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宗鎬 정무장관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199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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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장선거에 타협은 없다”

金宗鎬 신임 정무장관은 정국이 얼어붙은 때에 취임했다. 지난 7월27일 그와 인터뷰한 3일 후 기자는 그의 집무실을 다시 찾았다. 7월29일 민자당이 단독으로 국회 소집 공고를 냈기 때문이다. 여야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대치하던중이라 정국은 더욱 경색됐다. 이런 형국에서 대야당 관계를 맡고 있는 정무장관은 운신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김장관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란 말을 되풀이했다.

 행정부 · 국회 · 당의 요직을 두루 거친 김장관은 그의 별명 ‘김소평’이 말해주듯이 일을 처리하는 솜씨가 다부지다. 그는 내무부 주사로 출발해 장관직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전형적인 외유 내강형이다. 그는 5공시절 박종철 사건으로 내무장관직을 사임했고,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민자당 단독으로 법안을 날치기 처리한 후 원내총무직을 내놨다.

 민자당이 단독으로 임시국회를 소집한 것은 날치기를 하겠다는 뜻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걸 전혀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측면보다는 일단 국회를 열어 야당에 등원을 촉구한다는 측면이 더 크지요. 민주당은 어려울 것 같고 국민당이라도 들어오게 해서 원을 구성해야겠다는 것이고, 그것도 저것도 안될 때 다시 상의를 하자는 거지요. 여하튼 야당에서 안된다고 고집을 피울 때 국정에 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이 그냥 이런 상태로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안건 처리에 관한 문제는 원내 총무의 소관 사항이지, 제가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지요.

 갑작스런 국회 소집은 당 내분으로 쏠리는 국민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것 아닙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개원 국회가 7월28일 끝나면 바로 29일 다시 소집을 요구하고 8월1일부터 국회를 여는 문제가 협의됐었어요.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대야당 관계를 맡고 있는 김장관도 책임이 있는데, 여하간 야당과의 대화는 실패한 것 아닙니까?

 민주당과의 대화는 어려울 걸로 봐요. 국민당과의 대화는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봅니다. 김영삼 대표와 정주영 대표가 회담하기 앞서 국민당과는 원내총무간에 의사일정까지 합의를 했었어요.

 민주당과는 대화의 여지가 없는 건가요?

 없다기보다는 당분간은 어려울 걸로 봐요. 계속 야당쪽 사람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김용채 전 장관의 후임을 공화계가 아닌 민정계에서 맡은 것이 다소 뜻밖입니다.

 민자당 내 계보는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당내 사정이 어렵고 대통령선거를 앞둔 중요한 시기니까 행정부와 원내총무 경력을 가진 사람이 맡는 것이 좋겠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 것으로 압니다. 김종필 최고위원께서도 그렇게 이야기 하셨다고 그래요.

 김최고위원이 아니라 김윤환 전 총장이 민 것으로 압니다만.

 물론 주변의 의견을 다 들었겠지만 일단은 대표와 최고위원 선에서 이야기가 됐다고 봐야지요. 여러 사람이 제가 적임자라며 천거했다고 들었습니다.

 김장관은 86년 예결위 위원장으로서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켰고, 지난 정기국회 때는 원내총무로서 법안을 무더기로 날치기 통과시킨 주역이라 정무장관 임명과 관련해 뒷말이 있습니다.

 여당 총무는 강행 처리와는 숙명적으로 인연을 끊을 수 없어요. 우리나라 정치 풍토의 개탄스러운 면입니다. 여야가 밤을 새워 토론하더라도 일단 처리는 표결로 해야지요. 단상을 점거하면서 처리를 저지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 풍토에서 빨리 사라져야 할 구태입니다. 따라서 강행 처리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이야기지요. 예산안 같은 거야 법정시한이 있는데 야당에서 정치현안과 연계시켜 물리적으로 저지할 때 여당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강행 처리할 수밖에 없지요.

