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에 목타는 소련경제
  • (국제민간경제협의회 전문위원) ()
  • 승인 1990.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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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물가폭 등 ‘통과의례’… 서방세계 도움이 개혁성패 좌우

1989년도 소련 국민총생산은 9천13억루블을 기록, 88년 대비 3% 성장을 달성했다. 그러나 연 1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한다면 실질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업생산은 전년 대비 1.7%, 소비재 생산은 5.9% 각각 증가하였으나 소비재 부족은 여전히 소련의 고질적 문제로 남아 있다. 또 재정적자는 9백억루블로 국내총생산의 10~11%에 달했다.

 금년 들어서도 지난 1/4분기까지 국민총생산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 국민소득은 2%, 노동생산성은 2.2% 각각 감소했다. 소비재 부문의 인플레율은 유로서비스 가격의 상승과 유효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소비재 부족으로 인해 약 8%에 달했다.

 이처럼 소련경제의 전반적인 침체상태는 소련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위기와 함께 당분가 해소될 조짐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소련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경제위기는 스탈린식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체제와 그에 의해 잘못 해석된 도그마적 사회주의 경제원리, 그리고 새롭게 형성된 정치·경제적 특권 계층의 존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앙집권 계획경제 근본적으로 극복
 스탈린은 30년대 이후 강력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동시에 서구 자본주의로부터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농업보다는 중공업에, 특히 소비재보다는 금속·화학 등 생산재 생산부문과 방위산업에 우선을 둔 산업화사회를 추구하였다. 또 농민들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 부르조아 색채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 이를 일소하는 방안으로 농업의 집단화를 무차별적으로 시도함으로서 농민들을 농업노동자로 전환시켰다.

 가격은 생산에 투입된 비용이 아닌 투입노동량에 따라 결정되도록 했다. 그로 인해 원자재 가격의 상승에 따른 정상적인 가격인상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잉여의 착취를 막을 수 있는 노동가치설에 입각한 가격형성체계하에서 가격이 상승한다면 그같은 경제에 효율성이 없는 것이 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생산은 유효수요에 맞추기보다는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는 범위에서 이루어졌고,‘보이지 않는 손'보다는 계획이라는 틀 속에서 조정되게끔 하였다. 이는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낭비를 막는다는 이점은 있었으나 경쟁이라는 개념을 경제로부터 제거하는 1차적 요인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모두 국가가 보조금으로 해결하였다. 노동가치설에 따라 모든 인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했으며 이에 따라 공식적으로 실업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최근 리슈코프 총리가 제시한 5개년 경제계획안은 바로 이같이 스탈린에 의해 오도돼온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주요내용은 다음 여섯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정부는 앞으로 시장관계의 발전과 기반형성에 필요한 조정자로서 축소된 역할만을 수행한다. 둘째 사유화를 통한 소유형태의 변화를 꾀한다. 셋째 가격인상과 더불어 가격개혁을 시도한다.

실업의 증가가 정치불안 이어질까 우려
 넷째 보조금이나 비효율적인 연구시설에 대한 지출을 삭감하고 독립채산제를 강화하고, 독립적인 민간은행을 설립함으로써 재정금융정책의 과감한 전환을 추구한다. 다섯째 적자기업의 폐쇄는 물론 노동의욕을 높이기 위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다. 여섯째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정부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

 이같은 조치는 당장의 혼란을 가져왔으나 장기적으로는 꼭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개혁의 가장 중요한 작업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계속 늘어나는 재정적자의 1차적 요인이 총세출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정부 보조금임을 감안한다면 보조금 지급 중단은 재정적자의 감소를 위해 지극히 필요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경쟁메커니즘이 배제된 가격형성체계의 탈피는 기업의 비효율성을 제거하는 지름길이며, 독립채산제의 강화는 비경쟁적·저생산성의 부실기업을 척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개혁의 과정에서 예상되는 실업이다. 폴란드의 경우 작년말 6만명 수준이던 실업이 금년 2월에는 15만명, 4월에는 25만명으로 증대했다. 이런 추세는 더욱 심화되어 금년말까지는 1백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소비물자의 부족과 생활수준의 열악성 속에서 실업의 증대는 곧바로 정치·사회적 문제를 불러들일 염려가 있다.

풍부한 지하자원이 개혁의 안전판
 소련의 경우는 폴란드의 경우와 비교했을때 경제적으로 훨씬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소련은 폴란드가 갖지 못한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졌다. 석유·가스 등 지하자원은 바로 개혁을 추진하는 데 소요되는 외화와 교환할 수 있다. 또 식품가격의 안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식료품의 조달에서 소련은 폴란드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 고르바초프의 미국방문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연 소련국민이 이같은 어려움을 얼마만큼 더 인내할 수 있느냐이다.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리슈코프 총리가 제안한 개혁안을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설사 경제개혁안이 국민에 의해 거부되어 리슈코프 내각이 퇴진하더라도 이같은 정책은 어떠한 형태로든 수행될 수밖에 없다. 경제의 구조가 안고 있는 문제의 성격상 이같은 개혁은 언젠가는 꼭 거쳐야 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고육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련은 국제문제에 있어 앞으로 더욱 유화적인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다. 동서독 통일에도 더욱 유연한 정책을 구사할 것이 예상되며, 아시아에서도 일본이나 한국에 지금보다 더 우호적으로 접근하려 할 것이다. 현단계에서 서방세계의 도움이 없이는 개혁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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