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은 세게 1,2위 평판은 하늘과 땅
  • 도쿄 채명석 객원편집위원 ()
  • 승인 1992.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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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재벌 모리, 쓰쓰미…재산 사회환원 과정이 판이



“우리가 억만장자를 존경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억만장자를 새롭게 잉태해내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는 감사해야 한다.” 이것은 매년 세계의 억만장자 순위를 발표하고 있는 미국의 격주간 경제지 《포브스》의 금년도 심사후 평이다.

《포브스》가 올해의 억만장자(자산액 10억달러)로 선정한 부호는 모두 2백91명. 전세계적으로 ‘거품경제’가 시들고 있는데도 작년보다 17명이 늘었다. 나라별로는 미국 1백1명 독일 44명 일본 34명 순이다. 세계의 억만장자가 이들 3대 경제대국에 집중돼 있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지만 이채로운 것은 일본의 부호들이다.

일본은 작년 세계의 억만장자에 41명이나 올라 미국 다음가는 부호왕국임을 과시했다. 그러나 주가와 부동산 가격의 대폭락으로 올해는 7명이나 탈락해 일본의 억만장자들이 이른바 ‘거품 부호’였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올해도 세계 제1,2위의 억만장자는 역시 일본인 들이었다.

모리 후기치로(森 泰吉郎)와 쓰쓰미 요시아키(堤 義明)가 바로 그들인데 모리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세계 제일의 부호자리를 차지했다. 《포브스》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모리의 총자산은 약 1조6천9백억엔. 우리돈으로 약 10조원에 달한다. 빌딩 임대업체인 ‘모리 빌딩’을 주축으로 17개 부동산 관련 회사를 거느린 모리그룹은 종업원 7백여명에 연간 매출액은 1천3백억엔에 불과하다. 그러나 도쿄의 한복판 미나토구 등에 밀집돼 있는 82개의 모리 빌딩은 일본의 부동산투기붐에 따라 평가액이 엄청나게 뛰었다. ‘거품 경제’가 사그라든 지금도 주요 부동산이 도쿄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모리그룹의 자산은 별 변동이 없다.

모리 “도시재개발은 일종의 공공사업”

특히 ‘모리 빌딩’이 86년에 롯본키 ? 아카사카에 지은 인텔리전트 빌딩 ‘아크 힐스’등은 오히려 평가액이 늘었으면 늘었지 조금도 줄지 않았다고 《포브스》는 전했다. 도쿄의 1등지인 롯본키 ? 아카사카의 36만㎡에 17년 걸려 완성한 ‘아크 힐스’는 사무실 주택 호텔 방송국이 들어선 복합도시로서 82개의 모리 빌딩 중에서도 단연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88세의 모리 후기치로가 현직 사장이고 아들 둘이 전무, 상무로 있는 전형적인 가족기업이다. 모리그룹이 안고 있는 경영상의 유일한 문제점은 약 5천억엔에 이르는 차입금이지만, 일본의 금리가 하향 국면이고 임대로 수입이 안정돼 있기 때문에 끄떡없으리라고《포브스》는 판정을 내리고 있다.

최근 수년간 모리와 함께 세계 제일의 부호자리를 다퉈왔던 쓰쓰미 요시아키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2위에 머물렀다. 《포브스》는 쓰쓰미의 자산총액을 1조3천억엔(약8조원)으로 추산한다. 그러께까지 4년 연속 세계 제일의 부호로 선정되었던 쓰쓰미가 2위로 밀려난 것은 그가 소유한 상장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하락한 데가 일본 전국에 산재한 부동산 값이 모리가 가진 부동산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포브스》는 지적하고 있다.

일본 재계의 숨은 실력자이기도 한 쓰쓰미의 주요 자산은 ‘국토계획’이 발행한 주식으로, 그 평가액만 1조2천억엔에 이른다. 그는 이 회사를 모체로 세이부 철도 ? 세이부 부동산 ? 프린스 호텔?세이부 라이온스 야구단 등 철도에서 레저까지를 망라한 일대 기업군을 거느린 재벌 총수이다. 또한 세이부 철도가 소유한 전국의 토지가 4천5백만평이나 돼 일본 제일의 ‘부동산 왕’으로 꼽힌다.

