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대권향방 가름할 잠복성 ‘태풍’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1.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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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형성되면 범여권 주도”… 타세력과 연합할 수도

 A급태풍 캐틀린이 한반도를 비켜갈 즈음 제주도로 옮겨간 정치권에서는 또 하나의 태풍이 형성됐다. 崔永喆 대통령정치담당특별보좌관의 ‘야당식 자유경선’ 발언에서 비롯된 ‘태풍의 눈’은 급기야 金泳三 대표의 “총선 전에 후계구도를 결정한다면 자유경선 용의도 있다”는 메가톤급 폭풍으로 그 모양을 바꾸었다.

 지난 1일 터져나온 만주계의 정면돌파 의지는 결국 민자당을 또한번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흔히 휴화산으로 비유되었던 민자당. 3당합당 이후 盧泰愚 대통령의 거듭된 당내분쟁 자제 요청에 의해서 겨우 진정돼오던 민자호가 드디어 폭발 일보 직전에 있다. 민주계는 선제공격의 시기 선택만을 남겨놓고 있고, 민정·공화계는 맞대응의 결의를 다지는 형국이다.

 차기 대권은 과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3당통합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결국 소화해내지 못한 채, 저마다 유리한 산술작업에 빠져있는 각 정파의 역학구도를 따져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만한 해답을 얻기가 힘든 상황이다.

 관심의 초점을 TK(대구·경북)인사들에게 맞춰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계의  자유경선제 수용 의사에 따라 민자당 각 계파의 입장이 보다 확실해졌고, 범여권내 최대 실세인 TK의 향배가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5·6공화국을 통틀어 ‘TK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그 세력은 하나의 권력중추를 형성했다. 따라서 정권교체기를 맞은 현시점, 특히 김대표가 정면대응의 기치를 들고 나온 현단계에서 TK인사들이 과연 어떤 구도를 그리고 있느냐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5공화국 이래 언론의 상투어로 굳어진 TK는 처음에 경북고등학교 출신 인사만을 지칭했으나, 나중엔 대구·경북 출신 인사들을 일컫는 말로 그 의미가 확대됐다. 이처럼 그 의미가 넓어진 것은 5공 이후 경북고 출신은 아니지만 경북 출신 인사가 많이 중용된 것이 한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또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이 같은 영남이면서도 각기 성격이 다른 정치세력권을 형성, 이 둘을 구별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북고등학교 출신으로 ‘TK 본류’에 해당하는 민자당 崔在旭 의원(고령 출신·朴泰俊 최고위원 비서실장)은 최근 이렇게 말했다.

 “대구·경북 출신 의원일수록 특정한 색깔이 없고 관조하는 입장이다. 나는 TK가 다시 뭉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대표적인 현상으로서 우리가 최근에 언제 모인 적이 있느냐. 이것은 의원들만이 아니라 TK 지방유권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마음은 딱이 한 방향으로 정해지지 않고 담담한 상태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도 노태우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가 제일 늦게 나타난 곳이 대구·경북 지역이다. 특히 이번에는 TK 중에 대통령후보가 없다고 보고 있으니까 흐름이 상당히 늦게 형성될 것이다. 그러나 비 TK에서 우리를 킹 메이커로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TK의 흐름이 형성되고 공론화되면, 이것은 TK만의 흐름이 아니고 아마 범여권을 주도할 흐름이 될 것이다.”

“가을부터 적극적으로 만남 주선 계획”
 慶邱會(대구·경북 출신 의원들의 친목모임) 간사인 李相得 의원(영일 출신)처럼 중부권에서 대통령후보가 나와야만 국론이 분열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소신을 펴는 TK인사도 있다.

