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思考 주도한다”소련언론 大變身
  • 이재원 (美클리블랜드주립대교수 · 언론학) ()
  • 승인 1990.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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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주의 · 생필품 부족 · 과다한 국방비 등 앞장서서 비판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의 소련언론은 '어항속에 갇힌 금붕어'에 비유되었다. 금붕어가 어항속에 머무는 한은 그속에서 어떻게 헤엄을 치든 자유였던 것처럼, 소련의 언론은 어항이라는 한계선을 지키면 그런대로 자유로웠다. 그들은 그러한 금붕어의 자유를 가지고 자기네 언론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반대로 서방 자본주의세계의 언론에서는 언론기관 소유주의 자유밖에 없다고 역습을 했었다.

 그와 같은 논리를 폈던 소련의 언론이 고르바초프 이후, 특히 금년 들어 과거의 주장을 삼켜버리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변신을 하고 있다. 그토록 비판하던 서방 자본주의세계의 언론을 스스로 닮아가는 변신이다. 레닌은 언론을 '이념의 무기'라고 설정하면서 언        론의 사회적 역할을 '선전원 · 선동자 · 조직책'이라고 정의했었다. 현재의 소련언론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이념의 무기'로 삼고 그의 '선전원 · 선동자 · 조직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소련언론의 변신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예로서 소련 국영텔레비전의 저녁 9시 간판 뉴스프로그램인 <브레미야>와 지성인 · 전문직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간지 《리테라투르나야 가제타》를 들 수 있다. 한국에서도 접수되고 있는 <노보스티>통신도 좋은 예이다. 《리테라투르나야 가제타》와 <노보스티>통신은 작가 · 지식인 · 전문직 요원들이 집필하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반면, <브레미야>는 30분짜리 저녁 뉴스프로그램이지만, 蘇 연방 전 역에 방영되는 유일한 뉴스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브레미야>와 《리테라투르나야 가제타》는 특히 금년에 들어서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 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및 新思考정책이 어느 정도의 변혁을 의미하는지를 실증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개혁을 의미하는 것임을 드러내보이고 있고, 그러한 개혁을 필요로 하는 소련의 실정이 어느 정도의 악화상태였는지를 폭로하고 있다. 소련의 고질적 관료주의, 나태한 노동력, 생필품 공급의 차질, 과다한 방위세 등의 이야기는 간헐적으로 들어온 뉴스였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이 자기네들의 언론에서 거리낌없이 공개되고 토론되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그러한 소련의 실상이 어떠한 변혁을 초래할 것인지에 관해서 미국의 CIA분석가들은 지금껏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백악관의 정책에 따라서 소련의 방위력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더니, CIA는 이번에는 "알았지만 발표를 하지 않았다"는 류의 구차스런 변명조차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코가 석자쯤 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동유럽과 소련의 변혁을 예견했었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9시 뉴스. 매일 한 가지씩 문제점 집중고발

 최근 <브레미야>는 매일 저녁 한 가지씩 소련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무엇이든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생활, 버스정류장에서 기약없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가 보인다. 드디어 고물차처럼 보이는 버스가 나타나서 승객을 짐짝처럼 싣고 있다. 반면 새로 구입된 신형버스는 급하지도 않은 정부부처에 우선적으로 배정된다고 개탄한다. 낡은 시내버스는 수리비가 엄청나게 커서 차라리 그 예산으로 새 차를 사는 것이 낫겠다는 평이 나온다.

 생필품이 모자란다는 프로그램은 중앙아시아의 어느 마을에 산더미처럼 방치되어 있는 사탕수수 무더기에서 시작된다. 사탕수수가 이렇게 썩어가고 있는 데도 이것의 관리담당자는 사탕수수를 그곳에 쌓아놓는 것만 자기 책임이며 이것의 수송은 다른 부서 책임이라고 말한다. 수송수단이 미비하여 이렇게 방치되고 있으며, 지난 20년내내 이런 식이었다고 태연하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설탕은 모자랄 수밖에 없고, 부족한 설탕은 모스크바지역에 우선적으로 공급된다고 설명한다.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설탕 한 봉지를 구입하기 위해서 모스크바로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냉소적인 평을 한다.

 소련작가연맹의 기관지이기도 한 《리테라투르나야 가제타》는 좀더 대담해서 종래에는 금기시되었던 제목을 아무런 제약없이 다루고있다. 자기비판도 자주 보인다. <닥터 지바고>의 저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같은 저명한 작가를 반동으로 몰아서 '사회의 적'으로 규탄하고 매장을 한 장본인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KGB(소련국가보안위원회)가 아니고 작가연맹 소속의 동료작가들이었다고 폭로하고 있다. 열성분자들의 과열충성 때문에 양심을 꺾지 않은 작가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리고서 그러한 죄를 저지른 작가들은 자숙하는 의미에서 뒤로 물러나라고 촉구하고 있다.

