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입학이 건구대만의 일인가”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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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때늦은 공표에 대학가 의혹의 눈초리…검찰 “범죄사실 확실해 수사”

 건국대 입시부정 사실이 언론에 처음 폭로됐을 때 대학가의 일반적인 반응은 “어디 건국대의 일일까”하는 것이다. 그 뒤 부정입학자 가운데는 전대협의 밀사로 베를린에 가 있는 성용승군도 포함돼 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보인 반응 중의 하나는 “전대협 이미지에 먹칠을 하려고 건국대 사건을 터뜨린 것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또 건대사건을 계기로 교육부가 기여입학제를 검토할 것이란 보도가 나왔을 때는 “차제에 기여입학제를 양성화하려고 하는 구나”하는 짐작을 하기도 했다.

 건대사건을 바라보는 대학가 일반의 시각이 이같이 비틀려 있는 것은 건대사건을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학의 비리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이다. 교육부나 사직당국에 의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그것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려든다면 대학 자체의 노력에 의한 해결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가에서 의심하고 있듯이 이번 사건이 터지고 확대되는 데 교육 외적인 의도가 개입돼 있는지 여부도 사건진상과 함께 철저하게 가려져야 할 것 같다.

교육부 발표 10여일 뒤로 미뤄
 건국대에서 대규모 입시부정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소문이 돈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다. 올 2월 교직원노조는 입시부정에 관한 구체적인 증거를 갖고 있다고 폭로했으며 건대 총학생회는 3월 재단측에 해명을 요구하는 공개질의서를 보낸 바 있다. 건국대 입시부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올해 5월23일부터 6월1일 까지 교육부가 실시한 정기행정감사를 통해서였다. 교육부는 감사에서 90년과 91학년도 입시 때 일부 학생이 부정입학한 사실을 밝혀냈으나 공표하지 않고 당시 총장이었던 김용한 교수와 관련자 2명을 중징계토록 했다. 당시 언론사에서 상당히 구체적인 입시부정 제보가 잇따랐는데 교육부의 공식적인 답변은 “정기감사에서 부정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잡음이 일고 있는 것은 김용한 전 총장과 안용교 현 총장 추종세력이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였다.

 교육부가 건대 부정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은 6월26일 KBS 9뉴스에 건대 부정의혹과 함께 성용승군이 경희대생인 박성희양과 함께 베를린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뒤인 지난 6월28일부터 7월9일까지 전국대에 대한 2차감사를 실시하고 나서였다. 교육부는 당시 청와대에 보고만 하고 발표를 미루고 있다가 감사가 끝난 지 10여일이 지난 뒤인 7월25일에야 건국대가 지난 89년부터 91년까지 3년 동안 49명을 부정입학시켰다고 발표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은 교육부의 2차감사가 끝난 뒤로부터였는데 7월31일에는 검찰과 각 언론사  팩시밀리에 88년도에 건대가 53명을 부정입학시켰다는 제보가 날아들었다.

 축산대 ㅎ교수의 이름을 ‘도용한’ 이 익명의 제보자는 유승윤 재단이사장 등이 학생들을 부정입학시키면서 수십억원을 착복했다고 밝히는 한편 성군 등 53명의 부정입학자 명단을 공개했다. 검찰은 현재 교육부의 감찰결과와 제보내용을 토대로 유재단이사장등 구속된 6명의 입시부정 관련자와 해외에 나가 있는 김전총장 등 3명을 기부금 착복 여부에 대하여 집중 수사를 펴고 있다.
 
 건대의 입시부정 사실이 학내 파벌간의 세력다툼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건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재단 이사장인 유씨와 김전총자은 상당히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89년 교수들의 직선에 의해 총장에 오른 김씨는 직선총장의 권위로 재단의 독주에 자주 제동을 걸었는데 그 때문에 이사장인 유씨와 종종 충돌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씨와 유씨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된 것은 올해 학기초 총장선거 때로 교수협의회는 직선을 통해 김씨와 현 총장인 안씨, 그리고 ㅇ교수 등 3명을 추천했는데 재단측은 현직 총장인 김씨를 밀어내버리고 말았다. 당시 득표수가 공개되지 않아 학내에서 상당한 물의를 일으켰는데 현재 교수들 사이에서도 득표순의에 대한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건대 관계자들은 89년부터 91년 사이의 부정을 먼저 언론과 검찰에 제보한 것은 유이사장측이고 88년 당시의 부정사실을 나중에 제보한 것은 김전총장측이 아닐까 보고 있다. 결국 파벌싸움 끝에 서로의 치부를 까발리게 되었다는 얘기다.

