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통합 아니면 연합으로
  • 박권상(편집고문) ()
  • 승인 199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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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는 야권통합을 원하는가. 평화적 정권교체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의회민주주의의 멋이요, 힘이 아닌가. 이땅에 의회민주주의가 태어난 지 40년이 넘었는데 불행히 단 한번도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정권교체가 없었다. 그대신 탄압과 저항 학생봉기 시민봉기 군사쿠데타 암살 유배 등으로 얼룩진 권력쟁탈의 부끄러운 역사가 있었을 뿐이다. 서로 경륜과 정책을 내놓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선수들의 팀을 내세워 선거라는 이름의 게임이 벌어지고, 마치 야구시합에서처럼 공격과 수비가 교체되고 승자와 패자가 뒤바뀌는 그런 정치가 구현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정치가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멋있을까. 그러나 강력하고 건전한 야당없이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민주주의의 꿈은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왜, 우리는 야권통합을 원하는가. 그것이야말로 억강부약, 권력의 부패와 독주를 막고 국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국민의 복지를 증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비대해질수록 자만해지고 남용을 하게 마련이고 부패로 이어진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권력이 스스로 위축되거나 물러가는 법은 없다. 강한 힘에 의해서만 견제될 뿐이다. 역시 강력하고 건전한 야당없이 권력독주에 제동을 걸 방법이 없다.

야권통합은 동서화합의 길. 남북통일의 원동력
  왜, 우리는 야권통합을 원하는가. 그것이 오늘의 지역 분열주의를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남북통일에의 길을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은 본질적으로 군사독재의 산물이고 유물이다. 전에 없던 망국지병이다. 5·16 군사쿠데타 전 호남사람을 영남에서, 영남사람을 호남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킨 국민의 아량과 지혜가 어디로 갔는가. 군정을 청산하고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 6공인데도 3당합당으로 지역감정은 더욱 심화되고 말았다. 그러나 야권통합은 성질상 지역 간 감정의 벽을 무너뜨리는 민족의 대역사이고 보면, 그것이 곧 동서화합의 길이요, 나아가서는 남북통일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역시 강력하고 건전한 야당의 출현만이 민족화해의 길을 촉진할 수 있다.

  이렇듯 야권통합의 대의는 선명하고 그 효과는 절대적이다. 야권을 지지하는 국민뿐 아니라 진정으로 나라의 안정과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한테 뉘앙스의 차이는 있겠으나, 야권의 통합이야말로 공통된 염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야권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들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너무나 명백하고 절박한 과제이다. 당장 6개월 후에 있을 총선거에 야권통합 이상으로 절대절명의 승부수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먹구름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골이 깊은 당파적인 이기심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어느 특정인을 명년말 대통령선거의 대통령후보로 전제하느냐 안하느냐의 감정적 싸움이다. 이 문제에 관해 이른바 지역적 정서를 내거는 사람들이 있다. 감정의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있겠으나 이성의 목소리는 아니다. 더구나 정치지도자들이야말로 이성적으로 잘잘못을 가려야지 군사독재가 조장한 지역감정에 편승하여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역사와 민족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요, 야권통합은 처음부터 거론 안하는 것이 옳다. 그 결과는 ‘만년야당’의 설움을 감수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이 시점에서는 대통령선거에 나설 후보를 염두에 두지 말고 접어두는 것이다. 합의제 당운영이 보장되는 순수집단체제로 일단 통합하는 것이요, 통합된 힘을 모아 총선거에 임하는 것이다. 만일 야권이 통합, 전국적으로 단일후보를 내세운다면 누가 민자당의 압승을 호언장담할 것인가. 대권후보는 총선 후 새로 형성된 새 정세하에서 조정하면 된다. 이렇듯 대권후보라는 걸림돌만 없다면, 신민당과 민주당이 따로 담을 쌓아야 할 이유가 없다. 국회위원들의 선거구가 전혀 경합되지 않고, 이데올로기나 시국관이 대동소이한 이상 통합이 안될 이유가 없다. 수도권에서 일부 경합지역을 조정하면 되는 것,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정말 ‘死則生’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통합 어렵다면 연합공천만은 성취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통합이 어렵다면 야당끼리 싸우지 말고 연합공천만은 성취하여야 하고, 그것만으로도 다음 선거는 해볼 만한 싸움이다. 역시 영호남에서의 단일후보선정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겠고, 기타지역에서는 광역선거시의 특표율을 감안한다면 연합공천은 어려울 것이 없다.

  프랑스는 분열주의적인 정치문화인데도 86년 세계관이 다른 좌우가 코아비타숑(동거)정권을 세운 일이 있다. 여당의 미테랑 대통령은 좌파였고 야당의 시라크 총리는 우파 총재였다. 시라크 총리 정부는 다시 그의 드골파(1백49석)와 프랑스민주연합(1백27석) 및 우파 무소석(14석)의 연립이었는데, 지스카르데스탱이 이끄는 프랑스민주연합은 다시 인민공화당 사회민주당 급진사회당 및 기타 유력인사들의 연합체였다.

  뜻이 안맞고 ‘정서’가 달라 딴 살림을 고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자. 그러나 프랑스 우파 야당연합처럼 연합공천으로 선거에 이기고, 뭉친 힘으로 좌파 대통령으로부터 실질적으로 정권을 빼앗은 정치의 지혜, 우리 야당사람들에게 소중한 타산지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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