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통해 본 귀부인의 풍속사
  • 표정훈 (출판 평론가) ()
  • 승인 2006.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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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의 책]<귀족의 은밀한 사생활>/18세기 가구와 장식품 등 소개

 
궁전의 복도는 오줌 냄새가 진동했으며 가발에서 나온 비듬과 벼룩이 대리석 바닥 위로 떨어졌다. 왕이 평생 목욕하는 횟수는 20번 남짓이었다. 음식을 집는 도구도 없었고, 왕은 신하들과 함께 한 식탁에서 손가락으로 국을 휘저으며 고기 덩어리를 건져 먹었다. 좌변기인 ‘구멍 뚫린 의자’는 방 한가운데 있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엉덩이를 드러내 보인 채 그 위에 걸터앉아 일을 보았다. 고대의 어느 야만족 얘기가 아니라 17세기 프랑스 왕궁 풍경이다.

그러나 16세기 초엽부터 1789년 프랑스 혁명기에 이르는 3백여 년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 탐미의 시대였다. 요즘 눈으로 보면 ‘왜 저렇게 오버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쓸데없어 보이는 장식이 유행했다. 먹을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설탕을 잔뜩 넣은 과자와 케이크가 유행했는데,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 부인에게 권하는 ‘비너스의 젖꼭지’라는 디저트도 18세기 중반에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맛의 탐미 풍조 속에서 요리도 엄연한 예술로 대접받았다.

 
한편 궁중화가 장 프랑스아 드 크루아가 그린 ‘화장대에서’를 통해 당시 귀부인의 일상을 잘 엿볼 수 있다. 귀부인은 하녀가 입혀주는 빨간 실크 드레스를 입으며 한 남자에게 자신의 팔찌를 건네고 있는데, 아침부터 여인의 방을 찾아온 남자의 정체는 뭘까?

그러나 이 책의 관심은 귀부인의 방에 있는 물건들에 있다. 저자는 ‘금칠을 한 랑브리(선반) 장식에 반사된 부드러운 햇살 덕분에 그림 속 방 안의 물건들이 분가루처럼 둥둥 떠다니는 듯하다’고 말한 뒤, 구석에 놓인 3단 장식장의 은제 주전자와 대야, 벽에 붙은 랑브리 위에 살짝 놓인 중국 도자기, 화장대 위에서 광택을 발하고 있는 화장품 단지 등등, 방에 배치된 가구나 장식품에 주목한다. 

프랑스 대혁명 전야도 생생하게 소개

왕부터 하층민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그림과 실물 오브제 사진 등 4백개 가까운 도판이 실려 있는 이 책은, 물건을 통해 본 18세기 유럽 귀족과 왕실의 풍속사라 할 만하다. 누가 누구와 손잡아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견제하는 얘기보다는, 사람들이 뭘 먹고 뭘 입었으며 어떻게 볼 일을 보았는지에 관심이 많은 저자는 프랑스 예술품연구원(IESA) 출신의 오브제 아트 감정사다. 크리스티, 소더비 등 유명 경매회사의 골동품 가구 조사원으로 일한다. 오브제 아트? 우리말로는 공예에 가까운 말인데, 가구, 유리, 청동, 도자기, 인형, 시계, 타피스리(장식 융단)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를 아우른단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히 비(非)정치적인 내용의 책이라 하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역설적으로 매우 정치적인 성격의 책으로 볼 수도 있겠다. 1789년에 프랑스에서 일어나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제가 성립된 혁명, 즉 프랑스 대혁명의 전야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전야에 귀족들의 탐미와 사치는 극에 달했으니, ‘귀족들의 은밀한 사생활’과 대비되는 ‘평민들의 비루한 일상’은 또 어떠했을 것인가? 귀족들의 탐미적인 사생활을 위한 잉여를 산출하느라 수많은 평민들의 등골이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설픈 정치적 독해는 접어두자. 영화 ‘왕의 남자’나 텔레비전 드라마 ‘궁’에서 볼 수 있는 궁궐과 왕실 장면의 화려한 미장센을 감상하듯이 이 책을 읽는 것이 올바른 독법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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