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왜 속명 앓는다
  • 김 당 기자 ()
  • 승인 2006.04.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체장선거 유보’위헌 여부로 최대 시련… “명백한 위법 놓고 우물우물”




 6공화국 정군의 부담스러운 존재이자 몇 안되는 자랑거리 중 하나로 꼽히는 헌법재판소가 탄생 4돌을 앞두고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다. 물론 6.29 선언이라는 것이 그 주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대로 민주화선언이었는지 ‘항복’이었는지 검증하기 어려운 것처럼 헌법재판소 또한 그 탄생과정에서 보듯 6공의 공이라 주장하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맡아온 역할로 보건대 현정귄에 부담으로 기능한 것만은 사실이다.

 현생 헌법 아래에서 헌법재판소가 맨처음 행한 헌법재판은 정인봉 변호사가 청구한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의 위헌심판 (89년 1월25일 선고)이었다. 이 위헌심판에서 재판부는 국가를 상대로 하는 재산권 청구에는 가집행 선고를 할 수 없도록 한 위 법 조항 일부를 “소송 당사자를 차별하여 합리적인 이유없이 국가를 우대하는 것”이므로 “이는 평등의 원칙에 관한 헌법 제11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위헌결정했다. 요즈음 목좋은 철도역 같은 데서 집달리를 대동한 ‘일개 개인이 감히’ 마대자루에 현금을 쓸어넣고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을 볼 수 있게 된 것도 헌법재판소 덕분이다. 이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이처럼 지난 88년 9월 15일 재판부가 구성된 이후 현재까지 수행한 헌법재판은 제헌이래 제5공화국에 이르기까지 행사되었던 것과 비교할 때 질과 양에서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헌법재판소(소장 조규광 재판관)에 따르면 7월말 현재 재판소에 접수된 사건은 1천5백건(처리 1천2백건, 계속중 3백건)쯤으로 그중 위헌결정만도 30여건(인용결정 16건 제외)이나 된다.

 

“위헌도 합헌도 아닌 변형결정 남용”

 이제까지의 헌법재판 기관이 거의 장식적 기관으로 방치되었던 것에 견주면 놀랄 만한 변화이다. 헌법재판소는 이석연 연구관의 지적대로 “그동안 빈번한 개정과 더불어 헌법의 규범통제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탓으로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차원에 머무르고 있던 헌법이 이제 재판규범으로서 국민의 의식 속에 정착되어 가고 있는 단계”라고 풀이할 수 있겠다.

 이같은 변화는 늘 ‘개점휴업’이었던 과거의 헌법재판 기관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이 대조된다. 헌법재판 기관의 기본업무인 위헌법률 심판 사례를 보더라도 3공 말기까지 처리된 위헌법률심판 건수는 34건으로 이중 3건이 위헌으로 인정되었을 뿐이다. 특히 71년 대법원이 내린 국가배상법에 대한 위헌판결은 당시로서는 비상한 관심을 끌었는데 위헌쪽에 손을 든 대법관 9명이 이듬해 재임용에서 고스란히 탈락되는 사법파동으로 이어졌다. 그뒤로 유신정권과 5공에서는 단 한건의 위헌법률심판도 없었다.

 물론 “헌법을 생활규범화시키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법조계의 일반적 평가는 단순히 업무량이나 영역 확대에만 함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의 주요 결정례(헌법재판에서는 일반 재판과 달리 통상적으로 ‘판결’ 대신에 ‘결정’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특히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일 경우에는 ‘위헌결정’ 대신에 ‘인용결정’이란 용어를 쓴다)를 보더라도 헌법 재판소 △앞서의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6조에 대한 위헌결정 △필요적 보호감호를 규정한 사회보호법 제5조 1에 대한위헌결정(89년 7월14일) △국회의원 입후보자에게 차등적으로 기탁금을 적용시킨 국회의원선거법 제33조, 34조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89년 9월8일) △지방의회 의원선거법 제36조 1의 후보자 기탁금 7백만원 규정에 대한 헌법 불합치결정(91년 3월11일) △국유재산은 민법상의 시효취득 대상이 아니라는 국유재산법 제5조 2항에 대한 위헌결정(91년 5월13일) △미결수의 변호인 접견권을 제한한 행형법 제62조에 대한 위헌결정(92년 1월28일) △무소속 차별을 규정한 국회의원선거법 제55조 및 56조에 대한 조건부위헌결정(92년 3월13일) 등 헌법재판의 ‘단골 피고’인 정부 입장에서 보면 행정편의를 구속하고 국고에 막대한 손실을 끼칠 뿐만 아니라 정부의 권위를 손상하는 결정을 내려왔다.

