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에이즈’로 자살까지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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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된 상식에 ‘공포증 환자’급증…‘수혈 감염’ 확률 1백30만분의 1


 에이즈 환자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처음 발견된 지 11년. 현대의 흑사병이라 부르는 이 병은 몽고 기병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전 세계를 정복해가고 있다. 최근까지 세계보건기구에 보고된 1백64개국의 에이즈 환자 수는 48만3천6백48명인데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이미 사망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5년 이내에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한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환자 수보다 감염자 수가 훨씬 많아 현재 모두 1천만명으로 추산되며 95년경에는 1천6백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이 지경에 이르자 병 자체 못지 않게 에이즈에 대한 공포도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경우 에이즈 감염자 수(7월 말 현재 2백2명 · 국립보건원 집계)에 비해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지나치게 과장되고 있어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에이즈와 관련한 터무니없는 유언비어가 횡행하고 있으며 스스로 에이즈에 걸렸다고 속단하고 목숨을 끊는 사람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대전 모 공고 교사인 ㄱ씨는 자기 집 안방에서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ㄱ씨는 터키탕 여종업원과 관계를 맺은 뒤 몸에 부스럼이 생기는 등 이상증세가 있자 에이즈에 걸린 게 아닌가 고민하다 부인과 주변 친지들 볼 면목이 없다고 목숨을 끊었다.

 

내과 · 정신과 ‘에이즈 상담’ 줄이어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ㅈ씨는 요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두문불출하고 있다. ㅈ씨는 사업차 태국에 갔을 때 그곳 유흥가에서 성관계를 가졌는데, 그 뒤 자주 설사가 나고 몸에 반점이 생기자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정리하게 됐다. ㅈ씨는 가족과 식사도 하지 않고 방도 따로 쓰며 일절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있다. ㅈ씨는 국립보건원에서 에이즈 검사를 받고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자신이 감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가정주부 ㄱ씨는 지난해 첫 아이를 낳을 때 수혈을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뒤 까닭 없이 체중이 줄고 만성적으로 피로를 느껴 에이즈 감염되지 않았는가 의심하게 됐다.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께름칙한 생각을 떨칠 수 없어 남편과 아이를 가까이 하기가 두려웠다. ㄱ씨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으나 끝내 정신적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현재는 남편과 별거상태에 있다.

 이들과 같이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에이즈 공포는 더욱 확산 돼가는 추세이다. 종합병원 내과나 정신과에는 요즘 들어 상담을 하거나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지난 87년 보사부 지정으로 에이즈 상담전화를 개설한 한국건강관리협회에도 올해 들어 월 평균 3백건 이상의 상담문의가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상담 문의자들은 대부분 최근 해외여행(특히 동남아 등지)을 다녀왔거나 수혈을 받은 사람들이다.

 연세의료원 이호영 박사(정신과)는 “국민소득이 6천달러가 넘으면 급속도로 건강염려 증후군 환자가 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에이즈 공포증 환자도 최근 부쩍 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에이즈 공포증은 ‘당당히’ 독립된 병으로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환자는 동성연애자나 동성연애자 밀집지역에 사는 주민 사이에서 많이 발생한다. 환자 중에는 동성연애자 거주지역에 있는 치과에서 이를 뽑았거나 모기에 물렸다고 해서 강박상태에 빠지게 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에이즈 공포증은 얼핏 가벼운 병처럼 보이지만 미국에서는 이 병에 걸린 환자의 자살률이 만성 신장염 환자의 자살률에 이어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심각하다.

 

에이즈균에 노출 12주 후면 감염 여부 판별

 국립보건원 신영호 박사(면역결핍연구실장)는 “에이즈의 위험을 경시해서도 안되지만 지나치게 두려워하면 더욱 나쁜 결과를 초래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증폭돼 감염자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면 감염자는 더욱 움츠러들게 되고, 그러면 에이즈는 더욱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박사는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에이즈 공포는 대부분 단편적인 지식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에이즈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우선 가장 두렵게 여기는 사실은 에이즈균의 잠복기간이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검사를 받더라도 발병하기까지는 감염됐는지 아닌지 알 수 없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내려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검사 유효기간과 잠복기를 혼동한 탓이다.

 에이즈 검사는 항체 유무로 판별하는데 에이즈 항체는 대부분 2주일만 지나면 형성된다. 늦더라도 12주가 지난 다음에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에이즈 감염 여부를 판별해낼 수 있다. 따라서 에이즈균에 노출됐다고 믿는 시점으로부터 3개월 이후에 검사해보면거의 틀림없이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검사 받기 전 2주 이내에 감염됐을 경우인데 미국의 감염자들은 대부분 성관계가 문란한 동성연애자들인 탓에 오진할 가능성이 높지만 우리는 경우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성연애자들도 미국처럼 그렇게 성관계가 문란하지 않으며 일반인들은 더더욱 에이즈균에 노출될 기회가 적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에이즈 공포증 환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언제 에이즈균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는지 알기 때문에 그 시점을 계산해 검사를 받으면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검사결과를 믿지 못하는 것은 미국적인 관점에서 쓴 각종 보도나 보고서를 읽은 탓이다.


10년간 수혈 감염자 6명뿐

 에이즈 공포를 호소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병원에서 수혈받은 사람들이다. 최근 수년간 잇따라 보도된 수혈 환자들의 에이즈 감염 소식은 확실히 충격적이긴 하다. 수혈환자들은 에이즈 감염에 대해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통계숫자는 좀더 냉정해지기를 요구한다. 국립보건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국내에서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은 모두 6명이다. 또 87년 에이즈에 대한 검사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나서부터 지난 5년 동안 감염된 사람은 모두 3명이다. 연간 대략 80만명의 사람들이 수혈을 받는데 그렇다면 1백30만명 중 한명꼴로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지난해 서울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수는 1천2백명 정도인데 서울시 인구를 1천2백만으로 잡으면 1만명당 한명꼴로 변을 당한 셈이다. 그에 비하면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은 천재지변에 가깝다고도 말할 수 있다.

 물론 1백만명 중 한명이든 1천만명 중의 한명이든 수혈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같은 불안에 짓눌려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최근 외신은 에이즈 백신 인체실험을 자청한 용감한 프랑스 사람들의 얘기를 전하고 있다. 지레 겁먹고 움츠러만 드는 것은 인류의 최대 적인 에이즈에 맞서는 바른 태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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