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난민의 ‘희망’ 말테제
  • 부다페스트 김성진 통신원 ()
  • 승인 1992.08.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호품 전달?병자 치료 등 맹활약…89년 재창설 헝가리에 70개 지부



동유럽 난민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가톨릭계 구호기관인 말테제 사람들이다. 그들의 횐쪽 어깨에는 몰타 십자(빨간색 바탕에 가지로 밖을 두른, 끝이 들쭉한 십자)가 붙어있다. 지금부터 9백년 전 지중해 몰타섬에서 만들어진 말타제 기사단이 모체인 이 단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빈민구호기관이다.

동유럽 난민구호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헝가리 말타제는 공산체제 아래에서는 불법단체로 규정되어 활동이 금지됐었다. 그러나 지난 89년 3월 오랫동안 공산통치에 항거해 온 일레 코즈마 신부(현 헝가리 말타제 총제)의 주도로 다시 창설되었고 최근 유럽에서 벌어지는 여러 유혈사태를 통해 그 성가를 드높였다.

헝가리 말테제가 전세계의 시선을 모은 때는 창립 5개월만인 89년 8월이었다. 당시 옛 동독의 호네케 체제에 환멸을 느낀 4만8천6백여명의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가려고 헝가리로 탈출하였다. 이때 말테제는 당시 서독 말테제의 전면적인 지원을 받으며 이들에 대한 구호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의 활약으로 동독 정권은 더욱 궁지에 몰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일째 되는 날 동독 난민을 위해 세웠던 천막의 마지막 것이 문을 닫았다. 현대사의 한 장을 기록한 순간이었다.

유고내전 격전지에도 지부 설치

1989년 12월 루마니아 혁명이 촌각을 다투고 진행되자 유혈사태를 우려한 수많은 난민이 또다시 헝가리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테제는 이들에 대한 구호활동을 펴는 한편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육로로 루마니아 내부에까지 구호품을 운반하기 시작했다. 7백만달러 이상의 구호품이 헝가리 말테제를 통해 미국의 ‘아메리카레스’ 바티칸 덴마크의 ‘카리타스’ 벨기에의 ‘에데 오트리’그리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말테제 등으로부터 루마니아로 유입됐다. 루마니아 혁명이 성공한 이면에는 말테제의 노력이 숨어 있는 셈이다.

지난해부터는 유고내전으로 발칸지역에서 난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헝가리 국내에는 모두 12개의 국영 난민캠프가 세워졌으나 식료품, 의료품 등은 모두 말테제가 공급하고 있다.

심지어 헝가리 말테제는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격전지였던 슬라보니아주(크로아티아 중부지방의 한 주로 크로아티아와 함께 독립한 슬로베니아와는 다름)에 독자적인 지부를 설치해 난민들을 헝가리로 수송해오고 구호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말테제는 전장에서 모두 1천6백80여명에 이르는 노인, 불구자 그리고 병자들을 구조했으며 어린이들을 포함해 모두 4천8백명을 헝가리로 수송하고 전쟁부상자들을 국경도시인 헝가리의 패치로 옮겨 치료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현재 헝가리에 70개 지부가 설치되어 모두 9천6백명의 자원봉사자가 일하고 있으며 유급근로자는 5명에 불과하다.

기자가 3일 저녁 부다페스트 2구역에 있는 말테제 본부를 찾았을 때에도 10명의 자원봉사자가 5대의 트럭에서 구호품을 내려 분류하고 있었다. 말테제 본부는 코즈마 총재가 일하고 있는 주글리게트성당의 지하층을 쓰고 있었다. 본부 앞에는 말타제 소속 앰블런스 5대가 구급환자를 수송하려고 비상대기하고 있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를 돕는 것이 소명”

본부를 들어서면 자원봉사자들에게 알리는 공지사항이 가득 붙은 게시판이 먼저 눈에 띄고 그 옆방에 산더미처럼 쌓인 각종 구호품의 목록을 적은 서류가 보인다. 서류더미 앞에는 컴퓨터 단말기가 놓여있다. 코즈마 총재 역시 이방에서 작업복 차림으로 구호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코즈마 총재는 “오늘 보스니아로부터 고아 6백명이 도착해 그들에게 지급할 구호품을 분류하고 있다”고 서두를 뗐다. 그는 무엇보다 구호품 수송비가 많이 들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의 경우 4백차례나 트럭을 이용했는데 트럭회사에서 50% 할일을 해주고 있긴 하지만 수송비로 3백만포린트(한화 3천만원)가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현재 헝가리 가정에 민박하고 있는 난민들에게도 말타제에서 식료품과 의약품을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말테제의 창설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곧 나에게 베푸는 것”이라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면서 병자 노인 불구자 집없는 사람 그리고 난민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자신들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