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바뀌면 JP 대권 도전
  • 김재일 정치부차장 ()
  • 승인 1991.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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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계, 단일후보 옹립 실패하면 ‘대안’으로 지원

 JP(金鍾必 민자당 최고위원)가 움직인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가 입을 열고, 유유자적하던 그의 발걸음에 탄력이 붙었다. 측근들은 그의 표정이 예전과 비교해 밝아졌다고 말한다. 그의 바빠진 행보와 밝아진 표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정치권의 새로운 흐름을 감지한 것일까. 오랫동안 준비해온 각본을 펼칠 때가 온 것일까.
 
 김최고위원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독특한 정치 스타일 때문이다. 그는 제 3공화국 시절 20년 가까이 권력의 중심부에서 부침과 영욕의 정치 역정을 거쳤다. 누구보다도 권력의 생리에 익숙해 있고 힘의 향배를 민감한 감각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YS(金泳三 대표최고위원)가 경우에 따라 대통령의뜻을 거슬러 ‘치고 나오는’공세를 취함으로써 정치 상황을 만들어 가는 스타일이라면 JP는 주로 통치권자의 뜻에 충실하면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치형태를 보는 정치 흐름 진단은 그만큼 현실적이다.

 김최고위원의 최근 움직임으로 미루어볼때 그가 암중모색 혹은 관망하던 예전의 태도를 버리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특히 지난달 15일 盧泰愚 대통령과의 단독대담 이후 민정계 의원 등 타계파와의 접촉이 눈에 띈다. 두 번에 걸친 박철언 체육부 장관과의 회동, 휴가기간 중 제주도에서 최영철 대통령 정치특보 및 손주환 정무수석과 만난 데 이어 지난달 말에는 경기도 용평에서 1박2일 일정으로 민정계 중진의원 6명과 함께 골프회동을 가졌다.

 지난 7일 당사를 거쳐 국회의원회관에 들른 김최고위원을 만나기 위해 李承潤 李秉禧 尹星漢 李鐘根 吳龍雲 의원 등 공화계 의원들이 줄지어 그의 방을 찾았다. 그들을 만난 후 김최고위원은 ‘中?善隣’ ‘民治國家’그리고 신혼부부에게 줄 ‘백년해로’등의 휘호 10여장을 단숨에 썼다. 기자가 “내각제개헌 실현에 자신 있느냐”고 묻기가 무섭게 그는 “뭐 그런 이야기를…”하며 다음 말을 가로막는다. 그의 제1단계 목표는 말할 것도 없이 내각제 실현이다. 87년 말 대통령선거 직후 소위 ‘색깔론’의 개진과 함께 그의 내각제 주장은 구체화됐다. 김최고위원은 내각제 소신에 관한 한 총보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제1단계 목표는 일단 좌절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핵심 측근인 金龍煥 의원은 “YS가 합당시의 내각제 합의 약속을 깨버렸고 DJ(金大中 신민당 총재)가 내각제를 반대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더욱이 노대통령의 ‘내각제 포기’선언으로 내각제 개헌논의 는 매듭지어졌다는 것이다.

 1차 목표인 내각제를 포기한 현시점에서 김최고위원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민자당의 대통령후보다. 관측통들은 그의 타계파와의 접촉은 향후 정치상황 전개에 대비해 민정계와 연합전선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보고 있다. JP의 비서실장인 金東根씨 (전 핀란드 대사)는 김최고위원의 대권 도전에 대한 “대내외적 여건이 허락한다면 당연한 일 아니냐. 그것은 정치인의 사명이다. 우리는 제반 여건이 조성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말로 김최고위원의 대통령후보 옹립 추진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공화계 “JP만이 지역달등 청산 가능”
 김최고위원의 민정계와의 제휴는 김용환 의원에 추진되고 있다. 김의원은 자신이 민정계 중진의원들과 계속 접촉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그 목적은 물론 민정계와의 제휴를 통한 김최고위원의 대통령후보 옹립이다. 민자당 내에서 그의 역학이 캐스팅 보트를 쥔 ‘킹 메이커’일 것이라는 여태까지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소 동떨어진 움직임이다. 김최고위원 스스로도 “대권에는 욕심이 없다” “정치권의 조정역을 담당할 수 있는 원로로 남고 싶다”고 말해온 터였다.

