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韓정책 변화 없을 듯”
  • 정리·한종호 기자 ()
  • 승인 199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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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기·하용출 교수 긴급 대담 “남북한 문제에 태도 바꿀 이유 없어”

  하용출(서울대 교수·소련정치) : 페레스트로이카가 최소한 엘리트그룹에서는 합의를 이룬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이번 사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번 사태의 배경은 우선 그동안의 개혁과정에서 개혁 및 진보세력의 규합이 지리멸렬했고 특히 사회세력과의 연계가 지체되었다는 데 있다고 본다. 또 연방의 위기도 있다. 민주파가 공화국에만 치중하고 연방 차원의 일이 지연되면서 현실적 힘을 가진 군부가 위협을 받아왔다. 무엇보다도 핵심은 경제위기에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은 고르비정권을 외면하게 됐고 개혁·보수의 줄다리기에서 개혁파마저 고르비를 떠남에 따라 고르비정권은 그 기반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김부기(외교안보연구원 교수·소련정치) : 장기적으론 과도적 진통일 수 있지만 단기적으론 경제난국·연방분열 등의 상황에서 소련국민이 강력한 지도력을 희구하는 측면이 많다. 비상조치 주도세력의 발표를 보면 비상사태를 통해 국내상황을 안정시키고 그 기초 위에서 신중한 개혁을 추구할 듯하다. 이는 국민의 안정희구 분위기와 상당 정도 조화되는 쪽으로 갈 수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국민이 비상사태를 통한 강경파의 ‘안정 속의 개혁’노선을 수동적이나마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 : 이번 사태의 배경과 함께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성공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브레즈네프 시대의 경제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경제적 혼란과 불안으로 인한 현실적·감정적 차원의 지지세력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는 강경파의 사회적 기반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조직화된 세력이냐 하는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옐친의 등장을 보면 개혁지향의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양대 세력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느냐가 소련정치의 장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당분간 양대세력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개혁세력이 비무장이긴 하지만 상당히 조직화되어 있다. 또 고르비가 전혀 군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도 아닐테고 공화국의 동향이나 국제적 여론도 변수이다. 따라서 이번 쿠데타 주도세력이 안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연 그들이 얼마나 설득력있는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겠는가.

  : 권력엘리트가 강력한 합의를 갖고 있느냐도 이번 사태를 결정짓는 요인이다. 역사적으로 지도부가 단결되어 있을 때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성공한 예가 없다. 천안문사태도 마찬가지다. 지금 소련의 군·경찰·관료조직은 현재의 위기상황에 대한 강력한 합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반대편의 저항이 쉽게 대규모로 조직화되어 통제불능의 상태로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현상이 일어나도 강제력을 동원, 분쇄할 것으로 본다. 동시에 강경파도 성장을 위한 시장경제의 도입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스탈린식 경제가 더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진하게있다. 따라서 “개혁은 계속 될 것”이라는 강경파의 주장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군부를 보면 중국정치가 개인적 관계를 중심으로 한 파벌정치임에 비해 소련은 브레즈네프 시대 이래 합리적 인사정책이 정착되어 있다. 따라서 고르비의 개인적 통제가 약하기 때문에 권력엘리트가 고르비와 다른 견해에 합의를 이루고 있다면 이들이 반기를 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일부에서는 내전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소련같은 엄청난 핵보유국에서 내전은 세계안보 차원에서 상상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이다. 오히려 이점이 권력엘리트의 단결을 강요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하 : 중국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본다. 중국에는 정치적 민주화가 안되어 있다. 그러나 소련에는 대중선거에 의한 대통령이 있고 일정한 절차에 따라 연방이 통제되고 있다. 서방 각국이 옐친의 지원 요청을 천안문 시위대의 호소처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연방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85년 이후 군조직도 많이 문란해졌다. 장교그룹과 사병그룹의, 각 공화국간의 이질성도 크다. 또 서방과의 경제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서방쪽과 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상당히 불안정한 요인이 많다. 당위적으로는 서방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서방 각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이한 반응을 보일 것 같다. 독일은 자제하는 모습이지만 영국이나 미국은 강경하다. 소련의 대외정책에서는 외교적 수축은 있겠지만 정책 자체의 방향전환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군축·경제협력 등이 다소 지연될 가능성은 있다. 소련은 항상 국내정치와는 무관하게 실리주의적 대외정책을 고수해왔다. 중국도 천안문사태 때 외교정책 자체를 바꾸지는 않았다.

  김 : 강경파와 개혁파 사이에 대외정책에 관한 심각한 이견은 없었다. 따라서 비상정부의 목적이 국내사태의 안정에 있기 때문에 강경파가 정권을 잡았다 해서 외교정책이 급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삼스럽게 팽창주의로 나설 여력도 없고, 미국을 ‘계급의 적’으로 생각하는 국민도 없다.

  하 : 소련은 기존의 전세계적 영향력을 상실한 상태이다. 소련이 남북한 문제에 대해 태도를 바꿀 이유도 없다. 남북한의 현 상황에 큰 변화요인은 없다. 강경파도 북한의 변화를 바라고 있다. 다만 지역적으로 군축 및 미·소관계가 지연될 가능성은 있다. 이에 따라 간접적 영향은 받게 될 것이다. 소련이 한반도 문제에서 완전한 당사자는 아니다. 소련 국내정치가 변했다고 해서 너무 경직된 눈으로 바라보거나 남부한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볼 필요는 없다. 북한은 애초에 정치적 개방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번 일로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개방은 오히려 빨라질 수 있다. 남북한관계도 큰 영향 없이 기존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문제는 남북한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특히 보수파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이들이 ‘소련의 군국주의화’를 들먹이며 최근의 군축 및 핵문제에 관한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자고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관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김 : 북방 3각관계에 끼치는 영향을 보면, 그간 소련의 민주화는 중국 및 북한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어왔다. 그런데 강경파는 ‘민주화=연방해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로 민주화가 일정 정도 후퇴하면서 중국 및 북한과의 관계가 호전될 듯하다. 북한도 자신의 체제에 자신감을 가질 것이며 “고르비의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할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추구해온 현실주의로의 전환을 보다 자신감을 갖고 추진할 심리적 기반을 갖게 됐다. 또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미·일과의 협력도 모색해나갈 것이다. 그간 개혁파는 북한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농후했는데 비해 강경파는 북한에 배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강경파 정부가 북한에 좀더 우호적인 입장을 보일 수도 있다. 한국이 소련에 대한 정책을 갑자기 바꿀 이유는 없다. 우리의 대소정책은 정치적 동기가 크지만 소련의 대한정책에는 경제적 동기가 크다. 이는 소련의 권력변동과는 무관한 것이다. 따라서 소련의 대한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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