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자살 20명 세계1위 넘본다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2.07.2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시대 ‘묵시록’??? 동정 시각이 자살 부추켜




 이용우씨(54)는 둘째 아들 앞으로 1 우송된 오디오 잡지를 보고 가슴 을 쓸어내렸다. 지난 6월10일 밤 11시쯤 "전공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현석군 (26 서울대 대학원) 생각 때문이다. 현석군 이 보던 그 오디오 잡지 구독기간이 끝날 때 까지 이용우씨는 문득문득 아들이 그리울 것 이다. 이씨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고통의 세월 을 보내고 있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현석이가 자기 방에서 걸어나올 것만 같아요. 어차피 먼저 간 녀석 잊으려고 애쓰지만,그게 잘 안돼요." 현석군의 어머니도 깨어있는 시간에는 온통 아들 생각 뿐이다. 어릴 때부터 줄곧 1등 자 리를 내준 적이 없던, 그래서 더욱 자랑스러 웠던 아들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바로 그 아 들 때문에 신경과 병원에서 지어주는 진정제 를 먹어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살은 그저 '강 건 너 불'일 뿐이다. 그러나 그 가족이 느끼는 체 감도는 매우 높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고 립무원의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자살을 꿈꾸 거나 또 결행하고 있을지 모른다. 경찰청 통 계에 따르면 90년에 한국에서 자살한사람은 7천4백86명, 평균 하루에 20명이 넘는 사람 이 제발로 세상을 떠나갔다. 자살자는 90년 도까지 매년 7천명을 넘었지만, 지난해에는 6천5백93명으로 줄었다. 그래도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사회적 또는 문화적 여건에 따라 자살이 '명예로운 죽음'으로 떠받들린 적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자살은 엄연히 '질병'의 개념 으로 취급된다. 이제 한국에서 자살은 88년 을 기점으로 남녀 모두에게 전체 사망원인 중 9위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자살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그동안 중요 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변변한 자살 상담소나 자살 연구소 하나 없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 자살을 제외하고는, 다른 연령충의 자살에 대해 크게 관심을 기울이 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한창 먹고 뛰놀며 인 생을 설계할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대서, 청소년 자살이 사회에 던지는 충격은 매우 크 다. 더구나 자살을 결행한 청소년 대다수가 "시험공부나 하라고 다그치는 사회가(어른들 이) 밉다"는 식의 유서를 남긴다.

비율로는 청소년보다 노인 자살이 더 심각

 정신과 전문의들은 "성적이 높든 낮든, 가 정형편이 중산층이든 하류충이든 간에 거의 모든 청소년들이 한번쯤은 자살을 꿈꾸고 또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거 의 예외없이 과중한 입시경쟁을 탓하는 유서 를 남긴다. 지난 5월달만 해도 청소년 자살은 이틀이 멀다 하고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다.

 과연 성적 경쟁과 공부 부담은 우리 청소 년들을 죽음에 몰아넣을 정도로 가혹한 것일 까 또한 언론이 우려하는 것처럼 요즘 아이 들은 심성이 약해진 탓에 툭하면 투신에 분 신까지 저지르는 것일까.

 연세대 의대 이호영 교수(신경정신과)는 "우리 청소년들이 시험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아직 어린 청소년 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한 데서 일반 인의 관심이 집중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언론의 청소년 자살 보도가 청소년들 의 감수성에 불을 지른다는 분석이다. /청소년 자살은 청장년이나 노인의 자살에 비해 그 여파가 상대적으로 더 충격적이고 지속적이기 때문에 문제가 커보인다. 게다가 매우 충동적으로 자살을 결행하며 또 분신이 나 투신 등 치명적 방법을 택한다. 청소년 사 망원인 중에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0% 에 달한다. 죽 15~24세 사망자 10명중 한명 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이다. 이래서 청소년 자살이 심각하게 비했고, 지나치게 과 대포장되기도 했다(부속 기사 참조)

 비율만으로 따지면 청소년 자살보다는 노 인 자살이 더 심각하다. 연세대 의대 공동연 구논문 <한국인의 자살>(신경정신의학회지 제29권)에 이런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 85 년 이후 10대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0 명에 못미치는 반면 50세 이상 노인의 경우 에는 인구 10만명당 30명선을 오르내린다. 더구나85년부터 88년 사이 10대의 자살률은 줄었지만, 같은 기간 60세이상 노인 자살률 은 오히려 늘었다. 통상 10대 자살이 전체 자 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넘지 못한다.

