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도시에 씨내린<씨받이>
  • 파리.양영란 통신원 ()
  • 승인 1994.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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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극장 상영으로 한국영화 교두보 마련… 꼭 봐야 할 영화' 추천 받아

일요일을 맞은 20일 오후. 파리 시내 막스 렝데르 극장 매표소 앞에는영화를 보려고 모여든 관람객의 줄이 제법 길게 이어졌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를 보려는 사람들이었다. 5년전 배영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파리 극장가에 선보였던 '사건'을 예외로친다면 프랑스 개봉관에서 한국영화가 상영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르몽드>영화 담당 기자가 '이번 주에 꼭 보아야할 영화'라고 추천한 <씨받이>는 2월l6일부터 3월초까지 유서깊은막스 렝데르 극장의 대형 화면을 장식한 한국 영화14편(이두용의<물레야물레야> <뽕>  <장남> <내시> <티켓> <청송 가는 길> <불의 딸>, 배창호의<꿈> <황진이> <꼬방동네 사람들>, 임권택의<안개마을> <연산일지> <아다다> <씨받이> 중의하나다.

 한국 영화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극장에서 상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얼마 전 퐁피 두센터에서 막을 내린 대규모 한국영화 회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영화 냄새 많이 난다" 꼬집기도
  작년 10월말부터 4개월 간, 50년 이후 제작된 80여 편을 소개한 이행사의 산파노릇을 한 장루 파섹씨는 이 회고전이 대성공이었다고 자부한다. 특히<서편제>)<달마가…>를 상영하는날에는 자리잡기 싸움이 벌어질 정도로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노라고 흐뭇해한다. 프랑스정부가 지원하는 문화사업의 일환인 이 회고전이 이처럼 성황을 이루자 입맛이 당긴 영화배급업자가 회고전에 소개될 작품 중 14편을 선정해 상업용 영사실로 옮기는 모험을 기꺼이 감행했다는 설명이다. 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중국?일본?인도 쿠바  멕시코 등 수십 나라의 영화 회고전을 마련해왔지만 이번처럼 흥행으로 직접 연결 된 전례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프랑스 영화계에서 한국 영화의 파리극장 진출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작년 연말 가트 협상 당시 프랑스는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시청각산업부문을 이 협상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했었다. 영화산업 및 자국 산업의 동질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경제?심리적 위기 의식의 발로이기도 했지만 그 밑바탕에는 전세계 각국 문화의 다양성을 옹호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까지 전혀 모르고 있던 세계와 만나는 기쁨을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기 위해 알려지지 않은 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라는 파섹씨의 입장도 여기에 수렴된다. 국내를 벗어나면 거의 무명 인사나 다름없었던 몇몇 한국 감독도 이런 연유로 국제 무대에 자신들의 작업을 알릴 기회를 얻은 셈이다. 파리 회고전에 이어 스위스와 벨기에에서도 파리보다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문화적 호기심 및 탐구심이 획일적?물량적인 상업주의의 횡포에 장기적으로 대항하는 한 방법임을 강조하는 파섹씨는, 상당수 한국 젊은 세대 감독들의 작품에서는 "미국 영화 냄새가 많이 난다"라고 따끔하게 꼬집는다.

 한복?기와집?판소리 같은 이국적 풍취만을 적당히 늘어 놓았다고 해서 한국의 동질성이저절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라는 보편성과 한국의 얼이라는 특수성이 잘 어우러져야만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얼핏 진부하게 들리는 그의 지적은, 한국 영화를 감상하는 프랑스 관객들의 반응을 통해 실감나게 확인된다. ‘저렇게 아들 아들 하니 해도 참 너무했다'는 이들의 공통적인 소감은, 대리모로 범보편화할 수도 있는 제도 자체에 대한 분개라기보다 오로지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얻을 요량으로 씨받이를 두었던 조선 시대 인습에 대한 경악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유별난 남아선호 사상을 고발하고자 한 한국 감독의 의도가 프랑스 관객에게 백% 전달된 셈이다. <달마가…>도 예외는 아니다. 서양사람의 합리적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한 관객은 "물론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반드시 내가 서양 사람이라서 그렇다고는 보지 않는다. 구도(求道)나 선이라는 주제가 일상적이 아닌 만큼 오히려 동?서양의 구분을 넘어서는 보편성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매표소 직원 말에 따르면, 처음 이틀은 손님이 없어 따분했는데 이제는 창구가 제법 북적대서 일할 맛이 난다고 한다. 3월초 막스 렝데르 극장 상영이 끝나면 한국영화는 학생가에자리잡은 유토피아 극장으로 옮겨간다. 학생가 극장들의 관례대로라면 이곳에서는 비교적 장기간 상영될 확률이 높다. ‘한국 영화에 대해 반드시 다시 언급하게될 것'이라는 프랑스언론의 고무적인 예견이 빨리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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