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에 집착한 불완전한 연인
  • 이세룡 (영화평론가) ()
  • 승인 199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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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감독 : 장 자크 아노 주연 : 제인 마치, 토니 륭

몸과 마음이 두루 친밀한 남녀를 ‘연인’이라고 한다면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연인>은 불완전한 연인이다. 프랑스 식민 치하의 옛 사이공을 배경으로 사춘기 소녀의 性愛를 그린 이 영화에서 열다섯살 소녀가 마음보다 몸을 앞세우는데 반해, 열일곱살이나 위인 남자는 소녀의 마음을 차지하지 못해 오히려 안달이다.

 영화의 대본이 된 원작 《연인》은 프랑스의 저명 여류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이지만 영화에서는 잔느 모로가 읊조리는 나레이션으로 거뜬하게 해결하고 있다.

 메콩강을 건너는 낡아빠진 배 난간에 프랑스 소녀가 서 있다. 소녀는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다. 여기에 부유한 중국계 남자가 다가와 유혹의 첫마디를 던진다. 백인소녀는 남자가 자동차로 학교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제의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긴다. 이를 계기로 소녀는 남자의 거처를 무상출입하고, 경험 많은 남자는 소녀에게 여러 가지 사랑의 기교를 가르쳐준다. 이런 육체관계가 1년반 동안이나 지속된다. 소녀가 프랑스로 떠나는 날, 남자는 부둣가 빈 터의 차 속에서 소녀가 사라질 때까지 떠날 줄 모른다.

 뒤라스의 원작 <연인>은 추잡하고 이기적인 가족관계와 궁핍함, 사춘기 소녀의 솔직한 욕망을 날카롭게 진술함으로써 진실성을 갖는다. 영화 역시 소설 못지 않게 진실하고 그 이상으로 충격적이지만 성애 묘사에 초점을 맞춘다.

 황토빛 강물, 중국인 거리의 시장풍경, 사이공 상류사회 등을 실감나게 재현한 카메라는 템포는 느리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베어> <불을 찾아서> 등에서 집념을 과시했던 감독이 빅 클로즈업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리듬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땋아내린 소녀의 머리칼과 리본, 신발, 깍지 낀 손, 육체의 구석구석을 훑는 긴 커트들은 사물을 바라보는 거리를 바꿈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그래서 아노가 보여주는 소녀의 성적 눈뜸, 남과 여의 줄기찬 관계는 드라마의 단순함과 맞물리며 그 어떤 포르노보다 강렬하다. 그러나 바로 이점 때문에 <연인>의 소녀가 사랑을 하는지 매춘을 하는지 아리송하다. 더욱이 두사람은 1년반이나 사귀면서도 한번도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관계다.

 원작의 소녀는 어머니의 강력한 암시와 후원을 받아 여자냄새를 노골적으로 풍기기까지 한다. 이 소녀는 섹스를 즐기면서 남자의 지갑 속을 늘 의식한다. 그러나 영화 속의 소녀는 남자를 사랑한다. 단지,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남자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몸 가는 데 마음 가는 것이라 둘 사이에 애정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뒤라스의 진실과 아노의 진실은 정직함에서 차이가 난다. <연인>의 주인공은 소녀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바로 남과 여의 육체이다.

 아노는 특유의 집요함으로 관객을 빨아들이고 마지막 시퀀스에서 반전으로 <연인>을 구제한다. 멜러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아노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쇼팽의 왈츠까지 동원하여 두 남녀가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서로 통했던 <연인> 사이임을 드러내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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