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파 교수들 ‘찬밥’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4.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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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기 들어 정권 핵심서 밀려나… 관료 · 기업 출신 약진

김영삼 정부 출범 당시 문민 시대의 문민 엘리트로 성가를 올리던 교수 출신 인사들의 비중이 집건 2기에 접어들면서 크게 떨어지고 있다.
 집권 초기 이들은 청와대와 내각 및 주요 국가기관의 책임자로 배치되었지만 지금은 실권이 별로 없는 관변 자문회의 위원으로 위촉되는 것이 고작이다. 한때 새 정부 참여 열기로 뜨거웠던 교수 사회에도 싸늘하고 냉소적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참여 교수 그룹을 대표하는 사람은 한승주 외무부장관, 정종욱 외교안보수석비서관, 김덕 안기부장, 한완상 전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 등 외교 · 안보 분야 4인방과 신경제 자문그룹을 이끈 박재윤 경제수석비서관이다. 4인방 가운데 한완상씨가 제일 먼저 탈락했고 지금은 한승주 · 정종욱 · 김 덕 씨가 남아 있다.

 한부총리의 실각 배경을 둘러싸고는 최근까지도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지만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사이의 대립에서 패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관료사회라는 조직이 그의 자유분방함을 용납하지 못했다는 해석도 있다. 후임 이영덕 부총리의 경우 학자로서의 연륜보다는 관료로서의 실무 능력이 더 평가됐다.

 정종욱 수석은 작년 하반기 이후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서 조금씩 소외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정수석은 별다른 역할을 못했다고 한다. 김 덕 안기부장의 경우 안기부 요직을 장악한 상도 동계 인사들의 활동을 휘어잡고 통제하기보다는 대체로 수용하는 선에서 절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를 김부장의 ‘장수 비결’이라고 말했다. 4인방 교
수 가운데 특히 실무 능력을 인정받는 이는 한승주 외무부장관이다.

“교수 출신이 실세인 적 없었다”
 이같은 판도 변화는 경제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경제 분야에서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한 교수 수는 80명 정도였다. 이 가운데는 국책 연구소 박사들도 있다. 모임을 이끈 사람은 박재윤 당시 서울대 교수였다. 50대 중심의 ‘시니어 그룹’과 40대 위주의 ‘주니어 그룹’으로 구성된 이들은 매주 토요일 서울대 호암생활관에 모여 분야 별로 토론하고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와는 따로 김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이끈 정책 두뇌 집단인 ‘YSG(Young Society Group)’가 있었다. 여기에는 30대 전문인 30여 명이 참여했다.

 참여 교수들에 대한 논공행상은 이미 끝난 상태이다. 시니어 그룹에 속하는 6명 가운데 박재윤 교수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박종기 인하대 교수는 조세연구원장을, 김영욱씨는 생산기술연구원장을, 박영철씨는 농촌경제연구원장을, 유장희씨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을 각각 맡고 있다. YSG 그룹은 해체된 상태이다. 박수석을 제외하면 대개 ‘힘 있는 자리’와는 한발짝 떨어진 자리에 배치되어 있다.

 취임과 함께 신경제 정책의 야전 사령관으로 지휘봉을 잡았던 박재윤 경제수석의 비중 역시 현저히 줄었다. 특히 금융실명제와 같은 중대 사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박수석은 완전히 배제됐다. 박수석의 ‘이론’을 토대로 짜놓은 신경제 일정이 맞아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김대통령이 직접 금융실명제를 정면돌파해 버린 것이다. 이를 계기로 경제 정책의 고삐는 박수석의 손을 떠나, 12월21일 실무형 개각 때 등장한 정재석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손으로 넘어갔다.

 교수팀의 약세에 비해 두드러진 것이 관료 출신 인사와 기업 엘리트 그룹의 약진이다.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김대통령을 도운 한이헌 경제기획원 차관이나 서상목 보사부장관은 꾸준히 자리를 높여가고 있어 좋은 대조가 된다. 김대통령의 대학 동창으로 청와대와 경제계를 이어주는 창구 노릇을 하는 구평회 무역협회장도 ‘YS의장의 참모’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최근에는 그동안 5 · 6공 시대의 인물이라는 이유 등으로 중용되지 못했던 인사들도 속속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포철 회장에 임명된 김만제 전 부총리나 교통개발연구원 이사장인 사공일씨가 이에 속한다. 김회장은 서강대 교수로 일한 경력이 있지만 오랜 세월 한국개발원장 · 재무부장관 · 부총리를 역임하며 관록을 쌓은 인물이다. 이들은 실무 능력을 갖춘 전문가 출신 고급 관료 그룹이라는 점에서 교수 그룹의 대칭점에 서 있다.

 민자당의 한 인사는 “기업은 개혁 노선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집단이다. 기업 엘리트 그룹은 정치권 밖에서 개혁의 버팀목 구실을 한다. 대통령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바로 이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작년 12 · 21 개각 때는 전례 없이 기업쪽 인사가 각료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 하반기에 다시 한번 교수 그룹을 앞세워 정치권 개혁을 추진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권 내에서 ‘이념 그룹’이라 부르는 민자당 민주계 핵심 인사와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주축이 되어 도덕정치론을 내세운 국민운동체를 결성하려 했던 것이다. 서울대 손봉호 교수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시민운동협의회’(정사협)가 그 모체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크게 확산되지 못하고 주춤한 상태다. 김대통령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정사협이 위축된 배경을 분석하는 시각의 하나이다. 정치관계법 개정 등 제도를 개혁함으로써 정치판을 물갈이하려던 대통령의 눈에 도덕운동을 하는 국민운동체라는 것은 별로 실속이 없어 보인 모양이다.

“6공 시절이 활동하기엔 좋았다”
 교수 출신 인사들이 자꾸 찬밥 신세가 되는 이유는 뭘까. 민자당의 한 인사는 “교수 그룹의 역할 감소는 개혁 엘리트 충원 구조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이제 필요한 사람은 개혁 실세를 정치적 · 실무적으로 뒷받침할 재야 인사 혹은 고급 기술 관료이지 이론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직책 선정 업무를 맡은 민자당의 한 간부도 “환경 · 통상 · 법률 같은 분야에서 실무 능력이 있는 인사를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새 정부 출범 이후 교수 출신 인사들이 실세였던 적이 없다. 실권은 다른 데 있었다. 자기를 실세로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착각이다”라고 색다르게 해석했다.

 김대통령의 개혁 청사진을 입안하는 데 참여한 한 교수는 최근 “교수팀은 용도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선거를 치를 경우나 정권을 장악할 때는 많은 정책 아이디어가 필요해 교수를 중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그런 수요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신문에 비판적인 칼럼을 쓰면 주변 사람을 통해 정부 쪽에서 자제를 요청해 온다. 두세 번 그런 경험을 했다. 교수들이 활동하기에는 노대통령 시절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라고 말한다.
韓宗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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