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와 춤 난무하는 명랑 소녀들의 나들이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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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고 수학여행 동행 취재기/유적 답사·기념품 등은 뒷전

 
서울 서초구 동덕여고 1학년 학생들의 수학여행에 따라나섰다. 여고생들은 밝고 당당했다. 일진·왕따·가출 따위 청소년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행동은 반듯했다.

지난 4월12일 아침 8시20분 서울역에서 동덕여고 학생 5백명이 경주행 무궁화호 전세 열차에 올랐다. 기차를 처음 타는 학생도 있었다. 대부분 비행기는 자주 탔다고 한다.
기차에서 학생들은 휴대전화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학생도 많았다. ‘프라이팬 놀이’ ‘쪽팔려’ 게임이 인기였다. 기차 곳곳에서는 춤판이 벌어졌다. 장기자랑에서 1등을 하면 10만원을 받는다며 짝을 지어 춤 동작을 연습했다. 가위바위보 한 번에도 학생들은 웃음보가 터져 멈추지 않았다. 기차에 오른 지 한 시간쯤 지나자 귀가 따가웠다.
 
6호차는 ‘짬뽕’차다. 6호차에는 동덕여고 학생 외에도 수학여행 가는 대신고 2학년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눈을 맞추려는 학생들이 밀려왔다 밀려갔다. 여학생들도 무리를 지어 남학생들을 보러 왔다. 자리로 돌아가라는 선생님의 말도 듣지 않았다. 선생님이 “남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라고 하자, 한 학생이 “원래 그런 거예요”라고 받아 넘겼다. 남학생들은 관심을 보일 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자 여학생들이 쪽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오후 1시40분 경주에 도착했다. 경주역 부근에 있는 천마총이 첫 번째 코스. 일단 커다란 무덤 앞에서 기념사진부터 찍었다. 천마총 옆에는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신라의 통일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찬란한 민족 문화를 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경주지구 개발의 대영단을 내리셨다’라고 쓰인 비석이 서 있었다.

전문가 초빙해 문화재 교육도 진행

천마총 옆에 있는 첨성대를 보고 한 학생이 석가탑이라고 했다. 안압지를 보고 나서야 일정이 끝나 숙소로 들어왔다. 아직 한 고비가 남아 있다. 선생님들은 소지품 검사를 했다. “눈 감고 모두 머리 숙여.” 선생님은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만약 자진 신고하지 않고 소지품 검사에서 금지 물품이 적발되면 학칙에 따라 처리한다는 ‘협박성 멘트’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학생들은 숨겨온 캔 맥주와 생수병에 넣은 소주를 꺼내놓았다. 선생님들조차 학생들이 너무 순진하다고 했다.  
저녁식사 이후에는 전문가를 초빙해 경주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사진 찍고 돌아서던 예전의 수학여행보다 나아졌다.

 
그 다음은 자유시간이다. 방과 복도에서는 춤 연습을 하는 꾼들이 보였다. 학생들은 춤추는 것을 특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든 복도에서든 음악만 나오면 몸을 움직였다. 수학여행에 게임이 빠질 수 없다. 말뚝박기 놀이와 ‘젓가락 때리기’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화투를 하는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학생 대부분이 화투놀이 방법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수학여행 시즌이었지만 숙소 밖은 고요했다. 수학여행객을 맞기 위해 만들어진 유스호스텔 마을에서 학생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학생들이 묵는 유스호스텔마다 철문은 단단했고 담장은 높았다. 또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예전처럼 밤에 숙소를 빠져나와 남녀 학생들이 만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둘째 날은 석굴암과 포석정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은 마냥 즐거웠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손을 흔들었다. “외국인을 보니 반갑고, 커플은 행복하라고요.”
관광지마다 즐비하던 기념품 가게는 한두 곳만이 명맥을 이었다. 학생들은 기념품 매장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전국 관광지마다 같은 기념품을 20년 넘게 팔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은 잘 알고 있었다. 기념품 매장에서 물건을 산 친구를 딱 두 명 보았다. 한 명은 나무로 만든 장난감 뱀. 수학여행 때에는 방에서 꼭 뱀이 등장한다. 다른 한 명은 대나무 안마기를 샀다. 학원 선생님이 사오라고 했단다.