 건대사건은 양 파벌의 추악한 싸움을 보다 못한 제3의 세력이 터뜨렸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88년의 비리를〈ㄷ일보〉에 제보해 투서자가 아닐까 하는 의혹을 샀던 전 총학생회장 강영진씨는 9일 총학생회 주최로 연린 공청회에 나와 “나도 제보를 받고〈ㄷ일보〉에 알려줬을 뿐이다. 그같은 사실을 알고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투서자일 것이 분명한 내게 제보를 한 사람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강씨는 “기부금이 제대로 학사를 위해서만 쓰여졌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부금이 여기서는 밝힐 수 없는 추악한 용도로 유용됐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양심상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작년 충주 캠퍼스에 신설된 러시아어과에는 1년이 넘도록 전임교수 한명 없다. 이런 학교 현실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했다”고 밝혔다.

총학생회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결국 건대사건은 파벌싸움 때문이든 아니든간에 학내문제가 발단이 돼 폭로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가에서 이번 사건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 있지 않은가 하고 의심하는 까닭은 우선 교육부의 석연치 않은 태도 때문이다. 교육부의 그간 행적을 살펴보면 적어도 2차감사에 착수하기 이전인 6월28일까지는 건국대의 부정사실을 어떻게든 덮어주려고 했던 것 같다. 교육부는 건대 내부에서 입시부정 의혹의 제기된 뒤 3개월여가 지난 후에야 1차감사를 실시했으며 감사에서 부정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공표를 미뤘었다. 그러던 것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후 상황은 급진전돼 재단이사장 등 6명이 구속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건국대 총학생회장 강국형군은 “건대사건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강운은 “건대사건을 덮어주려고 했던 정부는 전대협 대표인 성군과 박양이 베를린에 도착한 때인 6월28일 그동안의 태도를 갑자기 바꾸었다. 이 사건을 전대협과, 전대협이 중심이 되어 돼 펼치고 있는 통일운동의 이미지를 흐려놓기 위해 이용하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스스로 가려줘왔던 비밀을 새삼스럽게 들춰내 야던법석을 떨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물론 비리를 일삼아온 재단을 두둔하기 위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기여입학제 얘기가 교육부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색안경을 Tm고 본다. 건대 총학생회의 한 간부는 “교육부가 정부의 압력으로 사학재단에 대해 어쩔수 없이 매을 들긴 들었으나 어떻게든 보상을 해주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러니까 교육부의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기여입학제를 재검토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건대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지반 특수부 문세영 검사는 “이 사건에 대해 상부로부터 어떤 지시도 받은 바 없다. 그동안 들어온 투서에 범죄사실이 워낙 정확하게 적시돼 있어 수사를 시작한 것뿐이다”라고 얘기했다. 또 교육부 신승찬 감사관은 “교육부가 청와대에ㅔ보고를 한 뒤 상황이 달라졌다고들 얘기하는데 3년간 감사관으로 있으면서 감사 사실을 다른 기관에 보고한 적이 없다. 건대사건도 무슨 지시나 민원 때문이 아니라 정기감사를 실시 할 때가 돼서 조사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이나 당국 관계자의 말 중 어떤 것이 옳은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현저하게 다르다는 데 있다. 정부가 무슨 발표를 하던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이면을 캐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게 습관처럼 돼버린 게 우리 교육의 현실인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학이 심각한 재정난 속에서 올바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비리로 연명하고 있는 것도 교육 당국자와 학생 · 교수 등이 모두 모래알처럼 흩어져 서로 믿지 못하는 까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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