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항공모함’ 일본은 침몰하는가
  • 도쿄 · 채명석 통신원 ()
  • 승인 1990.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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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언론인 빌 에머트 著書 《해는 또다시 진다》 日서점가 강타

“엔貨절하 등은 몰락의 전주곡… 소비대국으로 전락” 예언

“일본의 번영은 이미 한낮을 지나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일본은 사양길로 접어든다”. 일본의 落日을 예언한 ‘해는 또다시 진다’라는 제목의 책 한권이 요즘 일본 전역에 대지진을 일으키고 잇다.

빌 에머트. 올해 23세, 영국태생, 옥스포드대학 졸업, <이코노미스트>誌 전 도쿄특파원, 현재는 그 잡지의 산업담당 편집장. 나이에 비해 훨씬 이마가 벗겨지고 콧수염까지 달고 있는 그가 바로 이번 대지진의 진원지다. 이 책이 일본독자들에게 처음 선을 보인 것은 지난 4월5일. ‘메이드 인 저팬’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지금도 ‘외제’라면 사죽을 못쓰는 경향이 있는 일본인들을 불과 두달 남짓만에 이 책을 베스트셀러 1위로 올려놓았다.

무엇이 그토록 일본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서양인으로서는 드물게 ‘일본침몰론’을 썼기 대문이다. 일본의 침몰 · 소멸 · 망국론 부류의 저자는 일본인인 반면 일본 예찬 · 경이론의 저자는 외국인이었다는 지금까지의 상식을 깨고 그가 과감히 일본쇠퇴론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번영은 시한부”

그의 책이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또 있다. 그가 “투기로 점철된 일본의 금융시장은 머지않아 금리인상과 흑자폭 축소로 붕괴될 것”이라고 예언한 그대로 지금 일본시장이 큰 이변을 보이며 비명을 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연초부터 지금까지 주식시장은 7차례나 대폭락을 보이고 있으며, 엔貨는 달러에 비해 약 10%나 하락, 거의 ‘落日論’은 더욱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엔底’현상과 주가의 대폭락이 일본의 이변을 예고하는 전주곡이냐, 최근 수년간의 과도한 투기가 시정되는 자율 반락이냐 하는 논란에 “그것은 전주곡이다”라는 명쾌한 해답을 던져주고 있기에 그의 예언서는 폭발적으로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빌 에머트가 예언하는 일본의 쇠퇴과정은 이렇다. “1990년대 일본은 거대한 무역흑자를 해외에 다시 투자함으로써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형세를 보였다. 그러나 그러한 번영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왜냐하면 대량의 자본수출을 가능케 했던 경상수지 흑자가 90년대 중반에는 거의 소멸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의 번영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장기적인 것이 아니라 시한부라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일본의 막대한 자본수출 여력은 고갈되었는가? 그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젊은 세대들이 근면보다는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노령자가 급격히 늘어나 저축률이 하락한다는 것. 둘째, 국내의 소비증가와 함께 외국으로부터의 제품수입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것. 셋째, 해외 현지생산의 급격한 증가로 수출이 줄어들며 해외여행자가 머지않아 1천만명을 돌파, 무역외수지가 감소하는 등의 영향으로 경상수지 흑자가 소멸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또 80년대 후반 이후의 엔高, 財테크붐, 토지투기 등으로 형성된 막대한 자산축적은 일본과 일본국민들을 크게 바꿔놓았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서양인들이 품고 있던 ‘수출머신’, ‘얼굴없는 경제대국’ 등과 같은 이미지로부터 고급품을 선호하고 레저를 즐기며 쾌락도 추구하는 ‘보통국가’의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일본은 머지않아 ‘생산대국’에서 ‘소비대국’으로, ‘일벌의 나라’에서 ‘레저대국’으로, ‘저축대국’에서 ‘투자 · 투기대국’으로, ‘젊은이 나라’에서 ‘노인대국’으로 그 모습이 바뀌어 경제활력감퇴, 생산성 저하로 일본이라는 ‘해’는 급속히 저물어간다고 예언한다.