 교착 상태에 있는 정국을 풀 수 있는 묘안이 있습니까?

 원내총무를 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철학이 하나 있지요. 여당은 야당에게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총무 시절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임시국회를 여러 번 열었고, 지방의회선거 등 복잡하고 중요한 정치적 사안이 많았는데도 대야당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왔다고 자부합니다. 또 한가지는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다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기조를 유지하면서 국회를 이끌어 왔어요. 교착 상태의 정국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총무를 맡기 전부터 지자제 실시를 반대해왔는데 내무 관료 출신의 발상이 아닙니까? 지금도 그런 입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 아닌가요?

 당시에는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그렇게 주장했지요.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나라가 완벽하게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 활발한 지방자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대통령에 의해서 민주화가 많이 진척됐는데 그 기반으로 군 · 구의회, 시 · 도의회 선거를 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어요.

 언제부터 주장을 바꿨습니까?

 13대 때입니다. 자치단체장 선거 문제인데, 물론 빨리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를 하나 든다면 프랑스는 도 · 시 · 군 · 구의회 의원선거를 치르고 1백50년쯤 지나 도지사 · 시장 · 군수 · 구청장 선거를 치렀고, 일본은 두 선거의 시간 차이가 60년 정도 됩니다. 우리의 경우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많이 진척됐지만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할 입장이고, 경제적으로도 더 안정돼야 할 입장입니다. 이렇게 보면 조급하게 실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내무 관료 출신이기 때문에 지방자치가 이르다고 한 것은 11 · 12대 때 이야기지요. 단체장선거는 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경제가 되살아나는 것을 봐가면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겁니다.

 바로 그 이유, 대통령선거 때문에 야당은 단체장선거를 대선 전에 혹은 대선과 동시에 치르자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 명분은 설득력이 없다고 봐요.

 솔직하게 말하면 단체장선거가 대선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요. 야당에서는 행정부쪽이 관권선거를 한다고 주장하지만 관권선거는 이미 이나라에서 사라졌습니다. 여당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깨진 것이 벌써 언젭니까. 이것이 관권선거가 사라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단체장선거와 대통령선거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요.

 법에 선거를 하게 돼 있으니까, 누가 뭐라 해도 일단 명분에서는 야당이 옳다고 봅니다. 야당이 끝까지 버티면 어떻게 할 예정입니까?

 그러나 물리적으로는 이제는 불가능합니다. 지금은 이미 8월입니다.

 광역단체장 선거를 대선과 동시에 실시하는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은 없나요?

 논리와 이상일 뿐이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어느 나라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동시에 하는 나라는 없어요. 대통령선거는 단체장선거와는 정치적으로 뜻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국민이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요. 대통령선거는 나라의 운명을 맡길 사람을 뽑는 것 아니겠습니까. 야당은 단체장선거를 실시하지 않음으로 해서 관권선거를 하려 한다고 강변하는데, 반드시 공정선거가 이뤄질 수 있게 대통령선거법을 완벽하게 개정하면 됩니다.

 단체장선거에 관한 한 타협은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예. 그러나 야당과 계속 얘기를 해볼 작정입니다. 제가 원내총무를 하면서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를 여러 번 겪었어요. 제 별명을 ‘지하철’이라고들 하는데, 일할 때 말수가 상당히 적고 지하철공사를 하듯이 한다는 데서 나왔나 봅니다. 지금 그렇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민자당 지도체제 문제와 관련해 당내 갈등이 있는데 ‘김종필 대표최고위원’안에 대한 김장관의 개인적인 견해는 어떻습니까?

 모든 일은 순리에 따라 순리대로 매듭이 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이 갈 줄로 압니다.

 이종찬 탈당설 · 정호용 신당설이 나돕니다. 대선 전에 정계가 재편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없다고 봅니다. 옛날 여건에 계셨던 분들이 신당을 만들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종찬 의원도 큰 뜻을 품은 분이니까 처신과 결단을 내리는 데 신중할 것으로 믿습니다.