 
맛없는 단체 급식,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수학여행 내내 숙소 한 곳에서 밥을 먹었다. 매번 식단이 바뀌기는 했지만, 학생들은 입이 나왔다. 밥맛이 없다며 과자를 끼고 다녔다. 입맛에 맞지 않은 단체 급식은 수학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오후에는 감포의 수중 문무대왕릉과 호미곶 등대박물관을 돌았다. 이 코스는 학생들의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쉬지 않고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기를 보지 않고도 메시지를 정확히 보낸다. 수업 중에 주머니에 전화기를 넣고 문자를 보내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휴대전화는 학교에서도 골칫덩어리다. 동덕여고는 등교하자마자 휴대전화를 모두 수거해 하교할 때 나누어주고 있다. 학교 내에서 전화를 갖고 있다가 걸리면 보름간 압수 처분을 받는다. 그런데 부모들로부터 전화를 돌려달라는 전화가 자주 온다고 한다.

 
밤 8시, 수학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장기자랑이 시작되었다. 안전 문제로 캠프파이어는 사라졌다. 대신 나이트클럽의 현란한 조명이 완비된 무대가 학생들을 맞았다. 각 반 대표들은 대부분 단체 섹시댄스를 들고 나왔다. 이효리·채연·비의 안무가 인기가 높았다. 다들 어찌나 잘 하던지 방송국에서 쇼 프로를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장기자랑으로 분위기는 절정을 향했다. 방마다 떠나갈 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학생들은 술을 마실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도 없었다. 한 학생은 “1학년 초부터 선생님에게 찍히면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1학년 주임 이정휘 선생님은 “공부를 못해도 대학에 갈 수 있어서 포기하는 학생이 없다. 최근 2~3년 사이 흡연하는 학생이 급격히 줄었다”라고 말했다.

교사들에게 찍힐까 봐 술과 담배는 피해

마지막 날 불국사에 갔다. 다보탑·석가탑 앞에서 찍는 기념사진에 학생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로 연방 자기 얼굴만 찍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학생들은 약간은 과장된 포즈를 취했다.
학생들은 옷에 대단히 신경을 썼다. 코드는 힙합. 폴로 티셔츠에 리바이스나 캘빈클라인 청바지, 아디다스 트레이닝 점퍼를 걸치는 것이 ‘대세’라고 했다. 여기에 나이키나 스프리스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신발끈은 네 개만 묶어 신발의 칼라를 꺾어 신지 않으면 ‘비호감’ 소리를 듣는다.
올해는 미니스커트가 고등학생 사이에서도 유행이다. 한 여자 선생님은 “미니스커트는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기어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왔다. 학생들이 각선미와 상관없이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다”라고 말했다. 미니스커트에 뾰족구두를 신고 온 학생들은 추워서 고생했다.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 말 들어서 손해볼 것 없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나이 먹은 친구쯤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선생님의 지시가 떨어지면 곧바로 ‘헐’이라는 말이 뒤따른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면 ‘뭘 쏠 거냐’라고 묻는다고 한다. 어떤 학생은 선생님 앞에서 친구에게 ‘새끼’라는 말을 계속 썼다. 선생님이 “조용히 해!”라고 하니 바로 “싫어요”라고 했다. “자라”고 하니 “잠이 안 와요”라고 응수했다.
이정휘 선생님은 “이해찬 세대 이후 아이들의 자율성이 강조된 나머지 선생님의 권위가 급격히 무너졌다. 남자 선생님을 좋아하는 건 5년 전에 사라진 유물이다”라고 말했다. 청소년지도사 송영일씨는 “요새 고등학생들은 대단히 이기적이다. 남 얘기를 듣지 않고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멋대로 말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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