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방법원 方熙宣 판사
  • 김훈 편집위원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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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관행에 복종은 패배”




 판사의 구속영장 기각을 경찰이 무시하고 계속해서 피의자를 구금하고 있을 때. 사법권의 존재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때 그 판사는 어떻게 해야 하며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의 존엄성은 어디로 가는가. 모욕당한 판사 개인의 문제일 뿐인가. 전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方熙宣 판사 (37·光州지법 판사)는 요즘 그런 고민에 휩싸여 있다. 지난 6월, 영장을 기각했는데도 피의자를 계속 구금했던 목포 경찰서장 등 현직 경찰관 5명을 불법 감금 혐의로 고발했던 방판사는 최근 광주지법으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경찰이 청구한 2차 영장을 다시 기각시킨 그의 동료 程湧湘판사 (36)도 대구지법으로 인사 발령을 받아 목포를 떠났다. 방판사는 이 인사 발령이 보복성 부당 인사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의 신분보장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이 ‘당돌한’ 태도에 보수적인 사법부 수뇌들은 못마땅해하고 있다. 현실의 벽 앞에서 번민하는 이 젊은 判官의 논리와 사유를 직접 들어본다. 방판사는 경기고·서울법대·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 81년 사법시험(23회)에 합격한 후 인천민사지법 서울형사지법에서 근무했다.  

우선 목포경찰서 불법 구금 사건의 전말을 밝혀주시지요.

 지난 6월19일 당직 판사인 나는 목포경찰서가 신청한 김민용씨(21·목포전문대 졸업)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판사의 기각을 집행하지 않았고 기각 후에도 김씨를 계속 45시간 동안 감금했습니다. 경찰은 증거를 보완해서 2차 영장을 다시 신청했지요. 2차 영장은 내 동료인 정판사에 의해 다시 기각되었습니다. 경찰은 1차 기각과 2차 기각 사이의 이틀 동안 피의자를 불법 구금했어요.

피의자 김씨의 영장을 기각한 법리적 판단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김민용씨는 화염병 시위에 가담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피의자로, 시위 현장의 사진이 조서에 첨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위 전력이 전혀 없었고, 조직 계획 동원에 참여하지 않은 단순 가담자였습니다. 경찰은 시위 현장의 사진을 판독해서 김씨를 수배해놓고 있었지요. 김씨는 1개월 후 군에 입대하라는 입영 통지서를 이미 받은 상태였습니다. 김씨는 자신이 수배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입영하기 전에 신원을 정리하기 위하여 경찰에 자수했지요. 법관이 판단할 때 그를 구속해야 할 사유란 없었어요. 만일 법관이 ‘국익’의 입장에서 판단하더라도 그를 구속해 재판에 회부하는 것보다 군에 입영케 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그를 기어코 구속해 처벌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검찰이 판단한다면, 그가 입대한 후 군사법원에 송치한다 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당장 구속해야 할 사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2차 영장을 다시 기각한 정판사와는 이 건에 관한 협의가 있었습니까? 예를 들면 서로 행동 통일을  하자든가….

 이 사건을 판단한 나의 사유의 내용을 정판사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판사 역시 독립된 판단으로 영장을 기각한 것이지요.

2차 영장을 청구할 때 경찰은 피의자의 범죄 사실에 대해 어떤 증거를 보강했습니까?

 정판사 소관이었으므로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들은 바로는, 경찰은 2차 영장을 청구하는 조서에 피의자의 시위 현장 사진을 한 장 더 첨부했다고 합니다.

경찰이 판사의 영장 기각을 집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심정은 어땠습니까?

 기가 막혔고, 아연실색했습니다. 인신은 법관의 사법적 판단에 따라서만 구속되는 것입니다. 영장을 기각하는 것은 법관이 ‘인신’에 대하여 행하는 재판 행위이며, 그것은 가장 기초적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재판 행위입니다. 판사의 영장 기각은 그 피의자의 인신 구속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국가 의사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을 집행하지 못하겠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요.

