해서만 쓰레기를 수거할 예정이며, 강제 사항은 아니나 반투명 쓰레기 부대에 투기자의 이름을 쓰게 하도록 할 방침이다.

 그러나 쓰레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보겠다는 도쿄도의 작전은 주민들의 반발이라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 고전하고 있다.

 도쿄도는 이 제도 도입을 앞두고 주민들에게 사전 홍보를 게을리한 우를 범했다. 도쿄도는 당초 이 제도를 10월1일부터 실시하려고 서둘러 왔으나 반투명 부대 생산이 지연됨에 따라 품귀 현상을 빚어 주민들의 큰 불평을 사게 되었다.

 또 하나는 반투명 부대에 투기자의 이름을 쓰도록 한 것이 사생활 침해라는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도쿄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주민의 50% 이상이 성명 기입을 반대했다. 반대 이유는 ‘사생활 침해’ ‘별 의미가 없다’ ‘쓰레기를 구분하지 않는 사람은 이름도 쓰지 않는다’ 등이다.

 새로운 쓰레기 감량 제도 도입을 둘러싼 이러한 찬반논쟁은 일본 언론 뿐아니라 해외 언론에까지 화제가 됐다.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최근 이 반투명 쓰레기 부대 도입에 관해 사설을 싣고 ‘쓰레기 부대에 이름까지 적게 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사생활 침해’라고 도쿄도민을 동정하였다. 일본 언론들도 ‘이름을 적지 않아도 일본인은 쓰레기를 분별할 능력이 있다’라며 반대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도쿄도는 찬반 논쟁이 가열되자 실시 예정일을 지난 10월1일에서 내년 1월 중순으로 연기했다. 그러나 주민의 77%가 이 제도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더 이상 유예 기간은 두지 않겠다고 밝혔다.

 나날이 불어나는 쓰레기 배출량도 큰 문제이지만, 이를 소각 처분할 처분장이 태부족하다는 것도 도쿄도의 큰 두통거리다. 도쿄도는 지금까지 하루 약 9천t의 쓰레기 중 90%는 소각 처리, 나머지 10%는 도쿄만에 매립해 왔다. 그러나 현재의 처분장은 3년 후면 더 이상 매립이 불가능한 상태. 이에 따라 도쿄도는 15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매립지를 물색하고 있으나 자치단체의 이해가 엇갈려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일부 지방 도시에선 수거 유료화해
 도쿄도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쓰레기 청소 사업을 95년 3월까지 각 구청에 이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 도지사의 공약 사업이다. 도쿄도 한복판에 있는 치요다(千代田) 구는 이런 움직임에 따라 자체적으로 지하에 거대한 청소 공장을 건설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장소는 이전 도쿄 도청이 있었던 자리로 일왕 거처의 5백여m 떨어진 거리다. 치요다 구의 계획에 따르면, 오는 2000년까지 1일 4백t 규모의 소각 공장을 지하 70~80m에 건설해 완공할 예정이다. 도심 한복판에 청소 공장을 짓는 관계로 쓰레기를 태울 때 생기는 연기나 열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설계하고 있으나, 문제는 주민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느냐 하는 것이다.

 쓰레기 처리 문제는 도쿄도만의 어려움은 아니다. 최근 도쿄에서 열린 전국 6백63개 시 시장 회의에서도 최대의 두통거리는 쓰레기 대책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합의한 것은 쓰레기 수거를 유료화하자는 것이었다. 일본 전국에서 현재 쓰레기 수거에 돈을 받고 있는 도시는, 타는 쓰레기의 경우 58개 도시, 타지 않는 쓰레기의 경우 29개 도시에 이른다.

 인구 8만인 지방 도시 이즈모 시는 작년 4월부터 쓰레기 수거를 유료화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즈모 시는 타는 쓰레기와 타지 않는 쓰레기를 구별해 담는 쓰레기 부대를 연간 1백개씩 각 가정에 무료로 나누어 준다. 그 양을 넘으면(부대를 다 쓸 경우) 1부대에 40엔씩 내고 시로부터 쓰레기 부대를 사야 한다.

 이 도시는 또한 쓰레기 부대에 배출자의 성명 기입도 의무화했다. 만약 부대가 남으면 시가 40엔씩을 주고 되산다. 이는 쓰레기 감량에 노력한 가정에 대한 장려금에 해당한다. 이즈모 시는 이러한 유료화로 연간 쓰레기 배출량을 25%나 줄이는 데 성공했다.

 도쿄도 청소국의 다나카씨는, 도쿄도의 경우 유료화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이미 크기와 부피가 큰 쓰레기에 한해서는 따로 요금을 받고 있으나, 가정용 · 산업용 쓰레기 전체에 대한 유료화는 ‘세급의 2중 징수’ ‘불법 투기 조장’이라는 반발을 사기 때문이다.

 도쿄도는 그대신 올 4월에 제정한 새로운 조례에서 사무실 면적이 3천㎡ 이상인 빌딩은 쓰레기 처리 책임자를 두도록 의무화했다. 즉 불법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빌딩이나 회사는 그 이름을 공표하고 제재를 가한다는 것인데, 도쿄도의 추산에 의하면 6천7백여 빌딩이 이 조례에 적용된다.

 도쿄도와 자매 도시인 서울특별시도 최근 쓰레기 줄이기의 일환으로 각종 조례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서울특별시가 반투명 쓰레기 부대제도를 실시한다면 시민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도쿄도나 일본의 대도시가 제정하고 있는 쓰레기 감량 조례는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도쿄 ● 蔡明錫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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