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건달들> 공연장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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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인사들 리셉션장 방불케 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최근 5공 실력자 등 많은 측근을 이끌고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관람한 것은 단연 화젯거리였다. 전씨는 연극배우 손 숙씨의 참석 권유를 받고 1백 개의 좌석을 예약했다.

 이날 공연장에는 장세동 전 안기부장, 안현태 전 경호실장, 박 근 전 대사, 권복경 전 치안본부장, 김진영 전 육군 참모총장, 이규호 전 문교부장관 등 5공 고위직들과 전씨의 아들 며느리 사돈 등 일가가 총출동했다. 그런 탓인지 오페라 극장 VIP실은 마치 5공시절의 국무회의장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물론 연희동측에서는 이 날 대규모 관람에 별다른 의미가 없음을 강조했다. 오래전부터 과거에 친분 있던 사람들과 부부 동반으로 주 1회 산행을 다니고 있는 만큼, 그들과 연극 공연에 동행한 것도 자연스런 일이라는 것이다. 한 측근 인사는 전씨가 “운영이 어려운 극단들을 위해 자주 표를 구입하고 공연을 관람해 왔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날 전씨가 구입한 1백장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이어서, 지난 10일 청와대 4자 회동 이후 활동 반경을 부쩍 넓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한 측근 인사는 “어른이 초청하면 선약이 있더라도 제쳐두고 모여든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전씨의 장악력과 그 주변 인사들의 결속력을 과시하는 말이겠다.

 그러나 정가 일각에서는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누리는 것까지는 좋지만, 대규모 관람단을 끌고 나타나는 건 지나치지 않느냐는 비판론도 일었다.

“킹 메이커는 이제 그만”
김상현 의원 숨은 뜻은…
 킹 메이커를 자처해온 민주당 김상현 의원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김의원은 지난 연초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이제 킹메이커가 되겠다는 얘기는 취소”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킹 메이커란 소리를 자꾸 했더니 “사람들이 김상현이는 대통령은 되지 못할 재목이란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식으로 곡해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측근과 가까운 학자들이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는 충고를 계속해 왔는데, 일리 있는 말 같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얘기이다.

 김의원의 ‘킹 메이커’ 철회는 최근 그의 움직임과 관련해 관심을 끈다. 김의원은 지난 정초부터 공공연히 차기 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반이기택 세력의 총연대를 부르짖고 있다. 그는 자기가 당권을 잡으면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을 원내 제1당으로 만들고,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룰 자신이 있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는 김원기 최고위원에게도 대표에 출마해 자신과 경합한 뒤 연대하자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의원의 킹 메이커 철회가 단순한 이미지 개선용인지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과거 유진상 총재처럼 허약한 킹 메이커는 되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말이기는 하다

청와대와 연희1동 포옹이냐 외면이냐
6공과 화해설 대두… “아직은 냉기류” 주장 많아
 제6공화국과 화해인가, 더 단단한 결빙인가. 요즈음 정가에서는 청와대와 연희1동 간의 기류를 둘러싸고 추측이 분분하다. 최근 金種仁 의원(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집행유예 석방과, 金宗輝 전 외교안보수석이 미국에 영주권을 신청한 데 대한 정부의 강경 조처가 거의 동시에 진행됐기 때문에, 정가의 관측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

 화해론에 비중을 두는 쪽에서는 김의원 석방을 6공과 화해를 알리는 신호탄 정도로 받아들인다. 지난 1월10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전·현직 대통령 4인의 모임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도 있다. 당시 모임에서 노 전대통령은 자기의 부덕을 전제로 구속된 6공 인사들을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고, 이를 김대통령이 수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정계 의원들은 국민 대화합 조처로 정치권에 봄바람이 불어오는 게 아니냐며 은근히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기대감은 2심에 계류중인 朴哲彦 의원에 대한 석방 가능성을 점치는 성급한 관측마저 낳고 있다. 민주당은 6공과의 화해가 수구 대연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1월29일 민주당 朴智元 대변인은 “김영삼 대통령이 개혁을 부르짖었으나 이른바 4자 회동 뒤 개혁 대상들을 풀어주고 있어서, 우리 당이 염려한 대로 개혁이 후퇴하고 수구 대연합이 이뤄지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청와대 기류를 잘 아는 정치권 인사들은 지나치게 성급한 관측이라며 화해설을 부인한다. 더 나아가 청와대와 연희동 간에는 오히려 4자 회동 전보다 더 차가운 기류가 흐른다고 지적한다.

 청와대 쪽에서는 우선 4자 회동 자체를 정치권의 대화해 또는 특별한 대화합 조처를 전제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을 지낸 분들을 모셔서 밥 한끼 나누자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흩어진 민심을 모아 이제는 국가 경쟁력 강화 쪽으로 일로매진하자는 의미도 있었다. 그러나 화합 조처 등은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았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민주계 “6공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래”
 전보다 더 차가운 기류가 형성된 이유는 무엇인가. 청와대와 민주계 핵심 인사들은 그 이유를 꼭 집어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결같이 ‘盧在鳳 의원 발언’과 ‘김종휘 전 수석 영주권 신청 사건’에 대해서는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결국 청와대와 연희동 간의 냉기류에는 이 두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어렵잖게 감지할 수 있다.

