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때문에 폭음하게 됐다”
  • 허광준 기자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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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鍾仁 변호사 “국가원수의 위법행위로 정신적 피해” 위자료 청구 소송



 피고 노태우.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 원고 임종인.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 朴鍾仁씨(37)가 지난 6월13일 서울민사지방법원에 낸 민사소송 소장의 피고는 노태우 대통령으로 되어 있다. 소송 취지는 1천만원의 위자료를 요구하는 손해배상 청구.

 임씨는 지방자치단체장선거가 연기되고 노대통령이 선거 공고 법정 시한인 6월12일까지 공고를 하지 않자 이로 인해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그는 소장에서 “대한민국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모든 국민이 법률을 지키고 따르기 때문이며, 법을 어길 경우 누구나 사법부의 제재를 받는다. 그러나 피고는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헌법(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고 이를 준수한다고 국민 앞에 선서해놓고도 국민의 대표가 정한 법을 일방적으로 어겼다. 이로 인해 원고는 가치관·인생관까지 흔들리는 혼동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7월28일 서울민사지법에서 처음 열린 재판에서 임씨의 소송대리인 千正培 변호사와 李德雨 변호사는 피고측 소송대리인 許正勳 변호사와 한차례 공방을 벌였다. 임씨측이 제출한 피고의 위법행위 증거는 대통령 연두기자회견문이 게재된 지난 1월10일자 신문기사였다. 여기에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으로 1~2년 연기하겠다는 대통령의 발표가 실려 있다.

 피고측 허변호사는 답변서에서 단체장선거 연기는 대통령의 ‘통치행위’이므로 법원에서 그 위법성을 판단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즉 92년 한해동안 국회의원선거·대통령선거와 두 차례의 단체장선거까지 모두 치른다면 국민경제와 사회에 극심한 불안정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이를 부득이 연기한 것이며, 따라서 이는 대통령의 정당한 직무행위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재판은 지난 8월18일 열렸다. 이날은 원고 임씨가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해 증언할 증인으로 채택된 임씨의 동료 李基旭 변호사에 대해 증인심문이 있었다. 이변호사는 증언에서 “선거 공고시한인 6월12일이 지나도 공고가 나지 않아 사실상 단체장선거가 무산되자 임씨는 폭음을 하며 자신과 국민의 무기력함을 한탄하고 수치스러워했다”고 진술했다.

 임씨는 “나도 대통령을 본받아 법을 어기고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지 혼란스럽고, 특히 법을 해석하고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을 돕는 일이 직업인 변호사로서 앞으로 어떤 삶의 기준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시국사건의 경우 판결문 문구까지 똑같을 만큼 ‘짜여진 공식’대로 판결이 나오지만 그래도 임씨는 재판이라는 ‘법 절차’에 의미를 두고, 재판 자체에 대해 반발하는 피고들을 설득해 왔는데, 이제는 법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수치스럽고 창피한 마음뿐이라는 것이다.

 이 소송은 임씨와 소송대리인 천·이 변호사 등 세 명의 합작품이다. 이들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활동을 하다 의기투합해 지난 5월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렸다. 단체장선거 연기에 대해서도 이들은 똑같이 분노해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소송은 정치권의 공방으로만 논란이 되고 있는 단체장선거 연기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끌어내려 그 문제점을 실감나게 표출시키고 있다는 점과 국가원수가 피고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위자료 1천만원에 대해 임씨는 “국민이 겪는 좌절·혼란의 정신적 고통은 돈으로 평가할 수 없을 만큼 크지만, 손해배상은 결국 금전으로 할 수밖에 없으므로 ‘우선’ 1천만원을 청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직 선고공판은 날짜도 잡히지 않은 상태다. 임씨측은 재판 결과에 큰 기대는 걸지 않지만 법관이 헌법에 나와 있는 대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 한다면 적어도 선거 연기가 위법이라는 법적 판단은 당연히 내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이들은 소송을 제기한 이후 많은 국민들로부터 격려전화를 받고 있다고 했다.

 천변호사는 “공직자가 불법행위를 한 때에는, 비록 대통령일지라도 피해를 입은 국민에 의한 개인적 차원의 책임 추궁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도 이번 소송의 중요한 의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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