 “우리들 중 상당수는 이번에도 TK에서 대통령후보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영남이나 호남 지방의 인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영·호남 출신이 아닌 중부권 인사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경구회는 지난해 4월 대구 서갑 보궐선거당시 鄭鎬溶씨의 후보사퇴 파동이 벌어진 이후 일체의 활동을 중지한 상태이다. 이에 대해 이상득 의원은 “다른 의원들(TK가 아닌)은 잘도 모이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만은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나 가을부터는 적극적으로 만남을 주선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중견 TK에 속하는 행정부 한 관리의 말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지난 대통령선거때는 김대중씨에 대한 비토(거부)권이 확대 됐었다. 그러나 현재 권력 핵심에서 김대중씨에 대한 비토의 농도는 점차 묽어져가고 있는데 반해 김영삼씨에 대한 비토세력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단적인 예가 지난 7월16일 여야 총재회담과 유엔동행 제의이다. 물론 청와대가 내각제 집착 때문에 김총재에게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항상 김대표를 먼저 의식해야 하는 노대통령 입장에서 김총재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확인했다는 발표를 하게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때 뉴욕에 같이 가자는 제안도 대단히 어려운 결정이었다. 14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가장 의미심장한 변화 중의 하나이다.”

 이와 관련, 14대 총선에서 서울 서초을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나선 金容甲 전 총무처장관(밀양 출신)의 견해는 보다 확실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全斗煥 전 대통령은 범보수세력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서 차기정권 창출을 성공시켰다. 따라서 노태우 대통령도 범보수 안정희구 세력이 모두 인정하는 사람을 대통령후보로 내세워야만 할 책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삼씨는 공감을 얻는 데 한계가 있다. 그가 대표로 있는 민자당 안에서도 상당한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데 하물며 밖에서는 어떻겠느냐. 노대통령도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다.”

 그가 말하는 김대표의 한계는 다음과 같은 논리에서 출발한다. “과거에는 민주화가 정치권의 가장 큰 과제였다. 따라서 과거 야당의 대통령후보는 민주화 투쟁 경력만으로 충분했겠지만 여당후보는 다르다. 앞으로는 도덕성 회복이 정치권의 가장 큰 의무일텐데 그 도덕성에 결함 많은 사람이 어떻게 도덕성을 회복하자고 할 수 있느냐. 미국의 대통령후보는 고등학교 시험에서 커닝한 경험만으로도 전력 시비가 일어나듯, 이런 부분을 따지지 않고 순전히 파워게임으로만 권력장악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곤란하다.”

 김씨는 ‘김영삼 자질론’을 펴면서 과거 6·29선언이 나올 때의 비화 한 토막을 밝혔다. 당시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었다. 그에 따르면 6·29선언에 포함될 내용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하고 김대중씨든 누구든 나와서 심판을 받지만, 앞으로  정치의 순탄한 진행을 위해서 또한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번 선거에 나온 사람은 다음 선거에 나와서는 안된다는 항목을 넣자”는 견해가 강하게 제기됐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당시 3김씨에게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조건으로 이런 내용을 받아들이라고 주문하면 충분히 수락할 가능성이 높았고, 그랬더라면 동서가 분열되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청와대 핵심참모 사이에서도 김대표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이 가을 정기국회말까지는 향후 정치일정에 대한 논의를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대표가 이에 정면으로 반발, 총선전 후계구도 결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그에 대한 반감을 결정적으로 심화시킨 대목이다. TK 본류이면서 소위 ‘신공안파’ ‘TK 신주류’로 일컬어지고 있는 丁海昌 대통령비서실장, 金榮馹 사정수석은 朴哲彦 체육청소년부 장관, 徐東權 안기부장과 함께 ‘反 김영삼 4인방’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김대표가 3당합당의 목적이었던 내각제 개헌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사실이 가장 근원적인 배격 이유가 되고있다. 지난 4월1일 두 김씨 대구회동에서 공안통치 종식에 합의한 사실과, 盧在鳳 전 총리가 물러서는 데 앞장섰다는 점도 김대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기에 충분했다는 지적이다.

TK출신 제3의 인물 후보로 내놓을 수도
 이같은 인식은 결국 김대표에게 ‘칼 자루’를 쥐어줬을 경우에 돌아올 결과와 직접 연결된다. 5공에서 6공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처럼, 차기 정권담당 세력의 과오를 전임 세력에게 떠넘기는 ‘부머랭 효과’는 정권교체기의 불가피한 현상이다. 김대표가 대통령후보로 결정되었을 경우, 그는 야당에서 여당으로 넘어갔다는 결정적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또 한번의 6·29선언과 같은 ‘대반란’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이 TK 핵심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관계자는 “칼을 휘두를 때 결국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상처가 크고 깊을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그에게 칼을 맡길 수 있겠는가”라고 비유했다.