 6공에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민자당 노재봉 의원은 얼마전《월간중앙》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성격과 내용을 비판하는 발언을 해 한때 정가를 긴장시켰다. 노의원이 발언 파동 직후 金種泌 대표를 찾아가 짤막한 해명성 발언을 한 데다, 노의원 자신도 지나치게 자극적인 제목을 뽑은 언론사에 사전에 항의한 것으로 알려져 파동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노의원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언짢은 심기와 의구심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선 그가 개혁을 운위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문제부터 따져야 한다. 그는 공안 정국을 주도하다가 강경대군 사건으로 물러난 당사자 아닌가”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노의원을 가리켜 “YS를 대통령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최후까지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나아가 민주계는 주도면밀한 성격과 조리 정연한 말 솜씨를 감안하면 노의원이 ‘치고 빠지기’를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버리지 않는다. 노의원 사건이 터지자 민주계 일각에서는 지난해 연말 도쿄에 머무르고 있는 朴泰俊 전 민자당 최고위원이 《한국논단》과 가진 회견을 통해 대통령선거 과정의 비화를 공개하며 정부를 비난한 사실과 결부하기도 했다.
 물론 노의원측에서도 반론은 있다. 노의원의 한 측근은 “학자이자 정치인이자 한때 국정을 담당했던 노의원으로서는 충분히 개혁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노의원이 김대통령을 괴롭혀 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쪽에서 항상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왔다”라고 반박한다. 결국 노의원 발언은, 그 내용보다는 발언한 주체와 비판 당한 측의 정치적 입장과 개인적 악연 때문에 더 크게 불거진 셈이다.

 이런 차에 율곡비리 수사가 시작되자 해외로 도피한 김종휘 전 외교안보수석의 미국 영주권 신청건은 6공 인사들에 대한 청와대의 비판적 시각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1월26일 오후 洪淳暎 외무차관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김종휘 전 외교안보수석의 영주권 신청을 신중히 처리해 달라고 미국측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날 회견은 1월부터 언론계에 파다했던 소문을 정부 차원에서 처음 인정한 것이기도 했다. 정가에서는 청와대가 김씨의 ‘망명성’ 영주권 요청 사실을 알고도 체면 때문에 쉬쉬 해오다 마침내 터뜨린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1월29일 미국 정부에서도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김씨에 대한 영주권 발급을 보류하겠다고 밝힘으로써, 김씨는 비자 만료 기간인 4월 이전에 소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귀국 시점 재던 이원조 의원 다시 칩거

 김씨의 영주권 신청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정부 보도 자료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날 배포된 ‘참고 자료’는 “책임 있는 공직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떳떳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책임을 지기는커녕 비겁하게 미국으로 도피했다”며 김씨가 영주권을 신청한 것을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배신 행위’라고 규탄했다. 이 자료는 ‘김씨 일가족은 물론 5년간 그가 맡았던 직무에 정치적·도의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도 그가 하루 속히 돌아오도록 하는 데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국방대학원 교수였던 김씨를 하루아침에 외교안보담당 보좌관으로 발탁하여 권력의 성층권으로 끌어들인 당사자는 바로 노태우 전태통령이이었다. 김씨는 사실상 6공의 가장 큰 치적으로 일컬어지는 북방 외교의 거의 모든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노 전대통령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지적이다.

 김씨 사건과 관련해 언론계와 정가에서는 재임 때 사건으로 두 차례나 감옥에 다녀온 張世東 전 안기부장과 대비하는 시각도 대두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감히 장부장과 김수석 같은 사람을 동렬에 놓고 비교하다니… 턱도 없는 이야기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장씨와 김씨의 정치적 비중이 달랐다는 점을 강조하는 발언인지 혹은 6공과 5공 사람들의 처신을 비교할 수 없다고 자부하는 발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측근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던 노태우씨는 자기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측근 인사들의 처신 때문에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석방된 김종인 의원이 연희동 자택을 방문한 날, 노씨는 요즘들어 처음으로 활짝 핀 표정을 지었다는 게 측근의 전언이다. 그만큼 마음이 불편했다는 이야기다.

 정가의 관심은 자연히 구속 수감중인 박철언 의원의 거취에 집중되고 있다. ‘6공의 황태자’로 불린 그는 슬롯 머신 업자 정덕일씨로부터 6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6억원을 선고 받았고,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민자당 김종필 대표는 1월26일 용인 연수원 연설에서 “올해는 선거 없는 해이지만 보궐선거 가능성은 있으므로 당은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면회객들로부터 이를 전해들은 박철언 의원은 “동료 국회의원이 결백을 주장하며 싸우는데 여당 대표가 보궐선거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유죄판결을 전제로 한 집권당 대표의 보선 발언은 재판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는 후문이다.

 청와대와 연희동 간의 냉기류는 일본에 도피중인 이원조 의원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들어 귀국할 시점을 이리저리 재보던 이의원은 다시 칩거 생활로 들어갔다. 김종휘 전 수석이 강제 소환될 경우 이의원의 귀국은 김영삼 정권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
 최근 청와대와 6공 인사들 사이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선택 사정”의 후유증과 자리에 걸맞는 책임감을 보이지 않는 전직 고위 관리들의 행태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徐明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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