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골절’ 깁고 제2탄생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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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8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재활병동에서는 한 장기입원 환자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퇴원했다. 만 7개월여 만에 목발을 짚고 병원 문을 나선 이 환자는, 문화방송 보도국 국제부 沈在哲(36) 기자였다.

 지난해 6월30일 새벽 〈MBC 뉴스 와이드〉 프로그램 생방송을 하러 집을 나선 그는 한강 철교 부근에서 대형 사고를 당했다. 반대편에서 과속으로 달려오던 5t 트럭이 중앙분리대를 넘어 그의 차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바람에 중상을 입은 것이다. 92년 문화방송 파업 사태로 구속 수감되어 3개월여 복역하다가 출감한 지 반년 만의 일이었고, 방송에 얼굴을 내민 지 겨우 2주째 되는 날이었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연세대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그날 밤 8개 과 전문의들로부터 여덟 시간이나 대수술을 받았다. 집도 의사들은 환자의 심장을 둘러싼 심낭 일부가 찢어져 심장이 밖으로 나온데다, 횡경막 · 비장 · 신장 · 폐 조직이 두루 손상됐음을 확인했다. 동료 직원, 전경, 대학생 등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헌혈로 어렵사리 목숨을 건졌지만 수술 뒤에는 패혈증까지 겹쳐 두 번이나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초여름 새벽 방송 때문에 집을 나섰다 사고를 만난 그가 의식을 회복한 것은 초가을에 접어든 지난해 9월부터였다. 그동안 재활병동에서 걸음마 연습을 했지만, 그는 아직도 왼쪽 무릎 밑으로는 감각이 없다. 손상된 신경은 하루에 1㎜씩 느리게 복원되고 있어서, 1년쯤 지나야만 제발로 걸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다.

 그는 58년생이다. 유신 말기의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속에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한 그는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서 80년 ‘서울의 봄’을 맞았고, 당시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연이은 가두 시위를 주도했다. 때문에 그는 국회 5공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돼 “80년 학생 시위는 결코 군부를 불러들일 정도로 과격하지 않았다”라고 증언했다. ‘논리적인’ 그의 증언은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졸업 이후 뛰어든 방송국 생활도 대학생활 못지 않게 격랑의 연속이었다. 방송가에 불어 닥친 방송 민주화 열풍 속에서 노동조합 간부를 지냈기 때문이다. 늦장가를 들긴 했지만, 공정 방송 감시니 파업 시위니 해서 일요일에도 가족과 지낸 기억이 별로 없다. 그야말로 ‘조직의 쓴 맛에 지치고 개인의 단맛은 못본’ 58년 개띠 (《시사저널》제224호〈너도 개띠냐?〉참조)세대다. 이것도 부족해서 그는 남들이 좀처럼 겪지 않는, 개인사적 불행까지 치러냈다.

 그런데도 정작 그의 표정은 환하고 밝았다. 그는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다. 보너스 인생인 만큼 되도록 남에게 도움이 되도록 살겠다”라며 활짝 웃었다.
徐明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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