 이처럼 헌법재판소의 결정 하나하나가 대통령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하고 그 파급효과 또한 크기 때문에 정부는 헌법재판소를 ‘눈엣가시’로 여겨 권한 축소를 통한 힘 빼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헌법불합치, 일부위헌, 한저위헌, 한정합헌 같은 앞서의 여러 결정례에서 보듯 헌법재판소가 위헌도 합헌도 아닌 듯한 애매모호한 변형결정을 남용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성에 의문이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노동쟁의조정법 제13조의 2(제3자 개입금지) 및 제45조의 2(벌칙) △이른바 ‘국가보안법의 꽃’이라고 부르는 제7조의 1(반국가단체 찬양·고무·동조) 및 5항(이적표현물 제작·배포·소지)·군사기밀보호법 제 6,7,10조 등에 대한 한정합헌결정등에서 보듯 체제유지에 결정적인 사건에 대한 어정쩡한 결정(한정합헌 남용)과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는 떳떳지 못한 결정 등으로 국민의 민주화투쟁 결과로 탄생한 헌법재판소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비난도 받았다.

 사실 헌법이 본디 정치적 타협이나 결단에 의해 결정되고 그 자체가 정치 권력구조의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와는 다른 정치적 기관으로 간주된다. 특히 현행 헌법과 헌법재판소제도는 그 탄생 과정으로 보건대 “기득권옹호 세력과 민주화추진 세력 간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는 곧 헌법재판소라는 국가기관의 구성에서도 권위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세력과 권위주의를 타파하려는 세력이 혼재함을 뜻한다. 헌법재판관의 결정례를 중심으로 재판 성향을 분석한 전북산업대 남복현 교수(법학과)의 논문〈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재판성향〉(《법과 사회》5호)은 이런 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와 같은 행태론적 접근은 특히 임명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에 따라 연방대법원이 보수 또는 진보로 나타나는 미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헌법에 따르면 헌법재판관은 국회가 선출한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한 3인을 포함하여 9인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중 조규광 소장과 김양균 최광률 재판관은 대통령 임명으로, 이시윤 김문희 이성렬(지난해 정년퇴임으로 황도연 재판관으로 교체) 재판관은 대법원장 지명으로, 그리고 나머지 변정수(평화민주당) 김진우(통일민주당) 한병채(민주정의당) 재판관은 국회선출로 임명된 경우이다. 국회에서는 정파별로 재판관을 추천하여 그대로 선출하는 것이 관례로 당시 여소야대 정국에서 신민주공화당은 추천에서 소외되었다.

 남교수는 이 논문에서 89년 1월부터 90년 12월 사이에 헌법재판소가 재판한 45건의 결정례를 분석대상으로 삼아 헌법재판소 구성에서 실질적으로 임명권을 행사한 세력의 성향과 실제로 임명된 재판관의 재판성향이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남교수에 따르면 체제유지 성향은 김양균 최광률 한병채 3명, 체제중립 성향은 조규광 이시윤 김문희 이성렬 4명, 체제개혁 성향은 변정수 김진우 2명이다. 체제중립 인물이 4명인 것은 대통령이 여소야대 국회의 동의를 받기 위해 자파 성향의 인물을 소장으로 임명하지 못하고 중립적 인물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체제반응사건은 임명권자 성향과 비슷”

 남교수는 체제 유지와 중립과 개혁의 비율이 3:4:2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위헌결정 정족수가 6인임에 비추어 “결국 체제중립적 성향인 재판관의 향배가 위헌결정 여부를 좌우한다”고 지적한다. 즉 4인의 재판관이 체제유지 입장을 옹호하면 7:2의 합헌결정이 나고 체제개혁적 입장에 서면 6:3의 위헌결정이 난다는 것이다.

 한편 남교수가 분석한 ‘재판관들의 다수의견 및 소수의견 제시 현황’ 통계를 그래프화 해도 유용한 분석들이 나온다(21쪽 그래프 참조). 다수결로 결정된 사건 중에서 다수의견(결정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보충의견 포함)에 많이 참여한 순으로 재판관을 나열하면 이성렬 18, 김문희 조규광 17, 최광률 김양균 이시윤 15, 한병채 11, 김진우 10, 변정수 8 등이다. 반대로 소수의견(2인 의견 포함)을 자주 제시한 순으로 나열하면 변정수 11, 김진우 8, 한병채 5, 이시윤 4, 김양균 조규광 3, 최광률 2, 이성렬 김문희 1등이다.

