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 새 바람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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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적 ‘고백’운동



박노해 · 신지호, 매체 통해 “사회주의 포기”
노동자, 대중소비사회에 매몰…‘투쟁의 터’ 상실
 진보진영에게 80년대는 현실과 치열하게 대결하는 싸움의 시대였다. 그리고 진보진영은 80년대가 끝나는 시점에 사회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회주의 ‘선언’을 했다. 그 선언은 싸우면서 터득한 논리였다. 사노맹을 비롯한 수많은 비합법 조직이 그랬다. 그들은 당당하게 “나는 사회주의자”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제 선언의 시대는 가고, 힘들게 다듬어온 사회주의라는 무기를 스스로 내던지는 ‘고백의 시대가 오고 있다. 지금 진보진영에 고백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박노해 “사회주의 포기는 참담한 용기”

 구속된 사노맹 지도자 박노해씨는 모 잡지에 “나는 철저한 사회주의신봉자였다. 그러므로 내가 사회주의를 포기한다는 것은 실로 견디기 힘든 자기부정이며…한편 참담한 용기이기도 하다”면서 고백을 시작했다. 그는 지금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깃발을 내리는 결단도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현실에서의 실천 가능성을 염두에 둘 때 개량주의는 급진주의보다 오히려 적절한 대안”이라는 데까지 미친다.

 고백의 바람은 80년대 노동운동의 메카 울산에서도 불어왔다. 울산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해온 申志鎬씨(31)는 진보정당추진위원회 기관지 <노동과 진보> 창간호에 ‘고백’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이 글에서 “날 보고 패배주의자, 청산주의자라고 욕해도 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이 없으며 … 나는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본주의 체제 내의 다양한 개혁운동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90년 초 법정에서 “그렇소, 나는 사회주의자요”라고 당당히 밝혔던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조직원이었지만, 이제는 “고전적 기준을 들이밀면 더이상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됐다.

 이 두 사람은 “너무 조급하게 반성”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꽤 오랫동안 혼자 품어온 문제를 고백의 형식을 빌려 사회에 내놓은 것이다. 노선은 다르지만 박노해씨와 신지호씨는 모두 80년대 최대의 비합법조직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이다.

 고백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갔다. 월간 《사회평론》 8월호와 《길》 7·8월호는 고백에 대한 찬반의 글을 실었다. 학술단체협의회에서도 ‘현단계 마르크스 주의의 위기와 진보운동’이라는 주제로 지난 7월10일과 31일 3회에 걸쳐 토론마당을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윤소영·이병천·최장집 교수 등 한국에 마르크스주의 학문을 심어온 소장학자들과 진보정치 진영에서 이름깨나 알려진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그들 중 일부는 그 자리에서 학문적 고백을 했거나 나름대로 현실에 맞춰 궤도를 수정했다. 지금 진보진영의 논객들이 앞다퉈 ‘고백’이 제기한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고백이란 종교적인 것이고 혼자만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사적인 것이다. 그런데 진보진영은 고백의 형식을 빌려 사회적 발언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서 고백이 터져나왔으며, 토론을 통해 의견을 좁힐 수도 있는데 굳이 고백의 형식을 빌렸을까.

 문학평론가 이재현씨(35)는 “진보진영의 실천 역량에 비해 사회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변화하는 현실에 진보진영이 학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고백의 형식을 빌려 “심경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고백을 비판하며 였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을 시도하려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적어도 고백론자에게는 사후적으로 역사에 알리바이를 대는 것일 뿐이다.

 기왕에 고백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던 김지하 시인이나 이영희 교수의 고백이 있다. 소위 강단학자 가운데 상당수가 진작에 ‘마르크스주의 포기선언’을 했다. 그러나 최근의 고백 바람은 사정이 다르다. 실천운동이 발을 딛고 섰던 노동현장의 변화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에서 보면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대중소비사회의 영향은 한때 가장 투쟁적이던 대기업 노동자들의 생활에서도 나타난다.

 신지호씨는 울산에서의 체험을 이렇게 전한다. “노동자들이 이전에 보여주었던 전투성은 거세되었다. 둘 또는 셋 중의 한명은 자가용을 굴린다. 이제 그들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 아직도 구호 몇 마디 외치면 노동자가 떨쳐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행한 몽상가이다.” 혁명가가 양분을 흡수할 토양 자체가 변한 것이다.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조회연교수(성공회신학대·사회학)는 요즘의 고백현상에 대해 “하나님이 부재한 상태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형국”이라고 진단한다. 시대가 고백을 강요하지만 개종할 신앙이 없다는 얘기이다. 이는 진보진영이 사회주의 몰락이 시작된 시점에 사회주의를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 동안 실천운동에 몸을 담아온 사람들이 버텨내야 할 무게는 결코 적지 않다. 고백 바람이 운동가들에게 현실에서 도피할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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