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유럽의 시대경제전선 미·일 눌러“
  • 워싱턴·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2.07.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더러 교수 ≪대접전≫…“단일시장 규모·기초교육 앞서”




“미국은 자칫하면 다음 세기에 3류국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같이 경고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레스터 더로 교수의 최근 저서 ≪大接戰≫은 올 가을 대통령선거를 겨냥하여 ‘논쟁거리’로 서둘러 내놓은 듯한 냄새를 풍긴다. 냉전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경제전쟁’과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미국 경제에 대한 부양책이 최대의 쟁점이 돼잇는 시점에서 더로 교수는 하나의 대안으로 이책을 내놓은 것 같다.

 경제 이론가로 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더로 교수의 이 책(3백27쪽, 윌리엄 모로 출판사)은 출판되자마자 당장 <뉴욕 타임스>에 베스트 셀러 6위로 소개되어 날개돗힌듯 팔리고 있다. 더로 교수는 세계는 새로운 전쟁에 돌입했고, 바야흐로 미국 일본 유럽 3대 경제강자가 벌이는 각축전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만약 미국이 과감히 정책을 전환하지 않으면 유럽이 승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더로 교수는 3대 강자가 지닌 장점과 단점을 비교했는데 일본과 유럽에서는 이른바 관리경제로 국가가 산업발전을 주도하여 성과를 보고 있는 반면 미국은 지나친 독과점금지법 때문에 국제경쟁에서 불리하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세계 경제대국 서열에서 이미 두번째로 밀려나 있고 이런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이 미국보다는 일본을 경쟁상대로 지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은 관료들이 소비자보다는 장래의 기업투자를 중시한 정책을 만들어 ‘행동지침’으로 기업에 시달하는 방법을 써서 생산자 중심의 경제대국을 건설한 것이며, 21세기는 바로 생산자 중시의 사회가 승리하는 시대일는지도 모르다는 것이 더로 교수의 견해다. 에디트 그레송 전 프랑스 총리가 “일본은 미국을 휩쓸고 이제 유럽을 먹으려 한다”고 한말처럼 유럽 사람들 안중에는 미국은 없다는 것이다. 서유럽 국가들이 멀지않아 통합되어 3억3천7백만명의 거대한 단일시장이 될 터인데 유럽의 가장 큰 장점인 훌륭한 기초교육은 경제발전의 촉진제가 되어 생산과 무역면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앞질러 단연 선두주자가 될 것이라고 더로 교수는 유럽이 지배하는 21세기를 예고하고 있다.

 더로 교수는 유럽을 가장 유망주로 꼽는 이유로 그동안 수출주도의 일본 경제가 한계에 도달했고, 경제성장이 지속되려면 내수를 확대하는 길 뿐인데 이러한 전환은 필연적으로 생산성은 물론 사회·문화적인 일대변화를 동반하는 진통을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해, 아무래도 이런 어려움을 일본이 견디기 힘들것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열두 나라 서유럽 국가의 완전 겨제통합과 그뒤 중부 유럽 및 구 공산권 나라들을 통합에 끌어들이는 것이 문제다. 서유럽 나라들이 누리는 편안한 생활을 희생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과제인 만큼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한편 더로 교수의 미국에 대한 진단은 30년동안 정부재정적자의 증가, 기술자보다는 변화사를 더 양산해온 잘못, 단기이익에만 집착한 기업의 투자, 그리고 앞을 내다보지 못한 교육제도로 고질적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과감하게 고치기 위해서는 대담한 사고 전환이 선행되고 새 기술을 익히는 풍조가 새겨야 하다고 그는 중장한다.

 새 규칙에 맞춰 새 전략을 세우고 새 게임을 대응해나간다면 미국이야말로 21세기를 그들의 시대로 만들 만한 가장 자격있는 나라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보았듯이, 그리고 인간성이 말해주듯 일본인이나 미국인은 굳이 고통스런 변화를 체험하지 않고도 가만히 앉아서 자기가 당연히 승리지가 된다고 믿는 마음 때문에 틀림없이 먼 훗날 역사가들은 21세기가 유럽의 시대였다고 기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더로 교수의 결론이다.

 미국 기업들이 살아남으려면 일본 방식을 본따야 한다는 말은 요즘 귀가 따갑게 들리는 말이다. 단일민족과 주·종과계를 중시하는 일본 방식이 다민족 횡적관계를 앞세우는 미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 시시비비가 무성한 판에 이 책이 나왔다.

 경제평론가 애덤 스미스(본명은 조지 굿맨)는 <뉴욕 타임스> 서평란에서 “더로 교수 말대로 미국은 경제적으로 칭기즈칸의 침입을 받았지만 외세 침략에 대비하는 방법으로 더로 교수가 제시한 방안에는 선뜻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많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만약 미국정부가 보잉 항공기 제작소나 GM자동차 회사를 금융지원한다면 이를 누가 옳다고 하겠느냐. 아무리 권위있는 대통령일지라도 그의 제의를 받아들여 정책으로 삼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고 지적한 스미스는 “독과점금지법을 완화하라든가 정부가 일본이나 유럽처럼 기업과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미국에 맞지 않는 방법이다”라고 지적하고, 미국에 알맞는 해결책이 따로 있기 마련이고 이것을 찾는 것이 과제일 뿐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경기 회복이 더디고 유권자의 기성정치인에 대한 불만이 꽉 차 있는 선거철에 큰 정부와 국가의 기업간여 내지는 참여를 권장하는 더로 교수의 사고의 대전환론이 과연 얼마나 먹혀들지 궁금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