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없이 밀어붙이기 겁난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4.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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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경협 추진진 기업들 변화…북한 개방파 실각 영향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아들이기로 한 뒤로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월 중순 이후기업인들의 북한 주민 접촉 승인 신청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정부도 남북 경협과 관련한 중대 발표가 곧 있을 것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변화를 남북 경협이 개화할 징조라고 받아들여도 될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삼성경제연구소 허근 부장의 말이다. "남북 경협이 교착 상태에 빠진 지난 1년 동안 기업들은 경협을 다각적으로 검토했으며, 그 결과가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1년 전쯤 갑자기 불거져 나온 북한 핵 문제는 북한 관련 사업을 추진하던 한국 기업들에게 북한 체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북한 체제는 국내 기업의 기대와 달리 안정적이지 않으며, 그들의 행태 또한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기업들은 북한 관련 사업을 '겁 없이' 밀어붙이던 1년 전과는 달리 북한의 사업 환경을 낙관적으로 보지만은 않는다. 특히 경영자들은 북한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실무자들에 비해 더욱 비관적인 평가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일부그룹에서는 경영진과 실무진의 견해차가 드러나기도 한다.

 북한과 관련한 사업을 적극 추진하던 기업 가운데 일부는 이를 전면 유보하고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반면 비교적 경쟁에서 뒤떨어지던 그룹들은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대조적이다.

 남북 경협을 주도하던 기업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개방정책 주역들의 교체이다. 최근 들어 증폭됐던 '김정일 유고설'은 이들을 더욱 긴장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국내 40여게 기업에 송부된 북한측의 초청장이다. 여기에 명시된 상당수 초청자가 이미 실각했거나 자리를 옮겼다.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주로 중국과 일본을 무대로 남북한 경협을 담당하는 북한의 창구와 접촉해 왔다. 이들은 대개 김정일의 측근으로 개방정책을 담당하는 요직에 포진하고 있거나 북한의 국?관영 기업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우리 기업과 북한을 잇는'끈'이 끊어진 것이 아닌지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한 중견 그룹 북한 담당 실무자의 한탄이다.

 이들의 실각이나 보직 변경을 두고 해석이 분분한데, 한국 기업과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것이 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기업 북한 담당자들은 이같은 소문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 정부에 문의하기도 하지만, 정부로서도 정확한 소식을 알 리 없다. 결국 남북 경협을 둘러싼 기업들의 혼선을 막기 위해 정부는 대원칙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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