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청산이 ‘분열’불렀다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1.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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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씨의 의원직 사퇴로 연대의식 균열 … 신·구주류 대립, 후계구도에 영향

 과거 민정당 시절 慶邱會는 당내 최대의 단일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전국구의원을 포함, 총35명의 현역의원이 포진하고 있던 경구회야말로 당시 최대 실세였던 鄭鎬溶 회장과 함께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 이들을 한 묶음으로 보기는 매우 어별다. 정호용씨가 가지고 있던 의원직에 文熹甲씨가 대신 들어선 것처럼 이들의 ‘자리매김’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이들은 TK 신주류와 구주류, 혹은 정호용 서명파·월계수회·허주(김윤환총장 아호)계 등으로 복잡하게 나눠져 있는 형국이다.

 TK 분열의 시작은 5공청산에서부터 비롯됐다. 같은 뿌리에서 성장한 6공이 全斗煥씨 국회증언과 정호용씨 의원직 사퇴라는 양대 걸림돌에 걸려 ‘제 살 자르기’를 결심한 순간부터 TK는 핵분열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구회 또한 양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의 분열상을 재촉한 것은 전씨의 국회증언보다 정씨의 의원직 사퇴 파동이었다. 金瑢泰 李致浩 吳漢九 朴在鴻 鄭昌和 張永喆 李珍雨 鄭東允 金瑾洙 黃潤錤 李廷武 李相得 柳停佑 의원 등이 정씨의 사퇴를 반대하는 서명파라면, 兪學聖 崔雲芝 金漢圭 金一潤 金普榮 의원 등은 이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명파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인사들은 오한구 김용태 이치호씨 등 몇명에 지나지 않았고, 이때부터 이들의 연대의식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씨와 고교 동기이자 막역한 친구인 金潤煥 당시 정무장관은 친구의 의원직 사퇴에 앞장설 수 없다고 일찍 장관직을 내놓기도 했다.

 이 때 ‘악역’을 자임, 정후보 사퇴에 앞장서고 나선 사람이 바로 朴哲彦 장관과 徐東權 안기부장이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해서 청와대내 친위파가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다.

권력 핵심 장악한 검사 출신 ‘신주류’
 3당통합을 전후해 나타난 당시 박철언 정무장관의 독주도 TK 내부에 또 한번의 결정적 난기류를 형성시켰다. 박장관은 대통령특별보좌관 시절부터 청와대의 모든 정책과 개각 등 인사에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했고, 바로 이 사실로 인해 정치권 대선배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받았다. 박장관이 청와대측의 메신저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합당 실무작업을 할 때도 그가 출석하지 않으면 회의 자체가 연기될 정도였다.

 3공화국 시절부터 정치 이력을 쌓아온 고등학교 선배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합당 과정에서의 소외와 후배의 전횡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더욱이 자신들이 6공을 탄생시킨 권력의 중추라고 자임하고 있던 TK 핵심의원들의 경우 이런 소외의 상처는 더욱 깊게 나타났다. 사실 6공 출범의 논공행상을 둘러싼 공조직과 사조직(월계수회)의 마찰이 있을 때부터 TK의 분열이 예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구회원 중에서도 姜在涉 金吉弘 李相回 李廷武 의원 등이 월계수회원이거나 친월계수 인사에 속한다

 6공화국의 임기가 1년 반쯤 남은 현시점에서 TK에 나타나고 있는 특이하다고 할만한 기류는 정치권 인사와 검사 출신들의 대립 양상이다. 국회와 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소위 당료파에 비해 정치적 경륜은 짧지만, 청와대와 정보기관의 권력채널을 장악하고 있는 이 세력에는 丁海昌 청와대 비서실장, 서동권 안기부장 金榮馹 사정수석 등이 해당된다. ‘TK 신주류’는 바로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검사 출신들이 권력의 핵심을 장악하고 대통령 친위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사실은 과거에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TK 신주류와 구주류의 대립은 국회 상공위소속 의원 뇌물외유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민자당의 전반적 분위기는 “공안이 정치에 앞선다”는 자조적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청와대의 신임과 더불어 검찰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은 상공위 사건과 수서택지 특혜사건 등을 다루면서 민자당의 여론에는 등을 돌린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당시 민자당에서는 민주계는 말할 것도 없고 박장관 계열을 제외한 민정계 비주류, 김윤환 총장을 중심으로 한 TK 구주류까지도 공동 대응, 신 TK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이들 신 TK에 대해‘공안파’라는 별칭이 붙었던 것도 바로 이때였다. 다만 청와대 친위세력은 자신들이 ‘박장관 라인’으로 분류되는 데에는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분열이냐 집결이냐는 총선 지나봐야
 이 당시의 상황은 크게 두가지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청와대 친위세력 대 정치권 세력이라는 이분법이 이때부터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TK 구주류와 민정계 비주류의 사이가 이 때를 기점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당시 상황은 일본 자민당 초창기에 나타났던 ‘요시다 학교’ 출신의 관료파와 하토야마 직계 당료파들의 대립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TK 신주류와 구주류의 대립은 민자당의 후계구도 문제에까지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분열하느냐, 아니면 한 목소리로 결집되느냐에 따라 노대통령의 운신폭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TK의 한 핵심의원은 “청와대 친위세력과 민자당 당료파들의 과열된 경쟁심리는 결국 14대 총선의 시기라든가, 대통령 후보의 결정 등에 있어서 혼선을 가져올 수 있다”고 대립 양상을 걱정했다.

 그렇다고 TK신·구파 대립이 완전한 결별로 발전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차기 정권창출이란 공동의 과제가 남아 있고, 그 전 단계에서 김대표와의 전면전도 미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TK세력은 14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작은 내분을 겪어야 될 처지에 놓여 있다. 대구 수성구에서는 현 위원장인 이치호 의원과 이 지역을 노리는 박철언 장관 사이에 벌써부터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이의원의 대륜고 동창이 박장관의 후원회장을 맡는 사태가 벌어지자, 이의원은 박장관의 ‘해당행위’에 대한 중앙당의 대처를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구 金鍾基 의원 역시 이 지역 출마를 검토중이다.

 대구 달서구의 경합도 치열하다. 김한규 의원이 현역 위원장인 이 지역은 최재욱 의원과 강재섭 의원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서이면서 호주대사 출신인 金相球 전 의원(12대)은 상주(현위원장 金瑾洙 의원)를 노리고 있어 김의원이 공천에 은근한 불안을 느끼고 있는 상태다. 김상구씨의 출마는 5공의 재기 여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듯하다.

 琴震鎬 전 상공장관은 13대 출마가 노대통령의 뜻에 따라 좌절됐던 경험이 있는 터라 이번 만큼은 영주·영풍(현 위원장 金普榮 의원) 출마를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

 총선은 모든 정치인들의 흉중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치 언행 시장이다. 따라서 총선은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계, 김윤환 총장계, 박철언 장관계, 정호용 서명파, 신 TK 등으로 복잡하게 나뉘어져 있는 이들 TK 세력들이 총선을 거치면서 과연 이대로 분열을 거듭할 것이냐, 아니면 단일 세력으로 다시 집결할 수 있을 것이냐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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