 경선원칙이 보다 확실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과연 TK 출신 경선주자가 나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최재욱 의원은 “후보가 없다는 게 공론이긴 하지만, TK가 그렇게 자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최의원의 말은 경우에 따라서는 범TK가 의견을 결집시켜, TK 출신 제3의 인물로 대통령후보를 내놓을 수 있다는 쪽에 가깝다. 내각제 개헌이 아직 물건너 간 것이 아니라는 여운으로도 들린다.

 흔히 신민주계의 대표적 인물로 거론되고 있는 金潤煥 사무총장도 제3의 인물 혹은 내각제 개헌의 재부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평소 “차기 정권만큼은 TK가 건너뛰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김총장은, 지난 6월 광역의회선거 당시 경북 지역의 지원유세에 나서 “이번에도 TK가 잡을 수 있다”고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본인 스스로 경선주자로서의 가능성을 점쳐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총장은 물론 이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김총장이 신민주계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TK의 한 핵심의원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당이 삐걱거리는 사태를 막고, 통치권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 누가 총장을 맡는다 해도 김총장처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김총장이 평소 자신은 ‘노대통령계’라고 강조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적극 변론했다.

 金復東씨와 鄭鎬溶씨도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김씨의 경우 그가 대구 동구에서 14대 총선에 출마하는 것이 거의 확정적이기 때문에 그의 행보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 13대처럼 노태통령도 김씨의 출마 자체를 막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TK인사들의 지배적인 견해이다. TK인사들은 김씨가 노대통령의 ‘三非論’, 즉 친인척·군 및 대구지역 출신 배제 원칙에 모두 해당되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쪽을 강조 하면서도, 그 스스로 독자적인 세를 형성해서 치고 올라올 경우 사정은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민자당의 한 당직자는 “청와대에서 먼저 김씨에게 손을 내밀수는 없지만 본인 스스로 TK를 결집시키고 나온다면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호용씨 귀국 재결집 변수
 그러나 현단계에서 김씨는 총선 출마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큰 무게를 얹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할 듯 하다. 국제문제연구소의 한 측근은 “기자에게서 정황을 묻는 연락이 올 때마다 회장님(김씨)은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기자들에게 되물어보라’고 종종 말한다”면서 “현재로서는 14대 총선 출마 이외에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호용씨의 경우 비록 미국에 체류하고 있지만 향후 정국에 상당한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신민당 김총재가 그를 최대 경쟁자로 인식하고 5공청산의 최대 목표로 겨냥했을 만큼 TK 내에서 그의 위치는 압도적이었다. 그가 비록 정치일선에 다시 나서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분열돼 있는 TK세력을 재결집시키는 데에는 커다란 몫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흔히 TK세력은 장로정치가 행해지고 있는 유일한 정치집단으로 불리고 있다. 장로정치란 TK 출신 재계 3총사로 불리는 申鉉碻 金埈成 鄭壽昌씨 등의 경우처럼 사회 각 분야에 장로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TK의 결속을 다지는 한편, 이들이 나아갈 방향을 잡아준다는 뜻이다. 물론 TK의 정점에 노대통령이 위치하고 있고 노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향후 정국이 운영되겠지만, 이들 장로들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국가경영이 그만큼 힘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귀가 넓은’ 노태통령에게는 朴浚圭 국회의장을 비롯한 장로들의 견해가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

 5·6공화국이 비록 ‘TK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따져볼 때 TK는 다른 세력과의 연합으로 정권을 유지해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5·6공은 실제로 경남과 이북 출신을 적절히 등용하면서 국가경영을 해왔다.

 정권교체기의 갈등이 한층 치열해지는 현시점에서 TK는 그들 내부의 경선주자가 정해지지 않을 경우, 그들의 집단이익을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는 세력과 연합을 도모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22일 李鍾贊 의원과 박철언 장관의 골프회동은 비록 개인적 차원의 일이나, 그 의미를 확대하자면 사실상 SK(서울·경기)와 TK의 연합 움직임의 서곡인지도 모른다.

 또 한가지, 청와대를 비롯한 TK 핵심부는 호남세력과의 적극적 연합의사를 더욱 굳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9월17일의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은 한반도내 동서 화해 무드에 결정적 호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권력의 독점이 아니라 권력분점이라는 차원에서 한국 정치권 역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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