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월조차 생략한 정략결혼
  • 박권상 (주필) ()
  • 승인 1990.05.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당이란 무엇인가. 사람에 다라, 특히 전문가에 따라 정당의 개념이 크게 다를 수 있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18세기 영국의 위대한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의 말이다.

“정당이란 특정한 主義, 특정한 原則에 일치한 사람들이 국가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결합한 단체이다.”

경륜과 포부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국민한테 봉사하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결합체이다. 매우 점잖고 고귀한 정의라 할 수 있다.

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정의가 있다. 20세기초 하버드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친 카알 프리드리히의 정의는 좀더 현실적이다.

“정당이란, 그 정당의 지도자가 국가지배권을 획득하거나, 그것의 保持를 목적으로 하고, 그 구성원에 대해서는 그러한 국가의 지배를 통하여 정신적 · 물질적 우대나 이익을 확보시키려는 목적의 집단이다.”

이 두 가지 정의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할 때 서로 보완 · 양립하는 개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버크의 정의는 가령 ‘낮’의 정의라 할까. 이상주의적 안목이라 할까 대의명분이라 할까.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다. 특정의 주의, 특정의 원칙이라는 점과 국익의 증진이라는 점 등 두 가지 요소를 정당에서 제거한다면 정당은 단순하나 도당이 되고 만다. 끼리끼리 패거리를 짜서 利權을 탐하고 자리를 차지하자는 것이 된다.

‘낮 · 밤’의 정의가 적절히 배합돼야 올바른 정당 성립

그러나, ‘낮’의 정의만으로 정당이 성립할 수 있을까. 물론 안된다. 사람이란 이슬이나 먹고 남을 위해 사는 동물이 아니다. 저마다 욕심을 추구하는 데 생존이 있고 발전이 있다. 권력을 저주하고 명예욕을 비웃는 사람일수록 실은 권력욕이 강하고 명예욕이 성하다는 역설적인 학설도 있다. 오히려 권력을 좇고 명예를 찾는 데 인간다움이 있다. 프리드리히의 정의는 ‘밤’의 정의다.

낮이 있으면 으레 밤이 있기 마련이다. 프리드리히 교수가 지적한 권력에 대한 욕망없이 정치를 움직이는 힘이 솟아나지 않는다. 욕심이 없고 염세적인 성인군자한테 현실정치를 맡길 수 있을까. 결국, 낮의 정의와 밤의 정의가 적젏히 배합외어야 올바른 정당이 성립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버크의 정의에 좀더 기울어져 국민의 신뢰를 얻는 정치세력이 될 수 있기를 크게 기대한다.

우리나라 정당의 경우,여야 할 것 없이 밤의 정의만 추구하는, 그러니까 다분히 도당적 · 붕당적 성격이 강하였다. 특히 정부 · 여당에 있어 그러하였다. 건국이래, 한 가지 공통된 여당의 성격은 먼저 집권자가 태어나고 그런 연후에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를 중심으로 집결하였다는 것이다. 이 나라 40여년 정치사의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 세 대통령의 경우, 그들은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이미 사실상 이 나라 통치자로 군림하였고, 이어 그들을 좇아 자유당 · 민주공화당 · 민주정의당이 태어났던 것이다. 그들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거나, 그들 집단에 한몫 씰 수 없던 사람들이 야당을 형성하였다.

여기서 특정의 주의 · 주장이나 원칙이란 별 소용이 없는 것. 여당의 경우 집권자의 명령일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권위주의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대통령의 정치노선을 펴는 데 동원되는 종속적인 체질이었다. 대통령(당 총재)의 의견이나 방침에 거역한다는 것은 일종의 대역행위였다.

그것은 야당의 경우도 본질적으로 다름이 없었다. 우리나라 정당이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 한 사람이 당 전체를 좌우하는 도당적인 성격을 띠었고, 두 개 이상의 도당이 연합하여 한살림을 차렷을 때에는 치열한 당파싸움에 영일이 없었다. 민주당의 신구파 싸움이 그러했고, 신민당의 양김씨 다툼이 그러했다. ‘낮’의 정의는 빛을 보지 못하고 ‘밤’의 정의가 활개쳤을 뿐이다.


여당의 내부싸움은 국민생활에 즉각적인 영향 주는 것

그런 뜻에서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 · 김종필 양씨 등 三者三黨이 합친 민자당의 경우, 여당정치사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실험이요, 그 성패에 지대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물론 노태우씨가 이미 大權을 일단 잡은 후에 그의 민정당 중심으로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이 합쳐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 세 대통령과는 달리 노대통령의 통치노선을 전적으로 추종하려는 것 같지 않고, 그의 명령일하에 당이 움직이는 그런 체질도 아닌 것이 분명하다. 당 안에 이질적인 세 계파가 존재하여 어느 정도 세력균형을 이루고 어느 한 파가 강하게 반발할 때 당 자체가 붕괴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번 김영삼최고위원이 당무 보이코트 13일만에 노대통령의 심복참모를 실각시킨 것은 전통적인 이 나라 여당의 생리에 정면 도전한 것이다.

그동안 야당이 전매특허받은 당파싸움을 집권여당이 도입한 것인데, 여당 안에서 불협화음이 일고, 그것이 상당기간 천지를 진동시키는 사태란 야당 내부싸움과는 달리 국민생활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고 국민을 불안케 하는 것이다. 株價의 곤두박질을 보라.

민자당의 ‘낮’의 정의를 살려 당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차라리 정책의 차이에 입각한 파벌을 양성화시켜 정책결정을 벌이면서도 ‘다양성 속의 일치’를 이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3당합당이 민주주의를 향한 進一步라 하겠으나, 순전히 ‘밤’의 정의에 입각한 붕당의 물리적인 조합에 불과하다면-지금은 그러한 인상밖에 안주고 있다-그러한 밀월조차 생략한 정략결혼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同床異夢으로 국민이 입는 피해를 생각한다면, 무엇인가 잘못을 근본적으로 시정하는 대담한 방안이 모색되어야겠다. 민자당의 장래가, 그리고 국가의 장래가 심히 걱정스럽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