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뒤로 부친 편지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4.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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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참전 무장의 어머니 전상서 / “굶어 죽게 되니 어찌 원통치 아니하리오”

동학은 아직도 불완전명사다. 농민 전쟁인지 농민 혁명인지, 아니면 그저 난인지 결정을 보지 못한 채 백년이 흘러왔다. 저 동학이 백년 뒤인 1994년 지금,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노자 한푼 없이 굶어 죽게’ 된 형국이었다. 그래서, 원통할 수밖에 없다는 한 동학군의 어머니 전상서는 사신의 차원을 넘어선다.

 동학 백주년. 반외세 반봉건을 외치며 그야말로 ‘들불’처럼 일어섰던 동학은 ‘중음신’처럼 이 땅 위에 떠돌고 있다. 원혼들은 모질어서, 미련이 많아서 좀처럼 떠나가 주질 않는다. 살아 남은 자들에게 주어진 몫은 슬픔일 터인데, 그 슬픔은 반성이나 살아 나가야 할 힘으로 승화되지는 않고 있다.

 최근 광주 · 전남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공동의장 李相寔 전남대 교수)가 공개한 한 동학군의 옥중 편지는 ‘동학은 끝나지 않았다’고 ‘육성’으로 외치고 있다.
 백년 전에 발송한 이 편지의 사료적 가치는 매우 크다. 동학 기록에 따르면 ‘나주 동창 유기 모시굴점등’은 중요한 싸움터였다. 기록에 의하면 13명이 죽고 14명이 포로가 되었는데 그 중 한사람이 바로 이 편지를 쓴 韓澾文으로 확인되었다. 이 편지를 통해 당시 동학군이 농민들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이상식 교수는 “동학 농민혁명은 하층 민중의 불평 어린 반란이 아니라 모든 계층이 동참한 거룩한 전쟁”이라고 말했다. 그밖에도 동학의 전쟁지도가 더 남쪽으로 내려갔고, 당시의 부패상과 19세기 말의 서간문 형식 (이번에 발견한 편지는 최상급 무관의 것이지만 한글 쓰기는 서툴렀다) 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백주년기념사업회측은 앞으로 《동학농민혁명과 광주 · 전남》이란 책자를 발간할 참이다. 그러나 이같은 성과는 오히려 작은 것인지도 모른다.

 양반 계급 (당상관) 인 한달문은 편지를 화순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냈지만, 백년이 지난 지금 그 수신인은 바뀌었다. ‘부디부디 명심 불망하옵고 즉시 오시기를 차망복하옵니다’라는 애원은 우리들에게 향해 있다. 백년 전과 흡사하다며 국제화 · 세계화를 다그치는 위정자들에게, 우루과이 라운드 발효로 살얼음판 위를 걷는 메이드 인 코리아에게, 통일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에게 보내진 이 옥중 편지는 ‘공문서’인 것이다.
 그리고 또 이 공문서는 말한다. 동학의 이름이 확고하게 지어지지 않는 한, 동학의 원혼들은 끊임없이 ‘불효한 자식’들 앞에 출몰할 것이라고.
李文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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