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소리통’부터 크게 열자”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4.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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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국악의 해 맞은 국악계 “편견 바로잡고 접촉 기회 늘려야”



 93년은 영화 <서편제>의 해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2백20만 관객 동원이라는 신기록을 세운데다 국내 각종 영화상을 휩쓸다시피 했고, 마침내 감독 임권택이 문화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시사저널》의 ‘93 올해의 인물’로까지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서편제 증후군’이라는 말은 93년의 한국 문화를 특징 짓는 용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증후군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국악계의 지적처럼 국악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사회 분위기가 변했기 때문일까. 어쨌든 문화계는 ‘국악의 해’로 신년을 열었다. 그러나 국악의 해 첫걸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국악의 해가 지난해 10월 하순에 결정된 데다 12월24일에야 '94 국악의 해 조직위원회가 발족되는 바람에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물론 표어와 상징 그림조차 아직 만들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4년을 바라보는 국악계의 표정은 매우 밝은 편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소외되었던 것을 물론 천대까지 받아온 국악이 확고한 우리 음악으로 자리잡는 데 국악의 해가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세계 음악의 추세가 동양지향적이고, 낡고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 우리 것을 헌신짝 버리듯 하던 사회 분위기도 많이 변하고 있다.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뒤로 지난 1세기는 우리 것, 특히 국악에 대한 무지와 편견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4 국악의 해 조직위원회 위원장 황병기 교수(이화여대)가 가야금을 들고 다니면 멸시하곤 했던 것이 지난 시절 우리 모습이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해 처음 보는 악기는 양악기인 풍금이고,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장고 북 가야금 같은 우리 악기는 구경 한번 못하고 졸업하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서양 문명에 현혹되어 자석에 쇠붙이가 끌려가듯 우리의 모든 것은 서구 지향적이었다.

“국악 교육정책 하나만 세워도 성공”
 원로 음악 평론가 박용구씨는 “최근 반성이 일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현상적으로 매우 늦었다”라고 말했다. 해방 공간에서 민족 음악에 대한 반성과 계승이 이루어지고 뚜렷한 발전 대안이 제시되었더라면,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까지 사그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시절 국악이 섣불리 대중화를 추구하다가 타락과 변질을 경험했던 만큼 국악의 해에는 무엇보다 정통성 확립과 대중화라는, 두 바퀴로 움직이는 양면 작전을 써야 한다”라고 박용구씨는 말했다. 전통 예술은 먼저 온전한 형태로 보존한 이후에 거기에서 영향을 받고 대중화와 확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정통적인 레퍼토리로 구성된 세련된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통령을 오게 하고, 다른 쪽에서는 민요 판소리 사물놀이 농악 등 민중적인 것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박씨는 지적한다.

 우리 음악인 국악이 일반인의 관심권에서 멀어진 것은 그동안 음악 자체가 국민의 귀에서 차단된 데에 큰 원인이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서는 유일한 <국악춘추>(KBS1)를 제작하고 있는 최공섭 프로듀서는 “국민학교에 취재를 나가 가야금을 직접 타보게 하면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국악계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도, 사람들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일단 취사 선택할 기회를 충분히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 지휘자인 김영동씨는 “국악의 해는 국악 교육정책 하나만 세워도 대단히 성공하게 된다. 대학에 들어와서야 겨우 접촉할 수가 있는데, 국악을 알기가 얼마나 힘든가”라고 말했다.

 국악을 접촉하는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가하는 점은 학교 현장에서 국악을 직접 가르친 교사들의 경험에서 쉽게 확인된다. 낡은 것으로만 여기던 음악이 접촉 기회만 주면 어느덧 ‘멋있고 좋은 음악’으로 인식되어, 우리 악기를 다루는 것이 학생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84쪽 상자 기사 참조).

“공공기관?백화점 배경음악으로 쓰자”
 “아무리 좋은 문화라 해도 일반 시민과 접촉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국악 지도자는 해마다 14개 대학에서 수백명씩 배출되고 있다. 잠재된 그 인력을 활용하고, 교과 과정을 새로 꾸미는 등 교육제도 혁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국악의 해 사업 방향은 학교 교육과 사회 교육 두가지 측면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는 음악 평론가 이상만씨는 “한국의 구미화에 백년이 걸린 만큼 앞으로 백년 후에 독창적인 꽃을 피울 생각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악의 해에 한꺼번에 모든 일을 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과 더불어 국악의 생활화를 위해 사회 곳곳에 여러 가지 장치를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청와대에서 그 기와에 어울리는 형식으로 의전을 바꾸는 등 외형적인 것부터 변화를 주어야 한다. 우리 음악을 생활화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를테면 방송의 시그널을 국악으로 한다거나, 공공 기관이나 백화점 같은 곳에서 배경 음악으로 국악을 깔아 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국악 생활화를 위한 방법을 자꾸 개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제는 구미화하는 것이 새롭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서양 음악이 세계를 휩쓸었다고 보는 고정관념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몇몇 나라의 음악이 세계 음악을 이끈 것은 사실이지만 그 수용자들은 세계 인구의 8%뿐이며, 나머지 92%는 지역적 음악문화를 간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악 실내악단 슬기둥을 중심으로 국악의 대중화와 생활화에 힘써온 박범훈 교수(중앙대?한국음악과)는 “국악의 해가 만들어진 것 자체가 국악의 위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국민에게 들으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특히 방송 매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요 시간대에 관심을 유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편제> 현상 때문이 아니라 국악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간다는 사실을 느낀다는 그는 <서편제>의 주인공 오정해와 같은 스타를 배출하는 것이 국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옛것이기 때문에 싫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시기적으로 보면 판소리가 베토벤보다 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단지 맛을 모르고 감상하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국악의 꾸밈새에 반하게 하고 그 내용에 자꾸 관심을 가지게 해야 한다.”

 음악은 자꾸 듣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서편제>의 여파로 판소리 학원에 수강생이 몰리고, 김수철의 영화음악 음반이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은 국악이 단지 익숙지 않았을 뿐 우리에게서 결코 멀리 있는 장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러나 일반인은 궁중음악에서부터 거리의 사당패 음악에 이르기까지 국악에 다양한 장르가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김현숙씨는 “극히 일부 장르만 국악이라 여기는 인식을 국악의 해에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양악이 들어오기 이전에 사람들의 다양한 기호에 걸맞는 품격과 분위기를 가진 음악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는 사실을 일반 대중이 알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서양음악 편향도 큰 ‘방음벽’
 “국악과 국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지만, 국악이 충분히 발전될 수 있는 미래의 음악이라는 점을 인식시킬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이 나와야 한다.” 김씨는 대중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현대 감각의 가사로 된 노래들을 만들고, 대중음악식 접근방법 등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시도들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와 국립국악원, 그리고 일반문화계 인사들로 구성되어 지난 92년에 발족한 국악교육협의회는 1년 간의 연구 성과를 ‘국악 교육 내용 통일안’이란 책자로 꾸며 지난 12월 전국 학교에 발송했다. 국악 용어와 민요 악보 등을 통일한 이 책자는 전통 음악을 강조하는 새 교과서에 앞서 나온 교육 지침서인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국악을 가르치면 무척 좋아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인다는 어느 교사의 지적은 기성세대의 국악 인식에 대한 항변으로 들린다. 10년이 넘도록 서양음악 교육만 받아온 어른들이 다음 세대가 국악과 접촉할 기회마저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악 국제화를 위한 여러 방안도 모색되고 있지만 '94 국악의 해는 먼저 기존 인식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국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成宇濟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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