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오판의 희생자
  • 金賢淑 차장대우 ()
  • 승인 1994.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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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은.강정인 교수, ‘악법도 법이다’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정치 표어’



 소크라테스 사후 2천3백년, 한국의 철학계와 정치학회는 우연하게도 동시에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權昌殷 교수(고려대?희랍철학)와 姜正仁 교수(서강대?정치학)가 최근 발표한 두 논문 <소크라테스와 악법>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는 ‘악법도 법이다’가 소크라테스의 잠언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특수한 ‘정치 표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신을 섬기지 않고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혐의로 고발당해 두 차례의 재판후 사형당한 소크라테스는 직접 책을 쓴 적이 없다. 그는 플리톤을 비롯한 주변 몇몇 인물의 기록에 의해 자신의 철학을 이해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의 진실이 과연 무엇이었는가는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논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를 우리나라에서처럼 ‘나쁜 법이라도 일단 선포된 이상 지켜야 한다’라는 법실증주의의 선구자로 여기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것이 두 발표자의 시각이다.

 최근 철학연구회 학술지 제33집 《철학연구》에 <소크라테스와 악법>을 발표한 권창은 교수는 두 가지 면에서 소크라테스의 진실을 검증하고 있다. 첫째, 그가 그렇게 얘기한 전거, 즉 문헌상의 출처가 있는가. 둘째, 그가 어긴 법이 무엇이며 그들(소크라테스와 아테네 시민들)은 그 법을 악법으로 보았는가.

 권교수의 결론은, 어떤 문헌에도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기록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게 한 법을 악법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소크라테스와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그에게 적용된 불경건죄를 가장 엄히 다스려야 하는 죄로 합의하고 있으며, 그 죄를 다스리는 법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소크라테스는 친구와 제자들의 탈출 권유를 마다하고 독배를 들었을까.
 두 학자는 바로 이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식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특히 현행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법과대학 교과서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법철학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들이 예시한 자료 중 중학 1년용 도덕 교과서(한국교육개발원?84년판)의 ‘준법정신’편에는 ‘소크라테스는 나라의 법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의 길을 택했다. (중략) 조국과 자기 자신을 위하여 법을 어기는 대신 독배를 마시고 죽은 것이다. (중략) 그는 내가 법을 어긴다면 저 세상에 가서도 그곳 법의 노여움을 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씌어 있다. 이 도덕 교과서의 92년 개정판에도 학생들에게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토론해 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한국정신문화연구원?90년)에도 ‘그는 비록 악법이라 해도 법을 어겨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기꺼이 독약을 마셨다. 우리가 만일 소크라테스의 처지가 되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기술되어 있다.

법 자체를 비판한 기록은 전혀 없어
 강정인 교수는 이와 같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시민이 무조건적인 법규준수 의무를 강조하는 소크라테스의 일화는 움직일 수 없는 상식 차원으로 정착했다고 관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국내 법철학계의 논지도 이와 큰 차이가 없다. 그는 법학도들의 법사상사 교과서로 널리 쓰이는 《법률사상사》(박영사)에 ‘소크라테스는 실정법에 순종하는 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며 시민의 의무라 하였다’고 쓰인 단락을 한 예로 들면서, 이러한 구절들이 우리나라 법조인들의 법 의식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는 악법 거부 투쟁을 지지하는 인사들마저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라는 명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그 명제를 성립시키는 정치적 전제 조건이 실현되어 있지 않다고만 항변하는 실정임을 지적하고 있다.
 권교수는 “그가 탈출할 수 있는데 안하고 죽은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왜 죽음을 택했느냐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다”라고 강조한다.

 두 교수는 모두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악법의 희생자가 아니라 오판의 희생자로 여겼다’고 해석하고 있다. 권교수에 따르면, 그가 죽음을 택한 것은 아무리 나쁜 법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 아니라 사법부 판결의 권위를 수호하기 위해서이며, 이러한 태도는 호머 이래 희랍인의 전통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법 자체를 비판한 기록은 전혀 없으나 재판의 오류를 지적한 기록은 매우 충분하다”고 권교수는 말한다.
 강정인 교수 역시 소크라테스는 악법을 위해 순교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자기에게 내려진 판결만이 우연히 불의했다고 했을 뿐, 아테네 법률에 대해 이의를 표현한 적이 없었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우리나라 교과서 전반에 나타난 것처럼 기존 질서를 무비판적으로 옹호한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아테네의 불의한 권위에 도전했던 인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법과 양심이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불의에 적극 저항한 인물이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양 철학계가 수년간 지속해온 논쟁의 주제이기도 하다. 지난 91년 아테네학회에서 “소크라테스는 법의 정의로움 여부와 관계 없이 준법 자체를 정의로운 것으로 여긴 인물이었다”는 주장을 편 브릭하우스와 스미스는 권위주의적 해석의 대표적 인물이며, 크라우트와 같은 이는 소크라테스를 불복종 사상가 또는 시민 운동가로 파악하는 이른바 자유주의적 해석가로 알려져 있다.

일제?권위주의 정권에 악용돼
 권창은?강정인 교수는 위의 해석 가운데 후자의 입장을 표명한 셈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불복종 사상이 얼마나 철저한 것이었느냐에 따라 양자의 입장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강정인 교수는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기 직전 재판부가 내건 “철학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석방하겠다”는 조건을 거절했다는 점과, 정부의 명령을 거부한 과거의 행적을 언급하면서 소크라테스의 불복종 사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권교수는 당시 아테네 판결제도에 의하면 사법부가 피고에게 석방을 제의할 수 없으며 2차 재판에서 소크라테스가 사형 대신 벌금형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그가 불의한 명령에 불복종한 흔적은 있지만 초법적인 시민운동 차원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권교수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공권력의 불의도 나쁘지만 그에 맞서 불의를 행해서는 안된다는 자신의 정의관을 우위에 둔채 ‘불의에 대항해 불의를 행하는 것은 의무이며 권리’라는 아테네 시민 다중의 정의관에 대해 경멸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권교수는 “악법도 지켜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으나 근본적으로는 반민주적이며 계급적 편견이 강한 인간형이었다”고 소크라테스를 평가하면서, 권위주의적 해석을 하는 학자들조차 ‘명예 회복을 시킬 게 아니라 재고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두 교수 모두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의사와 달리 한국에서 신민 교육을 펼친 일제와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무조건적 복종 의무를 강요하는 데 악용되었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강교수는 소크라테스가 우리나라에서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 부역해 왔음을 상기하면서 ‘박제화된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불경건죄와 청소년타락죄를 걸어 다시 한번 유죄선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교수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우리나라 헌법 전문을 인용하면서 “이러한 헌법사상을 가르치는 데 소크라테스는 매우 부적절한 인물”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시급히 개정.삭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金賢淑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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