 노인자살은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노 인층의 자살 원인은 주로 경제파탄 · 알콜중 독 · 질병 등이다. 즉 자살 원인이 오래 지속 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노인이 자살했 다 하더라도 '이해할 만하다'는 반응을 보인 다 게다가 노인들은 공식 사회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자살 사실이 집 밖으로 새어나가 지 않는다.

 서울대병원 조두영 박사는 "청소년은 자살 을 결행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요란한 '신호' 를 보내지만 노인들은 조용히 죽음을 준비하 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에 비춰 별로 사회 문제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즉 한국사회에서 자살 문제의 심각성은 청소년 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안타깝게도 자살률은 나이에 상관없이 매우 높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헝가 리이다. 학자들은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10 명을 기준으로 자살률의 높고 낮음을 가린다. 80년 유엔 《인구통계연감》에 따르면 헝가리 가 인구 10만명당 44.9명으로 가장 높게 나 타났다. 5위권 안에는 덴마크 오스트리아 핀 란드 스위스 등 전통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유럽쪽 국가들이 들어 있다. 한국은 22.6명으로 6위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12.5명)이나 일본(17.6명)보다 높은 순위이다. 동양권에 서는 가장 높다.  

 한국에서 유엔으로 보내는 자살통계는 경 제기획원이 집계하는 《사망원인 통계연보》 이다. 그러나 이 통계는 사망자 가족이 동사 무소나 면사무소에 신고하는 '사망원인'을 1 차 자료로 하고 있어, 외부에 가족이 자살했 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사회적 경향을 염두에 두면 정확하지 않다. 경계기획원 이외에 경찰 청에서 집계하는 자살통계가 있다. 통계청의 담당자조차 "경찰청 통계는 수사관이 직접 사망현장에서 자 타살 여부를 판정하기 때 문에 경제기회원 통계보다 정확하다"고 지적 한다. 결국 행정기관에서 파악한 사망신고가 아니라, 경찰청 통계로 한국의 자살률을 계산 하면 자살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세계 1~2 위를 넘볼 것이다.

자살률, 경찰청 통계로는 세계 1위 예를 들어 85년도의 경우 경제기획원 자살 집계는 전체 3천6백89명이었지만, 경찰 집계 는 8천6백57명이었다. 또한 90년도 경제기획원 집계는 3천1백59명을 기록 한 데 비해 경찰청 집계는 7천 4백86명이었다 최소한 2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따라서 유엔에 보고된 자살률 계 6위인 한국은 경찰청 통계를 감안하면 단숨에 세계  1위를 넘보게 될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와는 달리 선진국의 통계는 비교적 정확하다. 관련 학자들은 "경찰청 통계를 근거 로 추정하면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1위가 될 수도 있다"고 말 한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나라 는 선진국에 못미칠 텐데, 자살 률에서 만큼은 선진국을 압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자살이 얼마나 심 각한 사회문제인지를 잘 보여 주는 보고서가 있다 연세대 의 과대학에서 지난 81년부터 87 년까지 강화도 지역을 대상으 로 한 역학조사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평균 48.7명이 자살 한 것으로 나타났다. 헝가리의

44.9명보다 높은 자살률을 보인 것이다. 농촌 보다 도시에서 자살률이 훨씬 높은 외국과는 달리, 이 조사는 우리나라 농촌 자살률이 도 시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강화도 지역이 농촌이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하지만, 이곳에서 60세 이상 노인의 경우 인 구 10만명당 97.2명의 자살률을 보였다 왜 한국의 자살률은 이토록 높을까. 한국인에게 서만 나타나는 자살의 특성은 무엇인가. 

 자살에는 그 사회를 지배하는 의식이 투영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은 지극히 '사회적' 이다. 한림대학교 石在鎬 교수(신경정신 과 ·강동성심병원)는 한국에서만 두드러지 게 나타나는 자살로 동반자살과 분신을 꼽는 다. 따라서 동반자살과 분신에는 한국만의 특 성이 잘 나타난다.  

 지난해 강경대군 사망 사건 이후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분신행렬에 이 사회는 그저 아연했을 뿐이다. 수많은 젊은이가 죽어갔다. 李*東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은 "자살의 공통 된 심리 중 하나로 전염성이 있는데,당시에 도 이같은 전염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때 분신은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다. 자신이 죽음으로써 정치적 목적 을 달성하겠다는 행위, 즉 정치적 자살은 매 우 한국적인 현상이다. 다만 그것이 '분신'이 라는 행동을 통해 드러났을 뿐이다.  

