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미래의학/94년 비만, 95년 대머리 해결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4.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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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수명 1백50세

‘인간의 육체는 유한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 말은 2000년대에 가서는 상당 부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지난 수세기 동안 고도로 발전한 의술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켰으며, 미래학자들은 인간의 평균 수명이 2백세가 넘을 날도 멀지 않았다고 예고하고 있다. 과학이 노화 현상을 일으키는 유전자 암호의 비밀을 풀면, 인간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83년만해도 사람의 심장이나 신장을 이식하는 일은 이론으로나 가능했지만, 이제 장기이식은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며, 이종(異種) 간의 장기 이식이 보편적 처치 방법으로 자리잡을 날도 멀지 않았다. 이 경이로운 일은 70년 후반 스위스 제약회사 산도즈가 이식 거부반응을 억제하는 사이클로스포린이라는 약품을 개발한 것에서 비롯된다.

 의학의 기적은 지금도 세계의 연구실과 병원에서 탄생하고 있다. ‘영원한 삶’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질주하는 ‘의학기술’열차는 10년 안에 임신 전 태아의 성을 선택할 수 있게 하며, 유방암을 예방하는 약제를 개발할 것이며, 에이즈 예방을 위한 백신을 생산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면역요법으로 대머리를 치료하고, 간단한 혈액검사로 폐암에 걸릴 유전자 주조를 가진 사람을 판별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 과학자들이 작성한 미래기술 연표는 앞으로 20년 동안의 의학기술 발전 단계를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예측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치료법 개발(1997년)에서부터 인공장기 실용화 기술(2006년), 기억과 노화의 기전 해명(2012년)에 이르기까지 현대 의학이 뛰어넘지 못한 불치병들이 극복된다.

 의학 기술의 발전은 한국인들의 주요 건강지표도 크게 개선하고 있다. 평균 수명을 보면 90년에 71세였으나 2000년에는 74세, 2020년에는 77세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출생 1천명당 돌이 되기 전에 사망하는 영아사망률은 89년 12였으나 2000년에는 10 수준으로 떨어지고 2020년에는 7 이하로 떨어져 선진국 수준에 이르게 된다. 지금까지 가장 높았던 결핵 유병률도 90년 1.8%에서 2000년에는 1%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취업 의사 수는 89년 3만4천명이던 것이 2000년에는 5만6천7백명, 2010년에는 7만9천명으로 늘어난다.

앞으로 20년의 한국 의학계
 2000년대에는 한국인의 질병 양상도 크게 달라진다. 한 시대의 건강 수준과 질병 양상, 보건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사망 원인을 살펴보자. 지난 10년 동안 한국인의 사인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감염성 질환 및 기생충병, 소화기?호흡기 계통 질환 등 후진국형 전염성 질환은 급격하게 줄어든 반면, 뇌졸중?고혈압 등 심장?혈관계 질환과 암, 그리고 손상 및 중독으로 인한 사망이 급증하여 질병의 구미화 양상이 두드러졌다(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 도표 참조).

 또 다른 특징으로는 자동차 사고와 산업재해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최근에는 자살 및 타살도 선진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김한중 교수(연세대학교?예방의학과)는 지난 연말 개최된 제9차 병원관리종합학술대회에서 ‘21세기 한국 사회와 의료’라는 주제로 앞으로 20년 동안 한국 의학계의 발전 방향을 부문 별로 전망하여 눈길을 끌었다. 김교수는 우선 새로운 의약품 개발을 예고했다. 페니실린을 비롯한 항생제가 개발된 1930~1940년대의 ‘의약품 혁명’에 비견될 만한 새로운 의약품 개발이 진전되는데, 특히 항암제, 노인성치매 치료제, 항바이러스 제제, 정신질환 치료제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둘째는, 현재의 수술을 대체하는 치료 방법이 개발된다는 것이다. 특정 장기에 병이 생겼을 경우 지금까지는 이를 제거하기 위해서 인체를 열고 환부를 제거하거나 장기를 통째로 드러내는 수술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이는 다량 출혈을 동반하며 정상조직 손상, 회복시간 지연, 심리적 긴장 등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미래 사회에서는 광학 기술 발전이나 레이저 이용 등으로 더 안전한 처치법이 자궁적출술이나 관상동맥 우회시술법을 대체할 것이며, 인공 쇄석기를 신장결석뿐 아니라 담석을 제거하는 데도 응용해 피 흘리지 않는 수술시대를 실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전자 치료법 가능해져
 셋째로, 유전공학을 이용한 진단과 치료방법의 발전을 예측했다. 이것은 태아의 이상유무를 진단하고, 이상이 있을 경우, 비생식 세포의 유전인자를 조작함으로써 질환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흡연 및 각종 중독증 환자에 대한 유전자 치료가 가능해진다.
 넷째로, 진단 방법의 혁신이 이루어진다. 단일 클론성 항체와 생물학적 표지자 등 방사선 면역검정 방법이 개발되어 임상에서 암진단과 암 면역요법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자기공명장치와 함께 양자방출 단층촬영을 활용함으로써, 영상뿐 아니라 대사와 기능에 대한 동시진단을 가능케하는 진단방사선 장비 혁신이 이룩된다. 또한 통신망 발달에 따라 화상이 연결되어 공간 개념이 크게 축소할 것이라고 한다.

