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저물어가는 해”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2.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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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부활’에 초점을 맞춰 21세기 경제전쟁의 승자가 유럽공동체(EC)라고 단정한 더로 교수의 ≪대접전≫은 일본어로도 번역돼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선 그의 책이 빌 어머트의 ≪해는 또다시 진다≫와 같은 ‘落日論’적 냄새를 짙게 풍기기 때문이다.

 더로 교수는 냉전체제종식 이후 세계 각국의 국력은 군사력이 아니고 경제력의 척도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때문에 21세기는 같은 자본주의국가 간에 경제전쟁이 불을 뿜을 것이라고 전제한다.

 이러한 21세기 경제전쟁에서 패권을 지향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나라는 美·日·유럽공동체이다. 엇비슷한 자본력 기술력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美·日·유럽공동체 중 어느 하나도 2차대전 후 미국이 보여준 것처럼 상대를 압도할 만한 경제력이 없다. 따라서 21세기 초반 겨제 패권을 둘러싸고 이 3국이 대접전을 일일것이라는 것이 더로 교수의 예측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일본이 21세기의 주역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세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1천억달러를 넘는 방대한 무역흑자가 계속되는 한 언젠가는 세계시장에서 축출되고 말것이며, 수출주도형에서 내수주도형 경제로 전환하지 않는 한 대일무역마찰을 끝나지 앟을 것이다. 둘째 노동시장의 폐쇄성 때문에 일본의 대외시장은 그만큼 축소될 것이며, 셋째 일본은 유럽공동체에 대항할 수 있는 준무역 블록을 형성할 지도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다시 말해서 집중호후식 수출로 이룩한 일본의 20세기 번영은 무역마찰 격화, 세계경제의 준 무역블록화로 21세기에 포화점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장기신용은행 종합연구소 후카가와 유키코 주임연구원은 이에 대해 “더로 교수나 빌에머트의 저서가 일본에서 많은 화제를 모으는 것은 그들이 80년대 일본경제의 신화에 정면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일본에 대한 ‘警世書’로서 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21세기 세계경제가 미국·일본·통합서유럽의 3대 ‘준 무역블록’으로 나뉘어 각 블록 간에 국가가 관리하는 관리무역이 실시될 것이라는 더로 교수의 주장에는 상당한 공가을 표명한다. 즉 21세기의 블록화 경제에 대해 유효한 수단을 갖추지 못하면 일본의 21세기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이 책이 일본사회에 충격을 던진 것은 그 동안 일본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대국을 꿈꾸던 것에 일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가전회사 마쓰시다 전기의 창업자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70년대 자신의 번영 철학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 적이 있다. “세계의 번영을 돌고 돈다. 고대에는 이집트 등 중근동지역이 세계 번영의 중심지였고, 그 중심은 그리스 로마를 거쳐 유럽대륙으로 옮아갔다. 2차대전 후 미국으로 건너간 번영의 중시은 이제 미국 경제력의 쇠토로 아시아로 이동중이다. 따라서 다가오는 21세기의 주역은 아시아이며 그 주심은 일본이다.”

 마쓰시다 예언 이후 80년대의일본서점가는 ‘팍스 니포니카나’ 도래를 점치는 책, 즉 21세기는 일본의 경제력이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는 예언서로 들끊었다. 하버드 대학 교수 에즈라 보겔의 ≪1등 국가 일본≫(JAPAN AS NO.1), 엔이 21세기에 세계의 기본통화로 등장한다는 ≪엔≫, 미국의 세기는 이미 끝장났다는 ≪미일 역전≫, 군사·경제 양 측면에서 미국의 소퇴를 지적한 예일 대학 폴케네디의 ≪대국의 흥망≫ 같은 저서이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거품경제가 꺼지기 시작하자 일본 서점가의 풍향도 바뀌었다. 80년대의 ‘일본경제신화’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책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태양의 추락’을 예언한 ≪해는 또다시 진다≫와 같은 책이 바로 이때 큰 화제를 모았다. 저자 빌에머트(≪이코노미스트≫ 전 도쿄 특파원)는 영국과 미국의 쇠퇴 과정을 보더라도 일본만이 번영을 계속한다는 것을 있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일본의 번영은 시한부라고 못박았다. 그는 이어 일본의 번영은 지금 한낮을 지나 오후 2시경을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일본이 ‘떠오르는 해’가 아니고 ‘저무는 해’라고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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