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뿌리려 해도 뿌릴 맛 안난다”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199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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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관광객 유치 미흡…외화 획득 ‘마당’ 넓혀야



 노태우 전 대통령이 94년을 ‘한국 방문의 해’로 선포한 90년, 미국에서 한국의 관광 산업을 취재하던 한 특파원은 여행 전문가로부터 가혹한 논평을 들었다. “미국 여행사들은 아시아 여행 패키지에 한국을 끼워 넣으려 하지 않는다. 값이 비싼 반면 시설이나 관광 상품은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 여행 전문가의 이같은 혹평은 한국 관광산업이 지닌 문제점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국 방문의 해인 올해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을 4백만명 유치하고, 외화를 42역달러 벌어들이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한국관광공사는 1월22일 용평스키장에서 개최한 국제 알파인 스키대회와 눈축제를 시작으로 올 한해 동안 무려 48개의 민속·스포츠·문화 행사를 연다. 관광 업계도 전에 없는 활기찬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햇수로 4년 전, 미국의 여행 전문가가 지적한 한국 관광의 취약한 국제 경쟁력은 아직 개선되지 않은 상태다.

 한국은 일본은 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관광하기에 돈이 많이 드는 나라로 꼽힌다. 한국의 여행 경비를 백으로 했을 때 태국(방콕)은 82, 대만은 87이다. 여행 경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호텔 요금(단체)은 한국이 백이라면 홍콩은 45, 태국은 57에 불과하다(아래 표 참조). 게다가 한국을 찾는 방문객들은 상대적으로 값이 싼 배편보다는 항공편을 이용해 입국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커진다(92년말 현재 전체 입국자의 94.3%가 항공편으로 입국) 그렇다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처럼 한국에 빼어난 휴양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서양 사람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가격과 상품 면에서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교통 체증에 발목 잡힌 관광산업
 호텔 요금이 비싸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金在珉 교수(세종대·관광경영학)는  “특급 호텔만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비싼 것처럼 보인다. 일본만 하더라고 특급호텔에서부터 비즈니스 호텔, 지방의 관광 여관까지 관광 숙박업이 다양하다.”라고 말한다. 일본의 관광 여관은 규모만 작지 침구라든지 욕실·화장실 등은 특급 호텔 못지 않다.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장급 여관과 같은 대중 숙박시설이 많지만, 시설과 서비스 면세서 외국 관광객을 만족시키기에 미흡하다. 숙박업이 다양하게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은 한국 관광산업의 경쟁력이 뒤떨어진다는 것을 또 한번 입증한다.

 한국이 내놓을 만한 손색 없는 관광지로는 민속촌·경주·제주도가 손꼽히지만 외국 손님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지낸다. 전국 관광 호텔 객실(92년말 현재 4만3천7백39개)의 39.5%가 서울에 몰려 있으며, 객실 이용률도 70%로 서울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따라서 서울은 매우 중요한 관광지이며 5백년 조선 왕조의 도읍이기 때문에 고궁 등 문화재와 위락시설이 풍부하다. 그러나 서울에서 관광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통이 막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행사로 손꼽히는 아주관광의 이경모 부장은 “서울 시내 관광 일정에 비원·덕수궁·창경궁 등 고궁 관람이 잡혀 있지만, 교통 때문에 관광객에게 양해를 구한 뒤 일정을 조정한 경우도 있다”라고 말한다. 일정 조정은 전체 일정을 위해서 불가피하고 외국 관광객도 여행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 주지만, 이는 분명한 계약 위반이기 때문에 유쾌한 기억을 심어 주지 못한다. 결국 교통 체증은 한국 관광산업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된다.

 서울은 외국인들에게 매우 불친철한 도시이다. 단체 여행객은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전세버스로 이동하기 때문에 관광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혼자서 또는 가족끼리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 도착했을 때 망연자실해진다. 말이 잘 통하지 않고, 간판이나 표지판도 내국인 위주인 데다가 호텔과 관광지를 이어주는 셔틀버스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처럼 고궁이 많은 도쿄는 셔틀버스가 정확한 배차시간에 따라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볼거리 상품화 실패…국제회의 유치도 난망
 한국의 관광 자원은 잠재력이 풍부하지만 이를 충분히 상품화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산속에 자리잡은 한국의 절은 특히 유럽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얼마든지 매력적인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다고 관광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의 자연은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 장관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5천년 역사를 가진 나라인 만큼 외국인을 매료시킬 수 있는 문화는 무궁무진하다. 다만 이를 국제 경쟁력 있는 관광 상품으로 만들지 못할 뿐이다. 사찰의 경우 불국사같이 대규모로 개발한 유명한 절을 빼놓고는 관광 상품으로 내놓을 만한 것이 별로 없다.

 80년대 초반 프랑스 파리에서 근무했던 한국관광공사 이경하 사업본부장은 프랑스 여행업자들로부터 한국의 절에서 잘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적이 있다. 이씨는 화장실이나 숙박 시설에 문제가 있다고 난색을 표했으나, 여행사측이 그래도 괜찮다고 고집해 대상이 될 만한 절을 물색했다. 그러나 주지 스님이 딱 부러지게 약속을 해주지 않고, “관광객들이 한국에 오면 그때 가서 한번 생각해 보가”고 해서 무산되고 말았다. 관광은 예약이 되지 않으면 상품으로 팔 수 없기 때문에 아깝지만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서울에 산재한 고궁도 훌륭한 관광 상품이지만, 이를 제대로 가꾸지 못하는 것이 한국을 더욱 볼거리 없는 나라로 인식시킨다. 김재민 교수는 “문화야말로 가장 훌륭한 관광상품이다. 그러나 고궁이나 전적지 같은 관광지에 안내판이나 소개 책자 하나 변변히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관광 안내원들도 한국의 문화를 제대로 소개하지 못해 고궁에서 사진이나 찍는 것이 고작이다.”라고 비판한다. 싱가포르나 홍콩같이 문화 유산이 없는 나라가 국제회의를 적극 유치하는 등 관광 전략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무려 7백만명이나 유치하는 것과 한국의 현실은 좋은 대조를 이룬다. 한국은 대규모 국제회의를 유치할 컨벤션 센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형편이다.

