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엔 약하고, 민원엔 강하다
  • 광주·김훈 편집위원/부산·조용준 기자 ()
  • 승인 199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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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제 광역의회 1년 점검… 부산 민자당, 광주 민주당 1당 ‘독재’도



광역의회가 7월8일로 개원 1년을 넘겼다. 국민들의 기대 속에 30여년 만에 부활한 지방자치제도는 그동안 의원들의 품위·전문성 결여, 중앙정부의 소극적 태도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 반면 행정부에 대한 견제·감시·숙원사업 해결 등 긍정적 측면도 많아 그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대표적인 광역의회로서 부산시와 광주시의회의 활동을 살펴 개원 1년을 점검해본다. <편집자>

 광주시의회는 23명의 의원 중 20명이 민주당 소속이고 3명이 무소속이다. 무소속위원은 ?宗烈(54) 安□禮(54) 李玧姃(37) 씨인데, 이들은 모두 지역사회에서 명망높은 재야민주운동가이다. 관주시의회는 민주당원과 재야운동가만으로 구성된 ‘1당’의회로 지난 1년간 의정을 펼쳐왔다. 광주의 수난과 저항의 역사 위에서, 시의회가 그처럼 선명한 당파성을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더라도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시민들의 바람은 우선 5·18 광주항쟁의 상처를 시의회가 추슬러줄 것, 다른 직할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생활과 환경의 질을 구체적으로 개선해줄 것, 그리고 시의회가 중앙정부나 중앙당으로부터 일정한 독립성을 누리고 위상을 확보할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바람들은 지방의회 수준에서 끌어안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짐일 수도 있었다.

 지난해 7월 시의회 출범 초기에 의장선출을 둘러싼 엎치락 뒤치락은 시의회와 중앙당과의 관계 정립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선명히 보여주었다. 중앙당의 지구당위원장들은 이때 鄭潭鎭 의원(65)을 의장으로 내정했는데, 표결 결과 鄭의원이 낙선되고 金吉 의원(52)이 당선되었다. 이때 지구당위원장들은 이 표결결과를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항명이라는 말에는 중앙당의 지구당위원장들이 시의회를 하나의 독립된 지방대의기구로 보지 않고, 중앙당에 예속된 하부기구로 보고 있다는 시각이 담겨 있었다. 시의원들이 뽑은 김길 의장은 서울로 올라가 金大中 총재를 면담한 후 “총재와 당에 누를 끼칠 것을 우려해 “당선된 지 5만에 의장직을 자진사퇴했다. 김길 의장의 사퇴파동은 시의회의 정치적 위상에 관한 심각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지방자지회의가 중앙정부로부터 독립되는 것보다 의원들이 중앙당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어두운 염려가 지역사회에 팽배해졌다.

 

시민의 편에서 대형 사고 잘 마무리

광주시의회의 8·15 특별위원회는 광주항쟁의 역사적 위상 확립, 진상규명과 책임소재 파악, 상처 치유, 보상과 명예회복, 항쟁정신 승계사업 등과 관련해 시민들의 뜨거운 여망과 시선을 모아왔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그 여망은 상당부분이 퇴색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의회는 매우 실무적인 문제로부터 접근해들어갔다. 현지에서의 기념사업이나 묘역정화사업 같은 것들이었다. 상무대지역을 개발해 8·15 유족과 부상자들에게 생활의 터를 마련해주지는 안은 가장 규모가 큰 현실적 보상안이었다.

 시의회가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서울로 올라가 중앙당에 건의하는 것이었다. 鄭順吉 의장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 사업의 실현은 사실상 어렵다”고 털어 놓았다. 시민들의 생활민원을 수렵해 행정에 반영시켜 삶의 질을 구체적으로 개선해 달라는 요청에 관주시의회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쓰레기매립장 건설이나 금남지하상가 조성과 관련된 문제규명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광주의 가장 큰 대형사고였던 해양도시가스 폭발사고를 뒷마무리하는 데도 시의회는 시민의 대표다운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시의회는 이 도시가스사업장부지를 연차적으로 시외곽으로 이전시킬 것을 시 당국과 합의했고 특히 피해주민들에 대한 보상액을 주민이 요구하는 수준에까지 끌어올렸다.

