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 ‘정답’ 미리 알았나
  • 김방희 기자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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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점표 누설, 비상식적 연구개발비 제시 등 의문투성이



 지난 8월20일 제2 이동통신 사업자 발표 기자회견 때 송언종 체신부장관은 선경그룹에 대한 특혜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궁당했다. 일반 국민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특혜를 의심케 하는 사실 중 하나는 1차 심사의 채점표가 어떻게 해서 ㅈ일보에 먼저 보도됐느냐 하는 점이다. ㅈ일보에 채점 내용이 공개되자 체신부는 부랴부랴 항목별 채점표를 공개했다.

 ㅈ일보는 그 채점표를 청남대에서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노대통령을 수행하던 기자가 우연히 팩시밀리로 보고된 채점결과문을 입수했다는 것이다. 사회 일각에서는 채점표가 노대통령에게 보고됐다는 것이 노대통령과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의 관계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동통신 제2 사업자 선정이 워낙 중요한 사안인 만큼 최고통치권자에 보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 하는 의견도 있다. 기자회견에서 송언종 체신부장관은 “어떻게 해서 언론에 먼저 보도됐는지 경위를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이동통신 사업권 획득 경쟁에 나섰다가 탈락한 기업들은 체신부의 고정한 심사에 의문을 품고 있다. 체신부는 1·2차 심사를 하면서 총 1백36개 항목에 대해 각각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하고 점수를 매겼다. 업계에서는 체신부가 사업계획서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항목별로 점수를 매긴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예컨대 연구개발 투자비율의 경우 전체 사업계획서 내용과 연관시켜 그 타당성을 점검해야지 무조건 높은 비율을 제시한 기업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심사평가위원들은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투자비율을 심사하면서 선경 코오롱 포항제철 3개 컨소시엄이 제시한 비율을 산술평균해 그 기준을 넘으면 만점을 주고, 그 이하에는 차등해서 점수를 주었다. 선경은 매출액의 18.4%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겠다고 써냈는데 10% 미만의 투자계획을 갖고 있던 기업들은 “5%도 많은데 18% 이상 투자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의아해 하고 있다. 그러면서 선경이 비상식적으로 높은 수치를 제시한 것은 높게 써낼수록 유리하다는 ‘정답’을 미리 보았기 때문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체신부는 일시 연구개발 출연금에 대해서는 상한선을 못박아 다른 그룹의 3배 이상인 1천2백억원을 써낸 포항제철이나 3분의 1에 불과한 4백억원을 써넣은 선경그룹 모두 만점을 받도록 했다.

 업계에서는 95년까지 이동통신 기기 국산화율을 95%로 하겠다는 선경의 구상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포항제철 관계자는 “국내 최고 수준의 통신기기 제조업체인 삼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음에도 90%밖에 제시하지 못했다”면서 “90%도 무리한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경쟁에 나섰던 기업들은 정부가 선경에 정책적인 배려를 많이 했다고 주장한다. 체신부는 제2 이동통신 사업자 발표시기를 6월로 잡았다가 8월로 늦추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해외 협력사를 미국 벨사우스에서 GTE로 바꾼 선경에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발표시기를 늦춘 것 같다”고 주장한다.

 지난 3월 정부가 석유정제업에 대한 자기자본지도비율을 26%로 낮춘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 줄기차게 나오고 있다. 이동통신을 추진하는 선경그룹의 유공이 자기자본지도비율을 쉽게 달성할 수 있도록 지도비율을 8.2%나 낮추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현행 여신관리 규정에 따르면 자기자본지도비율을 달성하지 못하면 신규투자를 못하도록 돼 있다.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잡음은 민자당의 정치논리로 더욱 증폭되고 있다.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후보는 선정과정의 특혜 의혹이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악재로 등장할까 봐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민자당의 朴在潤 경제특보는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문제는 비경제적인 사안이다. 사업자 선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김대표의 판단도 참모들의 건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표의 경제 브레인조차도 이동통신 문제를 ‘비경제적 사안’이라고 규정한 것은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반면 청와대는 이동통신 사업이라는 경제적 사안이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것이 불만이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정부의 경제정책엔 경제논리가 우선돼야지 정치·사회적인 논리가 앞서면 국민의 부담만 가중된다”고 말했다.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국민들은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의문을 품고 있다. 수도권 무선호출(삐삐) 사업자로 선정된 단암산업도 노대통령과 또 다른 사돈 관계라는 언론보도 이후 ‘사돈 특혜설’은 더욱 설득력 있게 먹혀들고 있다. 이같은 의혹은 어떤 정치적 판단이나 경제논리로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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