 한양대 沈英姬 교수(사회학과)는 "우리 사회의 자살은 '목적 지향적'인 특징을 갖는 다. 삶의 의미를 잃어서 자살을 택하는 게 아 니라, 성취동기는 매우 강하지만 목적을 이루 지 못함으로써 자살한다"고 설명한다. 소값이 폭락해서, 혼기를 넘겼는데도 결혼을 못해서, 대학입시에 실패해서 자살한다는 것이다. 물 론 이중에서도 가장 목적 지향적인 것은 역시 정치적 자살이다. 목적 지향적일 때 자살 자는 죄의식 없이 자신의 죽음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세운다.

자살자에게 한국은 동정적, 서양은 죄악시

 동반자살도 한국사회에서 자주 발생끓는 자살유형이다. 동반자살도 정치적 자살과 마 찬가지로 목적 지향적 인데, 성취동기는 강하 지만 경쟁에 져서 (사업 또는 인생에 실패해 서) 죽음을 택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동반자 살은 엄밀히 얘기하면 '살인 후 자살'이다. 대 개의 동반자살이 일단 아이부터 죽여놓고, 가 장이 뒤따라 목숨을 끊는 형태를 띤다. 동반 자살이 발생할 때마다 여론은 "아이가 부모 의 소유물이냐"라며 각성을 촉구하곤 한다. 그러나 좀체로 사라지지 않는 자살유형이 또 동반자살인 것이다. 

 자살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가설 중에 가 장 일반적이고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는 게있다. "급격한 산업화를 겪은 나라에서 공동 체와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져 자살률이 증가 한다"는 가설이다. 물론 이 가설은 한국에도 적용된다.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됐던 60~ 70년대 한국의 자살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했 다. 그리고 어느 정도 산업화가 정착된 75년 을 정점으로 자살률은 감소추세에 접어들었 다. 하지만 급격한 산업화를 겪은 나라가 찬 국뿐만이 아닐 텐데, 한국이 유독 높은 자살 률을 보이는 데에는 특별한 까닭이 있을 것 이다.   

 한양대 의대 김광일 교수(신경정신과)는 "이상할 정도로 한국에 자살률이 높은 이유 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우리사 회에는 자살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짙기 해 문"이라고 말한다. 즉 경쟁사회에서의 실 패 사회의 응집력 약화로 인한 인간관개의 파편화 · 비인간화 ·가치관의 공백 등 여러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전통적으로 죽음과 자살에 대해 갖는 관용적 태도와 밀접 한 관계가 있다는 얘기이다. 경위야 어찌됐든 일단 자살한 사람에 대해서는 '오죽하면 스스 로 목숨을 끊었겠느냐'는 생각이 한국인 심성 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런 동정적 시각 때문에, 자살자는 자신의 행위를 '죄악'이라 느끼지 않고 합리화한 상 태에서 죽어간다. 김교수는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극한상황에서 자살을 결행하고자 했 을 때, 우리사회는 자살 근거를 마련해준다" 고 분석한다.

영국에선 자살 미수자틀 구속하기도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인은 그 체면 이 손상되면 극단적 방법인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이달초 세인의 심금을 울렸던 60대 부 부 '에이즈 자살극' 사건이 그 좋은 예이다. 이모씨 (57 · 여)는 수혈 과정에서 에이즈에 걸린 남편과 함께 동맥을 끊어 동반자살을 기도하다가 자신도 감염됐다. 그러자 이씨는 6월25일 충남 온양시 한 여관에서 "자식보기 가 부끄럽다"면서 남편의 도움을 받아 목을 매 자살했다. 하지만 이 부부는 도덕적으로 깨끗하다.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신승철 원장 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별다른 치료 도 받지 않고 덥석 자살을 택한 데에는 '수치 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우리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이들에게 돌을 던지지 못할 것이다. 모두 이들을 동정한다.  

 반면 기독교 영향권인 서양에서는 자살을 범죄로 본다. 60년대까지 영국 웨일즈 지방 에서는 경찰이 자살미수자를 실제로 구속했 다. 현재 미국도 법으로 자살을 금지하지만, .공권력이 직접 개입해 자살미수자를 처벌하 지는 않는다. 가령 살인누명을 쓴 사람이 자 살로써 무죄를 호소하면 한국 사람들은 심정 적으로 무죄를 인정해준다. 자살을 '이해'하 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자살을 통해 무죄를 증명하려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설사 그런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무죄를 믿지 않 는다. 자살한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서는 하 루 20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것까지 고려하면 자살자는 더 많 을 것이다. 물론 자살은 개인적 문제일 수 있 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자살기도자나 자살자 를 죄인으로 보지 않고 동정하는 태도를 보이 는 한, 자살 행렬은 매일 계속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