빌 에머트의 지적대로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는 지난 1월, 6년만에 적자를 기록하였다. 작년의 무역수지도 해외 현지생산 등의 증가로 88년도보다 10%가 감소한 6백40억달러로 줄어들었다. 또 그가 경상수지 흑자 축소의 한 요인으로 지적한 해외여행자수도 예상보다 빨리 올해 1천만명을 돌파하리라는 전망이다.

또 세계제일의 장수국 일본은 그의 지적대로, 전쟁 직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현재의 30대가 정년퇴직할 무렵이면 ‘연금생활자의 나라’로 바뀔 것이 분명하다


“소련 군사력보다 일본 경제력이 더 위협적”

“과열된 주식시장과 천정부지로 앙등한 토지가격은 머지않아 폭락의 길을 걷게 되고 일본경제 · 금융시장은 그 상대적 우위성을 잃게 된다. 따라서 미국과 달리 일본이 세계경제에 영향력을 보일 수 잇는 시간은 단축된다”는 그의 예언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일본경제는 쇠퇴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일본의 번영은 내리막길을 걸을 것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의 하나는 여전히 구미諸國이 일본의 제품, 자본수출에 커다란 위협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歐美제국과 일본 사이의 무역 · 투자마찰은 날이 갈수록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며, 그것은 일본의 경제적 우위성을 입증하는 한 증거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본인은 살인청부업자”, “일본은 구미제국 공통의 적”. 이것은 금년 초 유럽을 순방한 가이후 총리에게 프랑스 언론들이 선사한 ‘극렬한 환영사’다. 또 프랑스의 경제지 <누벨 이코노미스트>誌는 지난 1월12일자 특집에서 “일본기업은 경쟁상대를 천적과 같이 철저하게 섬멸한다. 우리들에게는 지금 루즈벨트가 태평양전쟁에서 국민동원을 위해 사용한 ‘진주만을 상기하자’는 구호가 필요하다”며, EC통합을 앞두고 진출러시를 보이고 있는 일본기업들을 격한 어조로 공격했다.

그 진주만 피습 50주년을 1년 앞두고 잇는 미국의 일본비난도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어틀랜틱>誌의 제임스 팔로스기자는 작년말 《일본봉쇄》라는 책을 내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일본은 세계공존사상이 결여되어 있는 나라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경제확대구조뿐이다”라고 지적하고, 따라서 “미국은 일본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일본의 경제확장을 봉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지금 미국에는 이런 ‘일본봉쇄론’뿐만 아니라, ‘일본특수 · 이질체질론’, ‘일본재인식론’, ‘관리무역론’과 같은 對日강경론이 날로 힘을 얻고 있다.

일본예찬론자도 아니며 침몰론자도 아닌 또하나의 그룹, 對日강령론자들의 존재는 일본의 경제적 우워성을 간접적으로 입증해주는 증거이기도 한 반면, 일본의 쇠퇴를 예고하는 한 신호일 수도 있다. 그들의 입지강화는 무역마찰의 격화, 수출둔화, 현지생산의 증가, 무역 · 경상수지흑자 감소, 자본수출 감소라는 과정을 통해 빌 에머트의 ‘落日論’과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쇠퇴론에 대한 일본내 여론도 분분하다. 메이지학원大의 미야자키 교수는 “지금 일본은 국제수지발전 6단계설로 볼 때 제4단계, 즉 상품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해외에 투자하는 ‘미성숙 채권국’의 말기”라고 지적하고, “2000년 전후에는 성숙 채권국으로 이행, 그 후반에 국내소비가 저축을 상회하여 에머트의 예언이 적중할 수도 있다”고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반대로 일본경제연구센터의 가나모리 회장은 “일본이라는 해는 앞으로도 욱일승천을 계속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에머트가 흑자축소만을 가지고 일본의 부침을 논하고 있다”고 지적한 후, “일본경제는 향후 GNP比 2% 정도의 흑자를 계속 낼 수 있으며, 특히 부단한 기술혁신으로써 일본기업의 대외경쟁력은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란 해가 지평선 너머로 기우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빌 에머트의 ‘落日論’은 너무 성급한 예언이라는 것이 이곳 경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반응이다. 다만 80년대와 같은 ‘일본만의 번영’이 더이상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것도 대다수 의견이다. 외국의 대일압력과 국내소비자의 소비자 주권의식 향상으로 일본경제는 구조적인 체질개선을 요구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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