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補選…유권자 냉담
  • 점촌·조용준 기자 ()
  • 승인 199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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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촌시의회 전국 첫 보궐선거…또 과열·타락 조짐에 시민은 “부끄러울 뿐”

  대구에서 북동쪽으로 약 2시간 거리 남짓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경북 점촌시에는 때늦은 선거바람이 불고 있다. 출마자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거리마다 나붙어 있고 선관위의 선거준비도 한창이다. 이곳 점촌에서는 이달 30일 시의회 의원 보궐선거가 실시된다.

  지난 4월 15일 개원식을 가진 점촌시의회는 개원한 지 불과 넉달반만에 시의원을 다시 뽑아야 하는 ‘불명예’를 얻었다.

  점촌시의회는 지난 5월 14일 黃宇洪(53) 당시 시의회의장을 비롯, 李圭寅(48) 金榮煥(41) 白龍基(40)씨 등 시의원 4명이 구속되는 사태로 인해 시의회 기능이 전면 마비된 것이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이들을 의장직 선출을 둘러싼 뇌물공여 및 수수혐의로 구속했고, 대구지법 형사3부는 7월 17일 선거공판에서 이들에게 3년에서 1년6개월씩의 실형을 선고했다.

  점촌시가 보궐선거를 치르기까지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시관계자들과 이 지역 국회의원인 申榮國 의원(48·민자당)은 시의회 정상화를 위해 구속된 4명에게 지난 6월부터 의원직 사퇴를 종용했다. 황우홍 전 의장은 7월5일 의원직 사퇴를 했으나 나머지 3명의 의원은 사퇴를 계속 거부,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들 3명은 7월17일의 1심 선거공판에서 실형이 내려지자 가족들을 통해 7월 19일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고, 이로써 보궐선거를 통한 점촌시의회 정상화가 본격적으로 모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국 최초의 시의원 보궐선거를 지켜보는 점촌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점촌시민들은 자신들의 고장에서 이토록 불명예스러운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한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인상이었다.

  지역주민 남홍희씨(36·점촌시 홍덕동)는 “한마디로 점촌의 수치다. 그런 시의원이 나올 정도면 돈도 그만큼 썼을 것이다. 다들 상당한 재력가였는데 결국 본전 생각이 나서 그런 돈을 주고 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점촌 청년회의소(JC) 직원 정연희씨(23)도 “점촌시민으로서 우선 부끄럽다. 개인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려다 보니 그런 일이 생겼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돈이 오간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궐선거가 실시된다고 하지만 투표할 생각이 별로 없다. 다른 주민들의 의견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점촌시는 지난 13대 총선에서 안동시를 제외하고 경북지역에서 유일하게 당시 통일 민주당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곳이다. 신영국 의원은 “13대 총선 이후 한동안 다른 도시 사람들이 점촌서 왔다고 하면 공짜로 술을 권한다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다. 그런데 이유야 어떻든 점촌시의회가 일시적이나마 문을 닫게 돼 지역 이미지가 구겨졌다”고 침체된 분위기를 설명했다. 신의원은 또 “광역의회 선거를 치르기 전에 여러 사람이 돈뭉치를 싸들고 찾아와 공천을 달라고 했지만 다 물리치고 공개 경선을 통해 후보를 내놓았다”면서 “공개 경선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런 일이 벌어져 올라갔던 점수 다 까먹었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점촌시는 보궐선거의 최대 목표를 ‘깨끗하고 조용한 선거’로 잡고 있다. 점촌시청의 如光彦 공보계장(47)은 “점촌시민들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최대한 깨끗하고 조용한 선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영국 의원도 “시의원들의 자격요건 중에서 도덕성과 가치관이 제일 중요하다는 점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작업을 통해 공명선거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과는 달리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선거에 대한 불신감이 다시 팽배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번 선거에서 낙선, 이번에 재출마한 ㄱ후보는 “보궐선거 자체가 불미스런 부산물인데 이번 선거 역시 불미스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만 많아서 뭐라 말하고 싶지 않다”고 선거에 대한 극도의 불만을 표출했다. 이 후보는 “관계기관 책임자에게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다. 벌써부터 부정행위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늘 반복되는 양상이다. 보궐선거이기에 공명선거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나, 부정행위가 재현되는 것을 보고 이런 기대가 다 무너졌다. 다시 출마한 사실 자체를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연희씨도 “벌써부터 과열되는 조짐이 보이는 게 우려스럽기만 하다. 나오는 사람마다 지역에 봉사한다고 하는데 굳이 시의원이 돼야만 지역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려면 차라리 단일후보를 내서 과열 타락을 막고 조용히 끝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점촌시 보권선거가 별 잡음없이 끝맺게 될 것인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 17일 최종후보등록 결과 10명의 후보가 등록,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도 과열 선거를 부추기는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4개 선거구 중 중앙동만이 무투표당선자를 냈고 나머지 3개 선거구에서는 9명의 후보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1개구 무투표당선. 3개구 9명 후보 경쟁
  이에 따라 남아 있는 3명의 시의원들에게는 난립한 출마자 조정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朴興起 부의장(50)은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이 있듯 시민들의 의식이 보다 성숙해지고 있으므로 사전 조정에 의한 단일후보를 내는 데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점촌시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근 지역에서 인구가 유입되는 소위 ‘붐 타운’이었다. 동야 최대의 흑연광산을 가진 광산촌이 발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광산업이 사양화되면서 폐광이 속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관계자는 “13대 총선 당시보다 유권자수가 1만명 이상 줄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점촌시는 산업기지 개발 등 산업도시로서의 새 면모를 시급히 갖춰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런 단계에서 시의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 크다. 시 발전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것도 시의회가 해야 될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경기도에서 경북 구미까지 연결되는 중부내륙 고속도로가 점촌시를 지나가도록 하는 것도 절실한 과제다. 그러나 현재의 점촌시의회는 택지개발사업과 추경예산 확정, 지방채 발행 등 시급한 시정업무도 추진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박홍기 부의장은 “시의회가 바로 이런 과제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효율적인 협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제 겨우 지자제의 씨가 뿌려진 상태다. 지방의회가 자체적으로 영양분을 빨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잎이 자랄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주듯 시민들의 지자제 부리를 가꾸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앞으로는 지방의회의 경쟁시대가 될 것이다. 유능한 의회를 가지고 있는 시는 좀더 빨리 발전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시는 퇴보하게 마련이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책임이 더욱 무거워진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선거가 두렵게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점촌시의 ‘불명예’는 비단 점촌시에만 국한된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양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의장직 선출을 둘러싼 소동은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지방 행정관서에서 “청탁부터 배운다”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처럼 일부 지방의회 의원들이 ‘민원 청탁 대변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점촌시 보궐선거는 지자제 부활 원년을 맞은 모든 지방의회 관계자들에게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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