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월급장이들 ‘반란’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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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화 경향…전출 명령 무조건 복종 거부



 회사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라도 복종해온 일본의 ‘경제 사무라이’들. 2차대전의 폐허에서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일본을 이끌고 온 이들이 개인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앞세워 온 일본의 전통적 기업문화에 조용히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과로사를 일컫는  일본 말 ‘카로시’를 세계적인 단어로 만들 만큼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개인을 희생해온 일본의 샐러리맨들이 이제 회사보다는 개인, 일보다는 가족을 앞세우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근거지나 가족과 떨어진 지방이나 외국에 배치할 경우, 이를 거부하는 회사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회사와 법정투쟁까지 불사하는 샐러리맨도 적지 않다. 이러한 경향에 주목한 일본의 변호사협회가 최근 2백개 상장회사를 대항으로 조사한 결과 대다수의 일본 회사가 이러한 회사원들의 ‘신경향’에 주목해 되도록 가족이나 근거지를 떠난 인사배치를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한다. 그 한 예로 세이부 백화점은 전출명령을 사원들이 제도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실시하고 있다. 세이부는 ‘전출 거부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에 참가하는 사원은 원하지 않는 전출근무를 5년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는다. 약간 월급이 깎이는 대신 인사고과상의 불이익은 전혀 없다. 세이브와 유사한 방법을 도입하는 회사들은 계속 늘어날 추세이다. 마쓰시타도 지방 근무를 강요하지 않기 위해 지방에 빈자리가 생기면 사내광고를 통해 희망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일본 샐러리맨들이 회사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경향은 일본의 전통적인 종신고용제가 무너지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일본의 취업정보 회사인 리크루트에 따르면 입사 1년차 신입사원 중 회사를 옮길 생각을 하는 사람은 10명 중 7명이나 된다고 한다. 첫 직장을 마지막 직장으로 당연시하는 일본에서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숫자이다. 일본무역진흥회 서울센터 마치다 가쓰미 조사부장은 이러한 추세가 “국제화라는 측면도 있고, 일자리가 많아서 그런 측면도 있다”고 해석한다. 일본은 사실상의 완전고용 상태에서 극심한 노동력 부족을 겪어왔다. 그러나 노동력의 신주류를 형성해가는 20 · 30대 샐러리맨의 의식변화를 신경향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도쿄에서 전화 인터뷰에 응한 한 유력한 회사의 엘리트 샐러리맨 센수이 다카시(28) 씨는 “회사에 무조건 복종하던 시대는 끝났다. 젊은 일본 샐러리맨들의 개인주의 경향은 움직일 수 없는 대세다”라고 강조한다.

 변하는 것은 근로자만이 아니다. 일본경제의 국제화와 함께 일본 근로자의 의식도 당연히 세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영자가 늘고 있다.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 회장은 일본의 기업 문화와 직장인의 의식이 전통적인 일본식에서 벗어나 세계화하는 것이 이제는 일본경제의 성장에 필수적이라는 견해를 가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소니는 간부사원 중 40% 이상이 연공보다는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기업에서 스카웃해온 사람들이다 (본지 6월25일자 해외경제 참조).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은 센수이씨는 “샐러리맨 자신보다도 오히려 회사가 적극 나서서 개인주의 경향을 옹호하는 추세”라고 지적한다. 성숙한 오늘의 일본 경제 수준에서는 직원 개개인의 복지가 생산성 향상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일본의 경영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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