 시민의 편에 서는 시의회의 중재와 영향력이 없었더라면 이 대형사고의 뒷마무리가 이처럼 산뜻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의원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소장인 黃一奉 의원(35)은 “야당일색이 되고 보니 우리는 원내에서 여당의 기능을 겸해야 한다. 예산 중에서 정보비, 혹은 전시효과를 노리는 부분을 삭감해서 민생부문으로 돌릴 때 우리는 야당이지만, 시당국의 입장을 중앙정부로부터 보호해야 할 때 우리는 야당의 기능을 갖는다. 무엇이 지역의 이익인가를 늘 세밀히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의회의 1년은 이 지방회의가 제한된 권한과 정치적 지위로 얼마만큼의 현실개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실험해본 세월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과 아직은 할 수 없는 것이 그 1년 동안에 어느 정도 분명히 드러난 셈이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을 말할 때 흔히 등장하는 것이 이름바 ‘3難4場’이라는 말이다. 재정난·교통난·주택용지난이 ‘3난’이고, 쓰레기 매립장·분뇨 처리장·화장장·연탄 저장장을 더 세울 데가 없어 나온 말이 ‘4장’이다.

 오늘날 부산시의 거의 모든 문제는 대부분 지형상 도시가 더 이사아 뻗어나갈 수 없는 한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부산시의회의 지난 1년 동안의 성과 가운데 가장 주목할 것은 92년 시예산 심의에서 2백97억원의 소모성 경비를 대폭 깎아 주민숙원사업이나 ‘3장4난’ 해결 사업에 우선 사용하게 편성한 일이다. 이를 위해 부산시의회는 부산지역 시민대표 및 학자, 언론인을 불러 시급한 현안이 무엇인지 공청회를 열었고, 이에서 나온 중론대로 덕천로타리 도로확장 공사에 68억원을 투입했다. 부산시의회는 또 추경예산 심의 때에도 소모성 경상사업비 가운데 40여억원을 삭감해 노인복지 및 교통시설 확충에 사용하도록 했다.

 시의회의 禹炳澤 의장은 “예산을 깍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절감한 예산을 어디에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깎아서 그냥 예비비로 두면 고양이에 생선 맡긴 격이라는 것이다. 우의장은 또 “거의 모든 시의회에서 예산을 심의할 때 의원들의 출신 지역구에 우선적으로 배당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부산시에서만큼은 당면 과제 순서대로 배당하는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국의 다른 시·도의회가 이권개입이나 청탁으로 인한 의원 구속 등 잡음과 물의를 빚고 있는 것과 달리 부산시의회는 불미스런점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도 의회 운영에 그런대로 합격점을 줄 만하다는 것이 현지의 대체적이 평가다.

 

컨테이너稅 만들어 도로 건설

 시의회가 가장 중점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시재정 확충이다. 이를 위해 부산시의회는 이미 ‘컨테이너세’를 신설해 독자적인 재원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시의회에서는 연간 약 5백여억원이 걷힐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에 부산시가 약 1천5백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임항도로 신설 및 보수에 투자할 계획이다. 우의장은 “목적세라는 명분에 맞게 도로난을 해결하는 데 쓸 방침”이라면서 “결코 다른 용도로 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시의회의 업적을 살펴보면 버스 노선 조정을 요구하는 청원 6건과 진정서 2백23건을 접수해 24건을 자체 처리하고 28건을 해결했으며 1백71건은 실현 가능한 방향으로 처리해줄 것을 부산시와 관련 기관에 촉구하는 등 새로운 민원창구 노릇을 했다. 또 해운대 신시가지 건설사업 시행에 관한 조례 등 21건의 조례를 제정하고 폐기물 수집 수수료 등 62건의 조례를 개정하는 등 의회 최대 기능인 입법 기능을 발휘했다.

 부산대 許鍾玉 교수(정치학과)는 “지금까지도 진정한 자치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실정에서 부산시의회가 시 현안인 ‘3난4장’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은 희망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부산시의원 51명 가운데 50명이 민자당 소속이고 단 1명만이 민주당 소속이어서 지방정부 견제면에서는 허약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의 李松鶴 의원은 “도탕에 빠진 부산시 경제를 어떻게 살리느냐를 논의해야 할 시간을 정부의 ‘새 생활, 새 질서’ 운동에 대한 토의로 때우는 형편이다. 거의 여당 의원으로 의회가 구성되다 보니 중앙정부의 지침이 여과없이 통과된다”고 지적했다. 이의원은 또 “시의 사회 복지 예산 가운데 약 50여개에 달하는 관변 단체에 대한 지원금이 들어있는데 이는 명백한 선거용 비용이지만, 이를 제지할 힘이 없다”고 말했다.

 환경이나 마약 문제도 부산시의회가 처리해야 할 시급한 사안이다. 환경 문제는 부산시 자체적인 공해시설 제거 노력 말고도 낙동강 상수원 오염에 관한 것이 최대 문제가 돼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대구지역의 비산염색공단 이전 문제가 먼저 풀려야 한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다른 지역 지방의회와 어떻게 협력 관계를 이루어내느냐를 따져 볼 하나의 선례가 되고 있다. 마약 문제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산시의회가 눈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사안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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