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의 승자와 패자
  • 앙드레 퐁텐느 ()
  • 승인 1994.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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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세간에 팽배하는 의견과는 반대로 냉전 이후의 세계가 무력이 균형을 이루던 때보다 반드시 더 위험한 것만은 아니다. 아마도 이 점이 최근 사라예보 사태와 관련한 소규모의 위기를 통해 국제사회가 얻어낼 수 있는 첫번째 결과가 아닐까싶다. 비상 국면을 일단 넘기고 난 현상태에서 생각하자면, 이번 사라예보 사태는 주요 열강들이 위기를 타개하는 역량을 보여준 훌륭한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 결과는, 러시아가 걷잡을 수 없는 경제 혼돈 상태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뛰어난외교 수완을 과시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개입이 없었던들 세르비아인들이 그들의 대포를철수하는 데 쉽사리 동의했으리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미국이 이번 일에 적극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유럽의 힘만으로 이같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각국이 자기들의 행동과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성을 처음부터 바로 이해한 덕분에이번 서방측의 시나리오는 다행히 잘 먹혀들었다. 서방측은 세르비아로 하여금 위협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할 전투력을 배치했으나, 세르비아측이 대포를 철수하기 시작하자, 그 작업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최후통첩을 거의 철회하다시피 했다. 러시아측은 세르비아인들에게 자기네가 그들의 유일하거나 가장 믿을 만한 수호자임을 납득시켰다. 이는 다시 말해 세르비아로 하여금 러시아의 충고를 따르는 것이 이롭다는 사실을 알게 했음을 뜻한다.

위기 국면 벗어나기 바쁘게 너도 나도 "네 덕분" 
 일단 위기 국면을 벗어나자 거의 모든 이해 당사국은 서로 자기네 공을 내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사라예보 타결책 마련에 중요한 역할을 한 프랑스는 보스니아 분할안을 다시금 활성화하는 방법을 모색중이다. 이 안은 이미 작년말 독일의 동의를 얻어 프랑스가 유럽연합측과 합의를 끝냈었다. 세르비아로 말하자면 확실히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위협에 굴복한 셈이다. 하지만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 대한 포위 상태를 완전히 푼 것은 아니다. 사라예보는 비록 중포화의 위협에서는 벗어났을지 몰라도 박격포나 저격병들의 총알에는 아직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북대서양조약기구 나라들은 세르비아인들이 유엔 헌장을 노골적으로 어겨가면서 무력으로 강탈한 영토를 그들의 것으로 인정해주기까지 했다.

 가장 큰 승리자는 뭐니뭐니 해도 러시아이다. 단 하루 사이에 러시아는 과거에는 러시아 황제, 즉 차르가 맡았던 발칸반도내 동방정교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되찾았다. 옐친 정부의 한 장관은 러시아가 다시금 세계 열강의 위치를 되찾았다고 평가했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는 유고슬라비아 문제에 관한 국제 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안해 미국과 유럽연합측으로부터 별 어려움 없이 동의를 얻어냈다. 따라서 언젠가 이 지역에 평화가 정착하게 된다면, 러시아는 상당 부분이 자기네 공적임을 내세우려 할 것이다.

최대 피해자는 보스니아 정부
 이번 사태로 가장 피해를 본 패자를 꼽자면 아마도 보스니아 정부가 아닐까 싶다. 보스니아 정부는 세르비아의 포문을 틀어막도록 줄곧 연합국의 개입을 요구해왔던 만큼, 북대서양조약기구측의 최후통첩으로 마침내 흡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므로 영토 수복이 아니라 파리와 모스크바측의 제안대로 사라예보가 유엔감시하에 놓이게될 경우, 보스니아 정부의 권위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보스니아 정부가 쥐고 있는 으뜸패는, 무기수출 금지 조처에도 불구하고 장비를 계속 보강해 나가고 있는 휘하 군대의 단호한 전투의지와, 미국측의 지원 정도라 할 수 있다. 미국은 보스니아 회교도들의 패배로 말미암아 전세계 이슬람 지역에서 서방 세계의 이미지가 손상을 입을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보스니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또한 바로 이 점 때문에 미국과 프랑스간에 결정적인 의견 대립이 생기고 있다. 프랑스 쪽에서 볼 때, 보스니아측은 영토에 관한 한 이제까지 타협된 사항 외에 세르비아 측으로부터 더 이상 양보를 얻어낼 수 없는데도 미국을 믿고 협상을 거부해 왔다.

 이제 보스니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미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다시금 같이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유럽은 이들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경제재건에 참여하고 소수 민족에게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이 이들을 돕는 길이다.

 이같은 시각은 전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어떤 방법으로 학살이 되풀이되는 것을 확실하게 방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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