 서방국가들 특히 미국이 소련에 원조를 제공할 것인가라는 명제를 세우고서 자기네들끼리 토론을 하고 있다. 미국이 선도한 2차대전 직후의 '마셜 플랜'으로 서유럽이 재건의 기반을 닦았는데 그 당시 스탈린은 이념의 차이를 내세워 이 기회를 놓쳤다고 분석한다. 마셜 플랜의 수혜국에는 소련도 포함돼 있었는데, 소련이 이를 회피함으로써 동유럽 국가들마저 혜택을 입지 못했다고 한다. 그 당시 스탈린이 마셜 플랜을 수용했더라면 소련의 모습이 현재와는 같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美원조 우회적으로 요청

 그들의 진단에 의하면, 서유럽은 마셜 플랜으로 발전의 기반을 잡아 현재의 위상에 올랐고, 유럽공동체(EC)의 싹도 사실은 그때 심어졌다고 한다. 미국이 소련과 동유럽을 위하여 불원간에 '제2의 마셜 플랜'을 제공할 것인가라는 가능성을 자기네들 스스로 점검하고 있다. 미국에는 소련의 변혁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는 그룹이 있다고 보고, 그럴수록 소련은 현재의 변혁이 '진정한 변혁'이라는 것을 외부세계에 분명히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소련은 아무래도 큰 시장이니까"라는 말로써 "자본주의체제의 미국이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다분히 희망적인 견해를 펴고 있다.

  미국의 원조 혹은 개입을 우회적으로 갈구하고 있는 듯한 이러한 논리가 소련에서 일어나는 것은 반년전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현상이다. 지난달 체코의 바츨라브 하벨 대통령이 부시 美대통령을 만나서 미국이 체코보다는 소련에 도움을 주라고 부탁했던 말의 뜻이 되새겨진다. 소련은 이미 자체의 실상을 감추는 것이 무용함을 인정하고, '벌거벗은 황제'의 실상을 부끄럼없이 인정하고 있다.

 소련의 국방예산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는 토론도 자기네들끼리 전개하고 있다. 소련은 최근까지도 국방예산이 1백70억~2백억루블선이었다고 거짓숫자를 발표했었으나 89년에 와서야 당해년도의 국방예산이 7백73억루블에 달했다고 공개하였다. 이 액수는 소련 GNP의 9%에 해당하고, 미국의 6%를 상회하는 양이다. 그런데 《리테라투르나야 가제타》는 소련의 이 어마어마한 국방예산은 실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고 보아야 한다고 분석한다. 소련군은 특혜에 의한 저렴한 가격으로 무기와 군수품 구입을 하고 있으므로, 시장생산가를 미국식으로 적용하면 액수가 훨씬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련군의 군수품 허비실상도 희극적 양태라고 평한다. 국민개병제이기 때문에 징집으로 소집된 일반군이 전문기술 미비로 인해 고가의 무기들을 망가뜨리는 것이 보통 정도가 아니라고 고발한다. 미국처럼 지원에 의존한 직업군제도가 낫다는 것이다. 또한 소련군은 4백만명에 이르는데 다수는 평상시에 할 일이 없어서 농업 · 도로공사 · 건축공사 ·철도관리에 투입되고 있다고 비꼬고 있다. 수를 줄여서 정예화한 직업군이었다면, 독일의 경비행기가 붉은 광장에 날아드는 괴현상도 없었을 것이고, 잠수함의 '가라앉는 버릇‘도 고쳐졌을 것이며 '비행기가 난데없이 저절로 날아가는 희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고르비와 같은 운명

 미국의 주요 도시지역의 법죄율을 비웃던 소련이 이제는 소련에서도 강도 · 절도 · 창녀 · 소매치기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들은 이미 전문적인 기술을 이용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이들을 통솔하면서 불법이득을 갈취하는 상술적인 지하조직갱단(마피아)마저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미 · 소 양국간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주미 소련대사관에서 발행하고 있는 월간지 《소비에트 라이프》 2월호마저도 소련에서는 현재 알콜중독이 '병적인 상태'에 이르렀다고 자인하고 있다. 선전성이 농후하던 이 잡지가 3월호에서는 탄생 1백주년을 맞은 파스테르나크의 특집을 내고 있다.

 현재의 소련언론은 이미 어항속의 금붕어 처지는 아님이 역력하다. 그렇다고 대양을 유유히 헤엄치고 다니는 위풍이 당당한 고래의 처지로 보기에도 시간이 이르다. 왜냐하면 소련언론은 지금도 고르바초프의 정책이라는 한계선 이내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소련언론의 진로는 고르바초프와 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소련언론은 디즈니랜드의 실내 풀에서 사람들의 귀여움을 끄는 돌고래 정도에 비견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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