 김교수는 의학계의 이같은 발전이 결과적으로 의료 서비스 조직의 개념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는 환자 치료를 위한 서비스 조직으로 항상 병원을 떠올린다. 이 때문에 의료의 세분화?전문화 추세에 따라 종사 인원, 시설 등 규모 경쟁이 계속되었고 일반인들 사이에 ‘큰 병원이 좋은 병원’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공급자 주도로 만들어져 왔던 의료 서비스 조직이 환자의 수요와 취향에 따라 소비자 주도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환자 진료는 입원보다는 외래 형태로 바뀌게 되어 병원 재원 일수가 줄어들며, 환자들은 병원보다 호텔이나 가정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기를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병리학자인 제프리 피셔 박사가 저서 《RX2000(2000년 치료)》에서 예견한 ‘거실 병원’은 결코 공상이 아니라 현실인 셈이다. ‘거실 병원’은 각 가정에서 소변검사?혈액검사 등 통상적인 검사는 물론 질병 진단?치료에 대한 지침을 받게 되는 ‘재가 치료’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다. 피셔 박사는 미국 샌디에이고의 헬리콘 재단 부소장이며, 질병 예방분야의 기초의학 연구를 수행하는 병리학자이다. 그는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해 2천여 편의 의학 관련 저서와 논문을 읽고, 저명한 의과대학 교수 75명을 만나고, 관련 저서와 논문 4백30편을 인용하였다.

10년내 인공 장기 교환 실용화
 이 책은 미래에 우리가 접하게 될 의학의 실체를 조망하고, 구체적인 치료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유전공학.분자생물학적 진단, 시험관 아기 등이 상용화할 때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종족보존이나 친자관계 개념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 것인지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10년 안에 인공 장기 교환이 상용화할 것을 예측하며, 흡연?비만?마약을 포함한 각종 건강 유해 인자들이 분자생물학.유전학.신경약물학 같은 방법으로 제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10년쯤 후부터는 병원에 가지 않고도 개인이 혈액 검사를 할 수 있을 것이며, 각 가정에서는 가족의 건강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새로운 의학 장비들을 구비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생명 경시하는 신사고 생길 수도
 이 책이 발간되자 의학계는 ‘연구실에만 머물러 있던 의학 기술과 지식을 일반인이 알 수 있도록 대중화했다’면서 의학 기술의 미래를 알려주는 명쾌한 예측서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로스앤젤레스 대학(UCLA) 의대 교수 어네스트 노블은 이 책에 대해 “우리 생애에 일어날 일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과학적인 내용은 소설처럼 흥분시키며, 이 모든 것은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고 이해하기 쉬우므로 정신과 육체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교양서다”라고 논평했다.

 21세기 의학 발전은 엄청난 기여도 못지않게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 무분별한 하이테크 도입은 1차적으로 과잉진료 현상을 가속화해 환자에게 엄청난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미 불붙기 시작한 복제 인간 논란이 시사하는 것처럼, 인간 생명에 대한 기존 가치관과 의료 윤리를 뒤엎는 신사고가 새로운 논쟁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이다. 2000년대에는 냉동된 수정란이 10년쯤 후에 아기로 태어날 날을 기다릴 것이며, 대리모 회사가 출산에 관한 모든 수숙과 절차를 불편함 없이 대행해 주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장기이식술 발달로 이론상으로는 인간의 수명이 최대한 연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우리는 과연 장기 암 거래를 허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무뇌아를 복제하여 그로부터 장기를 제공받는 일을 당연하게 여겨야 될까. 피셔 박사는 2002년이면 장기이식 때 일어나는 인체의 거부반응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시험관에서 본인들의 정자와 난자로 무뇌아를 만들어 장기를 공여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미래 의료가 에덴 동산을 만들어 주든 아니든 그 새로운 세계를 여는 장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점이다. “과학의 진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문제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라는 미국 의학자 래리 도시의 말은 2천년대에 더욱 되새겨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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