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의 ‘통일교’ 特需
  • 오민수 기자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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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인 합동결혼에 3백명이 취재 아우성 “종교에 이용당하나?”



 통일교 3만쌍 합동결혼식은, 국내 언론에 서울시내 호텔 객실이 동이나고 항공 예약이 꽉 찼다는 정도로 비쳤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무관심에 비해 일본 언론에서는 통일교 합동결혼식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인기가수 겸 배우인 사쿠라다 준코(34)와 전일본체조선수권 개인종합에서 다섯 번 연속 우승하고 현재는 탤런트로 활약하는 신체조의 여왕 야마자키 히로코(32)가 여기에 참가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 일본 기자는 “각 방송사의 주부 대상 프로그램인 아침 뉴스쇼에서 통일교 메뉴가 빠지면 시청률이 뚝 떨어질 정도”라고 말한다. 이번 합동결혼식은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 온 일본 기자는 1백60여명, 여기에 한국 주재 특파원과 보조인력까지 합하면 그 수는 3백명에 이른다. <산케이신문>은 일본 언론의 합동결혼식 보도 경쟁에 대해 ‘報道 戰爭’(보도전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합동결혼식을 취재하는 일본 언론의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지난 8월 23일 3시 25분 대한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야마자키 히로코가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청사는 고함과 욕설이 오가는 수라장으로 변했다. 일본 사진기자들이 서로 좋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으려 몸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장에서도 모든 질의 응답은 일본말로 이루어졌다. 취재가 일본 언론 위주로 진행되자 “여기가 한국이지 일본이냐”는 한국 기자들의 불평이 터져 나왔지만 곧 소음 속에 묻혀버렸다.

 5시10분 아시아나항공편으로 도착한 사쿠라다 준코에게도 일본 언론 중심의 취재는 계속됐다. 한국 기자들의 격렬한 항의 때문에 일본의 방송사·신문 잡지·한국 언론 순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서울 도심 한복판에선 때아닌 일본인들 간의 대추격전이 벌어졌다.

김포공항서 여의도까지 대추격전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사쿠라다 준코가 통일교측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황급히 궁항을 빠져나가자, 10여대의 일본 보도차량이 뒤를 쫓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김포공항에서 올림픽대로를 빠져 여의도·양화대교·용산·마포·서울역·남대문·남산·원효로에서 다시 용산·여의도로 이어진 추격전을 두시간 반 만인 8시50분에 끝났다. 사쿠라다 준코를 태운 차는 과속에 차선위반과 추월, 심지어 중앙선을 넘어 반대차선으로 달아나면서까지 보도진을 따돌리려 했지만, 사고를 무릅쓰고 쫓아오는 일본 기자들의 극성에 손을 들고 말았다.

 사쿠라다 준코는 여의도의 라이프 오피스텔 403호로 들어갔고 일본 기자들은 이 오피스텔 주변을 맴돌다 밤 9시 30분에 철수했다. 결국 사쿠라다 준코는 일본 기자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예정된 호텔로 갈 수 있었다. 이날 끝까지 현장에 남아있었던 《주간현대》의 다이스케 곤도 기자는 “모든 일본 언론이 덤벼들었기 때문에 보도 내용에 따라 판매부수가 좌우된다”면서 특종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일본 언론의 통일교 보도 열풍은 6월25일 발매된 주간지 《週刊文春》의 특종 기자에서 비롯됐다. 당시《週刊文春》은 ‘신체조 여왕 야마자키 히로코가 서울의 집단결혼에 참가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고, 각 언론사는 발칵 뒤집혔다. 이후 일본 언론은 온통 야마자키 히로코 이외에 누가 또 합동결혼식에 참석하며, 그들의 배우자는 누가 될 것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처럼 통일교 합동결혼식에 대한 보도 경쟁이 치열해지자 일본 언론 내에서는 “통일교회가 합동결혼식을 이용해 언론홍보를 하는 게 아니냐”하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왔다. 일본 통일교 전문가 아리타 요시후씨는 “《週刊文春》이 특종 기사를 낸 후 각 언론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자, 처음에는 일본 통일교회 간부들도 당황했다. 그러나 곧 상황을 역이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즉 일본 통일교회가 문선명 교주에게 이미 언론에 공개된 야마자키 히로코에 대한 보고를 하자 문교주가 오히려 “이제부터 매스컴을 끌어들여라”라고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일본 통일교회는 7월 이후 보도통제를 하기 시작했다. 통일교측은 도쿄방송(TBS)이 8월3일 아침 프로인 <모닝 아이>에서 합동결혼식과 관련해 전 통일교신자의 의견을 방영하자 정정보도를 요구했고, 도쿄방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취재 거부를 결정했다. 통일교측으로부터 모든 취재 과정에서 내몰린 도쿄방송은 합동결혼식 당일 MBC미디어택과 CBS의 도움을 받아 겨우 방송을 내보낼 수 있었다.

 도쿄방송에 대한 취재 거부를 지켜본 일본 언론은 가능한 한 통일교측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산케이신문> 미디어 보도부 가와무라 다츠야 기자는 “일본의 각 언론사들은 정보를 빨리 알아내기 위해 통일교 비판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각 언론사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통일교를 취재했다. 아마 단계적으로 보도하겠다는 계산인 것 같다”고 말한다. 적어도 합동결혼식 이후에나 통일교 내부를 파헤치는 기사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이다.

 아리타 요시후씨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 통일교회는 두 가지 통로를 거쳐 언론 플레이를 했다고 한다. 즉 일본 통일교회 홍보부와 <세계일보>의 한 기자를 통해 정보를 흘려 “언론이 통일교 장단에 춤을 추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일부 언론인들은 이번 통일교 취재 경쟁을 두고 “정보를 얻기 위해 언론인의 특정 종교에 무릎을 꿇은 모양”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일본 언론이 통일교에 유리한 기사만 내보냈던 것은 아니다. 통일교를 비판하는 기사도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일본의 방송 담당 평론가 아오키 아키라씨는 “현재 분위기에서는 비판보도 역시 통일교측의 홍보 전략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유명 여성을 내세운 통일교의 세력 과시 전략에 일본 언론이 톡톡히 한 몫을 담당했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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