 그래프에서 보듯 국회 추천 3인은 다수의견 제시가 적고 조규광 이성렬 김문희 3인은 다수의견 참여비율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결국 뒤의 3인이 결정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

 남교수는 마지막으로 19건의 결정례를 사안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 △변형결정(한정합헌 및 헌법물합치 결정) △이른바 반민주악법(사회보호법, 노동쟁의조정법, 국가보안법) △경제질서상 우월적 지위(금융기관의 연체대출금 특조법, 국세기본법) △검사의 공소권 행사 (심판청구인의 당사자 적격 인정여부, 불기소처분 소원) △기타 등으로 나누고 이런 유형을 ‘체제반응’ 사건으로 분류해 재판관들의 재판성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체제에 반응하는지 분석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체제반응 사건에서 재판관들의 성향은 임명권자별 성향과 대체로 유사하다”는 것이 남교수의 분석이다. 우선 체제유지적 성향의 경우 한병채 재판관(56)은 국회법사위원장을 지낸 4선의원 출신으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채택하고 있는 변형결정을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해 특히 주심 사건에서도 대부분 변형결정을 선고하고 있다.

 행정법 전문가인 최광률 재판관(56)도 변형결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편인데 반민주악법, 검사 공소권 사안에서 한 재판관과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울 고검장을 지낸 김양균 재판관(55) 또한 변형결정에슨 비슷한 입장이나 반민주악법에 대해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유일한 검사 출신으로 주심사건 중 검찰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인용이 잦아 ‘친정을 괴롭히는’ 개혁적 반응을 보이는 등 초기의 체제유지에서 중립성향으로 바뀌는 듯하다.

 체제중립적 성향의 경우,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법조계의 원로인 조규광 소장(66)은 주심을 맡지 않기 때문인지 다수의견 참여비율이 매우 높다. 정년퇴임한 이성렬재판관(66)은 거의 모든 사건에서 다수의견을 따르고 있다. 법원행정처 법정국장을 지낸 김문희 재판관(55)도 체제반을 사건에서 다수의견을 거의 대변하고 있다. 민법 전문가인 이시윤 재판관(55)도 체제반응 사건에서 대체로 다수의견과 입장을 같이한다.

 

다수 동향보다 국민 기본권 지켜야

 체제개혁적 성향의 경우 변정수(62) 김진우(60) 두 재판관은 다른 재판관들과 많은 면에서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특히 변협 인권위원장 출신 변정수 재판관은 변형결정 자체를 법적인 근거가 없고 사법판단의 회피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을 들어 철저하게 부인하고 있다. 변재판관은 한정합헌은 물론 헌법불합치결정도 위헌결정과 다를 바 없다며 입법 촉구결정을 부인, 보든 사안에서 위헌 아니면 합헌 결정을 내리고 있다. 변재판관은 가장 많은 위헌의견을 낸 헌법재판소 내의 ‘야당’으로 거의 모든 체제반응사건에서 체제 개혁 성향을 나타낸다. 또 검사의 공소권 행사, 경제질서에서의 우월적 지위, 사회경제입법 등에서 일관되게 진보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김진우 재판관은 같은 개혁성향이면서도 그 편차를 달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김재판관은 체제반응 사건에서 89년 한해 동안 변재판관과 입장이 거의 같았는데 90년초 제3자 개입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심판사건 이후 많은 사건에서 뚜렷한 견해차를 드러내고 있다. 김재판관은 변재판관과 함께 변형결정제도를 부인하다가 입장을 바꿔 한정합헌 결정을 수용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결국 임명권자의 입장 변화(야당에서 여당으로)에 따라 체제반응 사건에 대한 재판성향 변화로 읽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남교수는 “현행 헌법은 헌법 재판관에 대해 연임제를 허용하고 있어 임기만료의 시기가 다가옴에 따라 이를 반영하는 듯한 결정례가 나올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는 대통령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유보에 대한 위헌 확인 헌법소원은 이제까지 헌법재판소에 청구된 사건 중에서 ‘가장 체제반응적인사건’으로 간주된다. 정인봉 변호사는 이를 “4년이 채 안된 어린나무가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닥친 큰 시련”에 비유한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9명 전원의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위법행위를 다루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껄끄럽고 힘겨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차기 대권의 향방과 직결되는 중대사안인 만큼 부담도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법행위가 너무 명백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이제까지 헌법재판소에 청구된 사건 중 ‘가장 쉬운 문제’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 헌법재판소 내부에서 일고 있는 법리해석의 차이로 포장한 ‘적극론’과 ‘신중론’의 갈등은 일부러 문제를 어렵고 꼬이게 만들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차피 판결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인데 재판을 회피하거나 時期 아니 時機를 엿본다면 헌법재판소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양대 양건 교수(헌법학)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헌법재판관들의 고민을 덜어주는 명쾌한 문제풀이가 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결코 최고의 정책적 판단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기대되는 것은 그때그때 다수의 동향이나 시류에 민감히 반응하라는 것이 아니며 보다 지속적이고 항구적이며 보편적인 가치, 곧 다수 소수를 가릴 것 없는 모든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그것이 헌법재판의 요체이다.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국민대표자들이 만든 법률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권한을 준 데는 바로 그러한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