 한국 관광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관광수지적자로 나타난다. 90년까지만 해도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해외에 나가서 쓰는 돈보다 많았던 한국은, 91년부터 상황이 역전돼 관광수지 흑자국에서 적자국으로 바뀌었다. 지난해에는 적자 폭이 더욱 커져 5억5천만달러의 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60쪽 도표 참조)

 관광수지가 적자로 반전된 가장 큰 이유는 89년 여행 자유화 조처로 해외 여행이 크게 늘어난 데다가 해외 여행객의 씀씀이가 크기 때문이다. 88년 72만5천명이던 해외 여행객은 93년에는 2백41만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92년의 경우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평균 1천13달러를 쓴 데 견주어 한국인은 해외 여행지에서 평균 1천8백57달러를 썼다(60쪽 표 참조)

 한국인이 외국인보다 여행 비용을 더 많이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행 문화가 성숙하면서 89년에 비해 계속 줄어드는 추세를 보인다. 문제는 한국인이 해외에서 쓰는 돈이 많다기보다는 외국 관광객이 한국에서 돈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이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력의 약화다.

 과거 한국의 관광 명소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던 이태원 상가와 남대문 시장은 그 명성이 퇴색했다. 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 1인당 구매액은 90년 3백61달러에서 92년 3백12달러로 크게 줄었다. 외국 관광객이 한국에 머무르면서 달러를 뿌리고 갈 유인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다.

 관광산업을 소비성 서비스업으로 규정하여 각종 규제를 가한 것도 외국 관광객들이 돈을 쓸 수 없도록 만들었다. 김홍운 교수(한양대·관광학)는 80년 이후 정부가 관광업계에 부과한 제재 조처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다음 여덟 가지를 꼽는다. 호텔의 예식장 영업 규제(80년), 종합토지세 대폭 부과(90년), 기존 외래 관광객에게 적용되던 영세율 폐지, 나이트클럽과 같은 호텔 시설물에 대한 영업 시간 제한, 관광 산업을 소비성 서비스업으로 지정, 대출금리 차등 적용(이상 91년), 신규 대출 억제 및 기존 대출 회수, 환경오염 부담금과 교통유발 부담금 부과(이상 92년).

 이 중에서 호텔에서 예식장 영업을 못하도록 규제한 것이나 호텔내 시설물의 영업 시간을 제한한 것은 관광업계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조처라고 크게 비난받고 있다. 관광호텔의 객실 1개를 짓는 데 최소한 2억~3억원이 들어가므로 5백실 규모의 호텔을 지을 경우 1천억원이 넘는 목돈이 들어간다. 각종 규제 조처로 인해 은행 융자도 제대로 얻지 못한 채 큰돈을 들여 호텔을 지을 투자자도 많지 않지만, 호텔을 지어 보았자 식당·사우나·나이트클럽 등 부대 시설에서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은행 이자도 안나온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한국 호텔 업계의 대표적 기업인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영업 활동이 제한 받는 상황에서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숙박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고, 이는 관광 가격을 높여 한국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라고 말한다.

‘굴뚝 없는 공장’새로 짓자
  현재 세계 각국은 관광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총력전을 펼친다. 관광이 외화를 획득하는 중요한 산업으로 각광받기 때문이다. 미국 등 대부분의 관광 선진국들은 관광청을 두어 장관이 직접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관광객 유치 운동을 벌인다. 92년 현재 미국은 관광으로 5백10억달러를 벌어들여 제조업에서 잃은 경쟁력을 관광산업으로 만회하고 있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도 2백억달러가 넘는 돈을 관광으로 벌어들였다. 반면 한국은 한국 방문의 해인 올해 고작 42억달러가 목표이다.

 교통부 분석에 따르면, 연간 관광호텔 객실 1실을 판매할 때 올리는 수입은 엑셀 승용차 1.8대를 수출한 것과 같으며, 외국 관광객을 6명 불러들이면 엑셀 승용차 1대를 수출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 관광산업을 굴뚝 없는 공장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같은 경제적 효과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80년대 이후 관광산업을 육성하기는커녕 과소비와 사치의 주범으로 몰아붙여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것이 관광업계의 주장이다. 최근 정부는 관광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은 규제의 장벽을 하나둘씩 걷어내고 있다.

 한국 관광산업은 여행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상실한 데다, 수용 시설이 빈약하고, 불친절한 서비스와 바가지 요금 등 외국 관광객을 받아들일 만한 자세가 미흡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게다가 교통이 막히고 정부의 규제가 많다는 점도 관광산업이 발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같은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방문의 해가 열렸다. 한국관광공사 이경하 본부장은 “한마디로 외국 관광객을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수용 태세가 안돼 있다. 한국 방문의 해를 보내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날 것이지만, 우리는 바로 그 문제점 위에서 새로 출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 방문의 해인 94년은 국제 경쟁력을 상실한 한국이 관광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것이냐, 이대로 주저앉을 것이냐를 판가름하는 시험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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