올해 58세인 쓰쓰미는 ‘2세 경영인’이다. 오늘날과 같은 ‘세이부 왕국’의 기틀은 잡은 것은 그의 부친 야스지로 전 중의원장이었다. 야스지로는 본처 소생인 장남 세이지보다 후처 소생인 요시아키를 편애하여 사업을 대부분을 그에게 물려 주었다. 형 세이지도 백화점 분야를 물려받아 ‘세존그룹’을 형성할 정도로 성공했으나 그의 전 자산은 동생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천부적인 사업가 기질을 발휘하여 지금의 ‘세이부 왕국’을 구축한 쓰쓰미는 일본 올림픽위원회(JOC)의 위원장을 지낼 정도로 사회활동에도 열심이다. 모교 와세대대학의 인맥을 이용해 정계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해 멀지 않아 정 ? 재계의 거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세계적인 대부호 모리와 쓰쓰미에 대한 일본 언론의 평가는 다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 문제로 귀결된다. 쓰쓰미의 작년도 개인 납세액은 약 2억4천만엔으로 자산 총액의 약 5천분에 1에 상당하나 문제는 그의 주력기업들이 법인세를 한 푼도 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쓰쓰미는 세이부그룹의 지주회사 ‘국토계획’의 주식 40%를 보유, 그룹회사들을 피라미드 형태로 지배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국토계획’이 세이부 철도의 주식 49%를 소유하고 세이부 철도가 다시 ‘국토계획’의 주식을 소유하는 이른바 ‘주식의 상호 보유’방식에 의해 그룹을 철권으로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쓰쓰미는 “탈세에 가깝게 절세한다“는 평

그러나 수십개 그룹회사 중 상장회사는 세이부 철도를 비롯한 단 2개 회사. 그룹의 대부분을 비상장회사로 남겨두고 있는 것은 세무조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실례로 그룹의 지주회사 ‘국토계획’이 최근 3년간 지불한 법인세는 한푼도 없었다. 적자가 이유였지만 일본 언론들은 세이부그룹의 “탈세에 가까운 절세 대책”이 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그 방식은 이렇다. ‘국토계획’이 호텔, 골프장, 스키장 등을 건설하며 금융기관으로부터 거액의 차입금을 조달한다. 차입금에 대한 이자를 지불해 이익을 소명시켜 나가다가 이익이 날 만하면 다시 차입금을 늘려 나간다. 일본 언론들은 세계 유수의 부호이자 일본 재계의 리더격인 그의 절세 방식이 “상식을 잃은 처사”라고 비난의 포문을 열시 시작했다.

쓰쓰미 자신은 이에 대해 “법인세를 물지 않는 대신 회사 규모를 늘려감으로서 고용확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 국세청이 적자기업에 대한 과세를 최근 검토하기 시작함으로써 그의 절세 방식도 공 철퇴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또한 ‘거품 부호’모리의 작년도 개인 납세액은 2천5백만엔으로 자산총액의 1만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2년 연속 세계 제일의 부호로 선정된 모리에 대해 일본 언론들이 비난은 커녕 찬사를 보내고 있는 이유는 그가 실제로 ‘거품 경제’와는 무관한 경영자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던 것은 72년 다나카 내각이 ‘일본열도 개조론’을 발표했을 때와 85년의 ‘엔고 불황’이후였다. 모리 자신도 이 두차례의 땅값 폭등으로 재산을 크게 불렸으나 그는 토지투기붐에 편승하여 돈을 번 것이 아니라 꾸준한 도시개발의 결과가 부를 축적해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예로 모리는 석유위기를 맞아 수많은 투기적 부동산회사가 도산했지만 자신의 회사는 끄떡없다고 지적하고 최근의 ‘거품 경제’의 붕괴 영향도 거의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실제 모리는 자신의 이러한 경영철학을 사훈에까지 못박고 있다.

“재개발은 일종의 도시 경영으로서 공공사업과 똑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얼마를 벌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열심히 일하라.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한 대가로 뒤따르는 것이다.”

모리의 이러한 경영철학은 그의 인생 편력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모리는 요꼬하마 시립대학의 상학부장으로 재직하다 사업에 뛰어든 이색 경영자다. 그것도 55살의 나이에 가업을 잇기 위해서였다.

모리의 부친은 수십채의 집을 세놓고 집세를 받아 생활했던 부동산업자였다. 젋은 시절 모리는 ‘사회의 기생충’같은 부친의 직업을 극도로 혐오했다. 그러나 관동대지진과 도쿄공습으로 부친의 재산이 폐허로 변하자 그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부친과 같은 부동산 임대없에서 한발 더 나가 도시재개발사업을 벌여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다.

지난 8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虛業’이 ‘實業’을 압도한 시대였다. 세계 제1,2위의 억만장자 모리, 쓰쓰미도 결과적으로 ‘虛業’에 의해 부를 축적해왔다. 그러나 양자에 대한 평가는 그 부를 환원하는 과정에서 크게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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