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의 권위 바로 세우려면
  • 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1991.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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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크 루소는 18세기 계몽시대에 우뚝솟은 사상가, 프랑스 대혁명의 씨를 뿌린 인류의 스승이었다. 그는 (당시의)법을 “언제나 가진 사람들에겐 유용하고 없는 사람들으겐 해로운 것”으로 보았다.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균등이 있을 수 없고, 법이란 그러한 불균등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것, 법은 대다수 국민이 납득하는 것도, 대다수 국민에게 공정하게 집행되는 것도, 물론 대다수 국민의 뜻이 반영되는 것도 아니었다. 결과는 피비린내나는 혁명이었다. 덕없는 임금을 힘으로 몰아내고 덕있는 임금을 불러들인 그런 동양적 OOOO이 아니라, 루소 등 계몽시대의 스승이 가르친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가치를 통치의 기본으로 삼은 인류의 ‘대혁명’이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인민주권의 대의 민주주의요, 누구나 법에 지배를 받는 법치주의였다. 사람은 사람의 자의로는 처벌받지 아니하고 법에 의해서만 처벌받고, 법은 상하귀천없이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법은 무엇보다 누구나 납득하고 승복하는 것, 그것이 법치주의다. “법이 곧 정의”라는 말이 통하는 사회, 거기에서 법치주의가 살아 움직이고 만인이 법의 권위를 믿고 법질서를 지키는 가운데 사회적 안정을 누릴수 있다.

법을 가장 안 지키는 ‘정치인?기업가?공무원’
영국 사람은 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세계에서 으뜸이다. 왜그럴까. 영국 사람이라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별난 인종이어서 그럴까. 아니다. 모두가 법의 권위를 믿기 때문이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왜 법을 준수하느냐”는 설문에 90%의 영국 사람들은 “법은 일반적으로 납득할 만한 것이니까”라고 답변하였고, 75%가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니까”, 다시 75%가 “법은 우리가 뽑은 대표가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74%가 “법을 안 지키면 벌을 받으니까”라고 대답했다. 법의 제정, 법 그 자체, 법의 집행에 절대적 신뢰를 두고 있다. 실제로 법을 일선에서 집행하는 경찰에 대한 신뢰도가 다른 어느 직종보다 놓은 나라, 경찰관과 법관이 가장 존경받는 직종으로 손꼽히는 나라이니 더 말할 것이 없다. 또 법을 안 지키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것을 몸으로 익힌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누구나 법만 지키면 탈이 없고 손해볼 이유가 없다. 법은 정의이고 따라서 법의 권위는 지엄하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불행히도 정반대의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1인당 연평균 소득이 6천달러에 육박하고 세계 15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발표다. 교통 통신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대학생 수나 교육열에 있어 선진국 뺨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법치주의라는 차원에서 루소가 살아숨쉬던 시절을 방불케 하지 않는가 하는 후진성은 어찌하랴.

얼마 전 한국법제연구원이 발표한 국민의 법의식조사연구서에 따르면 82.4%의 국민이 “우리 사회에서는 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94.2%의 국민이 “권력이나 재력이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사법부를 불신하고 있다. 가장 법을 앞장서 지켜야 할 정치인 기업가 공무원이 오히려 “법을 가장 잘 안 지키는 집단”으로 손꼽히고 있다. 결코 새삼스런 평가가 아니고 사실의 확인에 불과하지만, 정말 걱정스럽고 위험한 현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법치주의 부인한 五大洋?水O사건 처리
왜 이렇듯 법이 불신을 받고 법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는가. 앞의 조사에 나타나 있듯이 법을 가장 잘 지켜야 할 이른바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옹호?확대하기 위해 법을 가장 잘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OOOOO이라 할까, 루소의 말마따나 “법은 언제나 있는 사람들에겐 유용하고 없는 사람들에겐 해로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OO사건 하나만 하더라도 자명해진다. 6공 최대의 부정비리로 지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검찰은 ‘은폐수사’로 천문학적 숫자의 특혜분양의 본질은 아예 수사 대상에서 제외시켰고, 재판부는 외혹혐의가 짙은 정부고관들에 대한 증인 채택조차 대부분 기각하고, 사건의 주인공인 한보 정태수 회장을 집행유예로 풀어주었다. 은행즉은 파산 직전의 한보에 1천억원 이상의 특혜금융을 베풀었고, 국회는 국민적 분노에도 아랑곳없이 한보특혜 진상을 조사하자는 야당측 요구를 끝내 묵살했다.

수서사건은 정부가 법치주의를 부인한 갖가지 사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연일 대서특필되는 五大洋사건만 해도 이미 4년 전 마땅히 진상이 규명되었어야 할 전대미문의 집단살인 사건인데, 이제 5공시대 권력층이 세모의 두목 유병언씨에 특혜를 베풀고 그를 법의 제재로부터 감싸주었다는 것이 차차 드러나고 있다.

정말 법이란 “있는 사람들에겐 유용하고 없는 자들에겐 해로운 것”이라는 폭군정치의 유산을 단호히 청산할 의지가 있는지 집행 당국은 밝혀야 한다.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말이다. 법의 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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