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신경영’ 만병통치 아니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4.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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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기법 ‘마구잡이’ 도입…목표 문명해야 성공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 벤치마킹, 다운사이징. 이런 낱말들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자신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여겨도 좋다. 이 말들이 지난 한 해를 풍미했다거나, 이런 제목의 책이 대형 서점에 수북이 쌓여 있다고 해서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경영 자문가(컨설턴트)들에게나 익숙했던 이 용어가기업과 정부를 비롯한 모든 조직에 구원의 메시지처럼 울려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이 이런 새 경영기법에 대한 ‘이상열기’에 휩쓸리기 시작한 것은 1년여 전부터. 그들은 경영학 교수와 경영 자문가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에게 ‘우리 기업을 리엔지니어링해 주십시오’라거나 ‘전산 시스템을 다운사이징해 주십시오’라고 절박하게 매달리고 있다.
 신경영기법 신봉자들은 경영자들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기업의 사무 혁신 기법을 배우려는 공무원들도 이 대열에 가담하고 있다. 일부 경영 자문가는 몇몇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자문해 주거나 공무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다. 최근 삼성 용인연수원에서 내무부공무원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에 대해 강연한 이순철 교수(홍익대·경영학)는 “일부 공무원은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과 같은 경영기법들을 ‘신사고’와 같은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삼성그룹을 비롯한 일부 기업은 정부에 신경영기법을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왜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이나 벤치마킹, 다운사이징 같은 새로운 경영기법이 만능 요술상자로 둔갑했을까. 매킨지 한국지사의 한 경영 자문가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라고 주장한다. 언론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경영기법을 만능의 표약처럼 표사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새 경영기법이 유행하게 된 배경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이 새로운 경영 상품들은 때를 잘 만난 것 같다. 90년대 들어서면서 국내 기업들은 최장의 경기 침체와 개방 파고 슥에서 큰 위기의식을 느껴왔다. 경영자들은 저임금 노동력과 정부지원이라는 전통적인 경쟁 우위 요소가 무너지면서 기업의 경쟁력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경쟁력 추락과 삼성의 혁신이 자극제
 새 정부 출범과 때를 맞춘 삼성그룹의 ‘신경영’도 자극이 됐다. 정부와 가장 앞선 기업의 예는 새로운 사고를 자극했다. 새로운 기법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편에 속하는 대림산업 갈정웅 상무는 “한국 경영자들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 것 같다”라고 진단한다.

 국내 기업 경영자들은 해답을 찾기 위해 해외와 경쟁기업으로 눈을 돌렸다. 마침 경기 침체에 빠진 미국 기업들이 크게 관심을 보이던 것이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과 벤치마킹 같은 신경영기법이었다. 이 새로운 기법은 일본 기업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종합품질관리 시스템(TQC)이나 도요타 생산방식(JIT) 등을 앞다투어 도입한 적이 있던 국내기업 경영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경영기법을 도입하는 대상국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는 점과, 도입 속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빨라졌다는 점뿐이다(딸린 기사 참조)

 대기업들의 신사업 진출 방식이 그랬듯이, 일부 대기업이 새로운 경영기법을 수용하기 시작하면 이는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이 된다. 모니터사 한국지사장인 김형범씨는 신경영기법이 유행하는 현상을 “자기 병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암환자가 신기하다고 소문난 약을 먹기만 하면 병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증세”라고 비유한다. 이런 점에서 새 경영기법이 기적을 낳고 있다는 주장은 아직 검증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새 경영기법을 도입해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 기업들의 실상은 어떤가. 예를 들어 대림산업은 일부 업무 과정을 바꿔 52명의 인력을 정보·무역 사업과 같은 새로운 산업으로 돌릴 수 있었다. 수십억원에 이르는 경비도 절감했다. 동서식품의 경우 리엔지니어링을 실시한 지 1년 뒤 적게는 30여 명에서 1백80여 명에 이르는 인원의 인건비 절감이 가능해겼다.

 우량 기업의 경영기법을 배우는 벤치마킹을 적용한 경우는, 성공의 근거를 수치화하기가 어려운데도 일부 기업의 성공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담배인삼공사의 담배 자판기 관리기법을 배운 두산음료가 그 예다.