 관측통들은 밀정계에서 단일후보가 나오지 못할 경우, 또는 민정계와 민주계가 대치상태에 들어갈 경우 그 대안으로 김최고위원이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아 왔다. 공화계의 한 의원은 “당내에서 대통령 후보자 경선이 실시될 경우 JP를 내세워 대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심화된 지역갈등 구조를 청산할 수 있는 인물은 JP뿐이다”라며 김최고위원 옹립의 다위성을 주장한다.

 김용환 의원은 김최고위원의 후보 가능성에 매우 희망적인 표정을 지었으나 “지금 여상의 대통령후보 논의는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 당헌 당규에 명시된 절차와 방법, 그리고 대통령의 의사에 따라 후보자가 결정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여기에서 김최고위원의 민정계와의 제휴가 혹시 청와대와의 어떤 교감 아래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강한 추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는 아직까지 언행을 극도로 자제해왔고 통치권자의 의중에 충실한 정치형태를 견지해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의미심장한 말로 김영삼 대표측이 제주도에서 밝힌 ‘자유경선 불사’ 발언을 맞받아쳤다. “기관차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때가 되면 성능에 관계없이 기관차는 교체될 수 있다” “몇차례 대통령과 만나본 결과 그분의 복안은 분명하다” “토양이 잘 마련되고 있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무언가 확실한 감을 잡고 있는 것같이 들린다. 이와 관련해 공화계의 한 당직자는 “YS의 후보 조기 가시화는 다음 정권을 내놓으라는 협박인데 도대체 노대통령이 그것을 받아들이겠느냐”며 노대토령의 의중에서 김영삼 대표는 이미 배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김대표 배제는 곧 김최고위원이 영역과 활로가 넓어짐을 뜻한다. 두사람은 정치적으로 첨예한 이해 대립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황을 종합해볼 때 김최고위원이 후계구도와 관련한 어떤 가능성을 노대통령으로부터 암시받았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그는 밝아진 표정과 빨라진 발걸음은 그 가능성과 관계있는지 모른다. 김용환 의원은 노대통령의 김최고위원 낙점 가능성에 대해 “개인적인 희망”이라고 말하고 “지금은 객관적인 가능성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여운을 남긴다.

정치일정 등 현안마다 YS와 정명 대립
 공화계 의원들은 “JP가 국정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그의 정치철학과 경륜을 오늘에 되살려 국가와 민족에 봉사할 기회가 주어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JP가 유신 정권에 참여한 ‘흘러간 물’이라는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정치발전 단계에 있어서 당시는 권위주의적 통치구조가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한 관측통은 “만약 대통령으로 출마했을 경우 JP는 약점이 다 까발겨진 상태여서 더 이상 얻어맞을 것도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최고위원은 내각제 헌신 외에 다른 현안, 즉 정치일정 · 선거구제 같은 문제에 대해 김대표와는 철저하게 반대 입장에 서서 민정계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3당합당전부터 강조해왔던 두 사람의 우정과 협조관계는 지금 견제와 경쟁의 관계로 변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최고위원은 한 측근은 “YS가 내각제 합의를 깨고 정도를 이탈했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김최고위원과 공화계는 ‘총선 후 후보결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최고위원의 부상 가능성과 함께 공화계의 사활이 걸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공화계의 한의원은 “민주계측은 권력이양이 여당의 입장에서는 본질적으로 승계라는 사살을 모르고 있다. 야당과는 달리 집권당의 후계구도는 권력이양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뤄져야 권력의 양분 현상과 정부의 불안정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그는 얼마 후면 임기가 끝나는 13대 의원들보다는 다음 대통령과 함께 국정에 참여할 14대 의원들이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좀더 사리에 맞고 당당하다고 주장한다.

 본격적으로 대권 경주에 나선 JP는 과연 앞에 놓인 험난한 장애물들을 돌파할 것인가. 그는 나중에 웃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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