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으로 꺼진’연말정산 환급금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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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수 적다고 멋대로 처리 일쑤 … 대구 근로자 정혜선씨 관행 고치려 회사 고발

공중전화기가 동전을 꿀꺽 삼켜버리면 사람들는 대부분 씨근거리면서도 그냥 돌아선다. 분풀이한대야 전화통을 거칠게 쥐어박기가 고작이다. 사람들이 바로 잡기를 시도하지 않는 것은, 해봤자 배보다 배꼽이 크며, 이 과정에서 오는 피곤하과 고단함이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공중전화비 30원을 받아내기 위해 몇십만원의 소송 비용을 쓰는 사람이 있다. 소시민의 눈에는 그런 이들이 어리석게 비치지만 이들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일상적으로 용인되는 잘못된 행위에 시정을 요구하는 잘못된 행위에 시정을 요구하는 실천적 행동가이다. 얼마 전까지 대구직할시에 있는 전자조림업체인 세기전자에 근무했던 정혜선씨(32)도 그런 류의 사람이다. 정씨는 지난 3월 회사가 연말정산 환급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이 회사 근로자들은 88년 회사가 설립된 이후 한번도 연말정산을 받지 못했다. 회사측으로부터 정산에 필요한 서류를 내라는 얘기를 들은적도, 근로소득 원천징수 영수증을 받은적도 없다. 연말정산은 기업주가 12월 급여를 줄 때 1년 간 총급여액에 대한 근로소들 세액을 소득세법에 따라 정확하게 계산한 뒤, 그동안 간이세액표에 의해 뗀 세금과 비교해 많이 뗀 사람에게 되돌려 주고 덜 뗀 사람은 더 내게 하는 절차이다. 정씨의 주장은 이렇다.“연말정산에 대한 생산직 근로자의 무지를 약용해 당연히 돌려 받아야 할 환급금을 회사가 횡령했으며, 비고세소들을 과세소득에 넣어 세금을 더 내게 했다.”90~92년분 근로소들 원천징수 영수증을 보면, 생산직 근로자들은 적게는 몇백원에서 많게는 1만4천원까지 환급 맏는 것으로 돼 있다. 반면 ㅈ공장장 ㄱ상무 ㅂ씨 ㅊ씨 등은 2만~5만원 정도의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으로 돼 있다. 환급대상자 처지에서는 받을 돈을 못받은 것이므로, 회사측이 돈을 횡령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회사의 살림을 도맡아보고 있는 김민수 상무는“환급금이 원낙 적어 경리직원에게 개별적으로 연말정산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라고 시인했다.

그러나 매년 회사 전체로는 세무서에 세금을 더 내야 했다며, 한푼도 착복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돌려받아야 할 사람 것을 더 내야 하는 사람 것과 합쳐 회사가 자의적으로 연말정산을 했고, 이에 따라 생산직 근로자는 손해를 봤다는 얘기가 된다.‘제로섬 게임’이지만 이해관계가 뒤바뀐 것이다. 회사가 세금을 더 내게 했다는 정씨의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이 회사 생산직 근로자는 평균 시급이 1천75원으로, 한달을 꼬박 일해야 20만원 정도를 번다. 여기에 연장근로 휴일 근로를 통해 몇만원이 얹어지는, 저임금 계층에 속한다. 세법에는 이같은 저임금 근로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조항이 꽤있다. 대표적인 것이 비과세 소득을 인정하는 조항이다. 월정액 급여가 1백만원이 안되는 생산직 근로자는 연장근로 · 야간근로 · 유일근로 수당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는다(연간1백80만원). 주휴 · 연월차 · 생리휴가 수당(연간 1백만원, 모든 근로자)도 비과세이다. 세무서에 제출된 이 회사의 근로소득 지급조서를 보면 비과세소득이 전혀 없다. 이런 작업장에서 연장 근로나 휴일근로가 밥먹듯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회사측은 근로자측이 이를 연대서명등으로 거세게 항의하자 재정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91년도와 92년도 환급금은 77만4천49원으로 사무직 근로자의 한달치 봉급밖에 안된다. 회사측은 4월10일에 92년도분을, 9월10일에 91년도분을 근무자에게 돌려 주었으나 퇴직분은 남아 있고 90년도분은 아에 정산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상 미지급된 임금의 소급 기간은 3년간이다. 근ㄹ자측은 사용자측의 고의성을 의심하고 잇으나 김상무는 이를 완강히 부인한다. 그는“몇십만원을 챙기려고 회사가 고의로 그랬겠느냐”라고 반문하다. 그러나 이 회사의 세무를 대행했던 이재기 세무사무소의 ㅈ사무장은 고의적일 공산이 있다고 본다. 수차례 잘못됐다는 것을 회사측에 통보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설사 악의가 없었더라도 기업주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책임은 면키 어렵다.

허술한 세무 행정이 관행 부추겨
 연말 정산말고도 이 회사가 저지른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은 더 있다. 그동안 퇴직금을 제대로 주지 않았으며, 휴업수당도 평균임금(3개월치 임금을 합해 평균낸 것)이 아니라 기본급을 기준으로 적용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또 국민연금도 임금대장에는 공제해 놓고 연금공단에 납부하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세기전자건은 허술한 세무 행정과도 연결된다. 이 회사는 근로소득세를 제때에 내지 않았을 뿐더러 체납액이 상당히 많다. 서대구 세무서의 납부서 원부를 보면, 이 회사는 92년도 1~4월분 세금은 올해 6월23일에,5~6월분은 7월22일에 냈다는 은행 수납도장이 찍혀 있다. 근로소득세는 사업주가 월급을 준 다름달 10일까지 납부해야 한다. 이형진 서 대구세무서장은“담당자가 그동안 수도 없이 전화독촉을 하고 독촉장도 보낸 것을 알고 있다.

세정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경영이 어려워 못냈다고 하는 것을 조세포탈범으로 잡아넣기는 어렵다”라고 해명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연말정산이 제대로 안돼 문제가 된 사례는 거의 없다. 정씨는 그동안 모든 국가 공권력에 진정 또는 고발하는 식으로 외로운 싸움을 벌였다. 현재 이 건은 대구 지방검찰청과 서대구셈서에 계류중이다. 검찰청 조사에 앞서 이루어진 대구지방노동청 김상혁 근로감독관의 조사 의견은,사업주가 근로기준법 109조와 30조 · 36조 · 38조를 위반했으므로 기소함이 합당하다고 돼 있다. 정씨가 이번 일을 벌여 얻은 익은 환급금 1만1천2백25원과 휴업수당 5만7백원이었다. 이 대가로 그는 사표를 썼다. 쫓겨났다는게 정확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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