 내무부에서 주사로 시작해 장관까지 오르셨는데 출세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내무부에서 장관을 열네분 모셨고 15번째에 제가 장관을 했습니다. 저는 공직에 있는 후배들에게 ‘正心誠意’를 강조합니다. 공직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신념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람이 힘을 잡고 칼을 쥐었을 때가 참으로 조심스럽고 어려운 때다, 그런 경우에도 겸손을 잃지 않는 사람이 백성을 위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도지사와 내무장관을 지낼 때 시정방침이 爲民善政, 즉 국민을 하늘과 같이 알고, 국민을 하늘과 같이 두려워하고, 국민을 하늘과 같이 모신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내무장관때 별명이 ‘3민3천교주’였지요. 정심성의를 지키고 힘있을 때 겸손을 잃지 않는 사람이 크는 법이지요. 후배들에게 이 점을 깨우쳐주고 싶습니다.

 줄서기의 명수란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저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지요. 주변에서는 저보고 덕으로 다스리는 사람이라고들 말합니다. 제가 12대 총선에서 전국 최고득표를 했고, 13대 때는 전국 2등을 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득표율이 65%였어요. 그게 줄서기로 됩니까. 그것은 인품과 덕 때문이라고 봐야지요. 도지사 · 장관을 할 때 모두 저보고 덕인이라고 했어요. 지난번 김영삼 대표 추대를 놓고 줄서기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당시에 의원들이 하나같이 김대표밖에 대안이 없다는 말을 했어요. 그러나 그것을 대외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때 김윤환 의원과 제가 나선 거지요. 그래서 제가 중진의원들을 이렇게 설득했어요. 적어도 중진정도 되면 당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어느 일이 옳다는 것을 초선의원이나 원외 위원장한테 깨우쳐줘야지 그저 눈치만 보고 가만히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요. 일이 잘되고 나니까, 저를 질시하는 사람이 줄을 잘 섰다는 식으로 말하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줄을 잘 서고 못서고의 차원이 아니지요.

 행정과 정치, 둘 중 어느쪽이 재미있습니까?

 지금까지 도지사 차관 장관 국회의원 원내총무도 했지만,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자리는 도지사입니다. 그때 ‘위민선정’이 신조였지요. 지금도 지역구를 그런 심정으로 관리합니다. 행정부에 있을 때는 행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국회에 나가서 보니까 백성이 잘살고 잘살지 못하는 것은 행정이 아니라 정치에 달렸더군요.

 관료 생활을 오래 해서 만능주의 발상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수정이 됐어요. 제가 내무장관으로 임명되니까 경찰 15명이 따라붙어요. 다 뿌리치고 전화받는 총각 순경 한명만 두었지요. 그때 그친구한테 분명히 해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장관에게서 오는 전화는 괜찮다. 그러나 시골에서 오는 전화를 따돌리면 너는 그 날로 목아지다라고요. 어느날 새벽 4시30분쯤 여인숙을 하는 한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자식이 한국전력에 시험을 봐서 1차에 붙었는데 잘 좀 이야기해서 들어가게 해달라고요. 그래서 출근하자마자 한전 사장한테 전화를 했어요. 그리고 여인숙 할머니한테 전화를 다시 해주었어요. 이것이 바로 제 모습입니다. 저의 그런 면이 전국 최고득표율을 올리게 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입니까?

 오래 참을 줄 알고, 속이 깊을 줄 알고…. 인격적인 수양 측면을 강점으로 생각합니다. 약점이라면 (한참을 생각한 후) 저는 줄이 없어요.

 향후 충청권의 대표 주자로 지목하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만.

스스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돈 문제에 관련된 일이 없고, 그래서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면 큰 지도력을 얻게 되는 거고, 그렇게 되면 정치적인 역할이 부여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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