 성공적인 다운사이징 사례로는 광주은행을 들 수 있다. 이 은행은 모든 금융거래를 관리하는 본점의 메인 프레임(대개 초대형 컴퓨터)을 62개의 워크스테이션과 1천여 대의 소형 컴퓨터로 나누고 권한을 분산한 결과 금융거래를 관리하던 인원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은행측은 이 인원을 새 지점 개설에 돌리고 있는데,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도 지점 15개를 신설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숫자 놀음’에 속을 가능성
 새로운 경영기법을 기업에 적용한 결과가성공적이었는지를 평가하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는 잣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이나 벤치마킹, 다운사이징과 같은 신경영기법의 핵심은 발달한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관리 인력을 대폭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 관행상 국내 기업들은, 경영기법을 도입하기 전에 몇명이 줄 수 있다는 예측은 쉽게 하면서도 실시한 후 사무직 근로자 몇 명이 줄었는지를 발표하기는 꺼린다. 시에치노시스템컨설팅사 노중호대표에 따르면, 해고가 불가능한 이상 남는 인력을 자연 감소 인원 자리에 충당하거나 신규 사업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노씨는 올해부터 광주은행의 다운사이징 작업을 끝내고 리엔지니어링 작업에 들어간다.

 기업들은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하기 전에 잉여 인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워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영자들은 새 경영기법을 도입하자는 경영자문가나 임원들의 ‘숫자 놀음’에 속을 가능성이 크다. 안중호 교수(서울대·경영학)의 경험담은 이렇다. “몇몇 경영자들은 경영정보시스템을 전공한 나한테 전산 시스템에 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기업내 전산 담당자들이 새로운 전산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몇 명의 인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건의해 이를 승낙한 경영자들이 몇년 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원이 줄지 않은 것은 고사하고 전산 관련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새로운 경영기법을 성능 좋은 컴퓨터를 도입하는 것쯤으로 여기는 경영자들은 줄어들 관리 인력의 수치에 쉽게 현혹된다.

 이처럼 새로운 경영기법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애매모호하다. 때로는 자기 합리화를 위하여 성공과 실패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경영자들은 자기들이 새로운 경영기법 도입을 결정했기 때문에 그 결과도 성공적 이라고 평가하려 든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경영자들에게 유행어가 돼버린 신경영기법이 결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국내의 한 경영 전문가는 한국의 경영자들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이나 벤치마킹, 다운사이징을 목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리엔지니어링을 해달라는 경영자에게 무엇 때문에 하려고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하거나 지극히 추상적인 대답만 한다.”

맹목적 다운사이징은 자살 행위
 기업들이 맹목적으로 새 경영기법을 도입해 적용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연구개발 사업이나 첨단업종에 속한 기업의 다운사이징은 자살 행위와 비슷하다.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이나 벤치마킹의 경우도 회사의 어떤 기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 놓아야 하는가를 먼저 결정해 적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하려는 경영자들은 먼저 자기 회사의 위상이 어떻고 전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모니터사한국지사장 김형범씨는 “한국 경영자들은 시장에서 자기가 차지하는 위치나 목표, 소비자와 같은 사업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시장 조사의 예를 든다. 한국 기업은 시장 조사를 할 때 소비자가 자사 상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즉 상품의 이미지만을 조사한다. 정작 중요한 자사의 소비자는 누구이고, 이들은 왜, 어떤 경로를 통해 자사 제품을 사려고 하는지를 조사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경영기법에 앞서 기업이 명확히해야 할것은 자기네가 왜 이것을 도입하려 하는지이다. 신경영기범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들이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경영자들이 가장 많이 내세우는 목표는 ‘21세기에 초일류기업이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삼성그룹의 ‘신경영’에 자극받은 이런 구호는 매력적인 것일지는 몰라도 실제로 유용한 것은 아니다.
 만일 해외의 우량 기업이나 국내의 경쟁업체들이 한다고 해서 무조건 따른다면 신경영기법의 효능은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남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전략은 우승을 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다.
金芳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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