앞으로 이 문제는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한데, 사태를 이처럼 크게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까?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바랐던 것입니다. 나는 목포경찰서 간부들을 만나 그들의 잘못을  누누이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경찰이 자체 조사를 통해 이같은 헌법 파괴 행위를 스스로 바로잡고 책임 소재를 규명해달라고 간곡히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경찰과 접촉하면서 그같은 나의 호소나 당부가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경찰이 판사의 영장 기각을 때때로 무시하는 것이 그들 내부의 오랜 관행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영장을 발부해도 경찰이 구속하지 않는 사태가 올 것 아닙니까. 나는 결국 경찰관들을 검찰에 고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발을 접수한 검찰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고발했던 경찰관 5명 중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누구도 인사 이동되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시정을 요구했던 판사 2명만이 인사 이동된 셈이지요. 검찰은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어려운 구조적·절차적 문제점을 설명해가며 나에게 양해를 구해왔습니다. 법관으로서 그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는 있었습니다. 나는 검찰지청장에게도 문제의 시정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의 지휘 감독 기관으로서의 신뢰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검찰은 순전히 상부에 제출하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했을 뿐이었지요. 검찰은 이 사건이 자기네 사법 집행 취지와는 전혀 다른 경찰의 일방적인 과오라고 나에게 설명했습니다. 검찰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려웠지요. 검찰이 경찰의 그같은 헌법 파괴 행위를 알고 있어도 편의주의나 혹은 통제 곤란 때문에 묵시적으로 방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석연치 않은점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역 사회에서 검찰·경찰·법원과 같은 가장 핵심적인 국가 기관들 사이에 큰 갈등이 빚어진 것은 사실이고, 대법원 수뇌부들도 그 점을 염려하고 있다는데….

 국가 기관의 ‘권위’는 파워게임의 대상이 아닙니다. 국가 기관의 ‘권위’는 공적 업무를 통해서 법적 정의를 구현함으로써만 확보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사법기관들은 서로 어깨동무하고 상부상조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 아니라 서로 대립하고 서로 긴장시키기 위해서 설치된 것이지요. 그 대립과 긴장이 모여서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 대립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이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기관입니까. 이같은 대립과 긴장이 없는한 우리는 ‘부패한 관행’이라는 서글픈 숙명에 영원히 복종해야 할 뿐입니다. 영장을 청구한 검사와 영장을 기각한 판사가 서로를 존중하고 두려워하면서 신뢰하는 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

목포지원장은 그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습니까?

 지원장님께 인간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지원장과 나는 연일 언성을 높이며 다투었습니다. 지원장은 내가 경찰을 고발하는 일을 만류하고 제지하려 했지요. 또 문제를 법원 상부에 보고해야하는 일의 난감함을 나에게 설명했습니다. 법원의 상충부를 구성하는 법관들도 다른 국가 기관과의 올바른 관계 설정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지원장께 말했습니다. 나는 전도된 가치에 복종할 수 없다고 말했지요. 지원장은 ‘보고의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나는 “그게 도대체 무엇이 어려운가”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결국 “인생관에 관한 결단의 문제는 지원장님께서 사는 방식에 관한 문제이며, 당신의 삶의 방식에 관한 결단을 나에게 전가하거나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전혀 쓸모없는 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법원의 수뇌부들이 이 사건에 어떻게 대처해주기를 바랐습니까?

 나는 그 선배들이, 혹은 대법원장이 나의 소행을 불편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게라도 항의해서 경찰의 잘못을 바로잡고 사법부의 권위를 회복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이 선배 혹은 사법부의 수장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의 인사 이동이 보복성 부당인사라는 점을 명백히 입증할 수 있습니까?

 우선 인사에 관한 나의 저항을 왜곡하지 말아주기를 바랍니다. 나를 서울로 못 올라가서 환장한 인간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천만부당하게 왜곡하는 것이며,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태도가 아닙니다. 목포에서 내가 보내야 할 임기는 아직 6개월 남았습니다. 나는 내 법관 동료 1백여명과 함께 지난해 2월11일자로 지방관서에 발령을 받았지요. 그 1백여명 중에서 하필 우리 두사람이 임기도 끝나기 전에 타지로 전근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물론 특례 인사도 있을 수 있지요. 그렇다면 그 특례가 불가피한 사유는 무엇인가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법원 수뇌부에 물어봐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법관 인사는 대법원장의 재량권에 속하는 사항이 아닌가요?

 기관장의 자유 재량 행위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조직을 유지하고 능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인 경우에서의 판단의 자율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배 법관들은 인사가 부당하다고 판단될 때는 사표를 제출했고, 그것이 법관 사회의 전통처럼 되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절대로 사표를 쓰지 않겠습니다. 법관의 신분보장권이 위협받을 때 사표를 제출하는 것은 또 다른 惡을 위한 수단으로 재활용되어 왔으니까요.

법원은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는 보수적인 전통이나 가치관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법의 속성은 보수적이지요. 법은 새로움을 창출하기보다는, 이미 이루어진 것들을 사후에 정리하고 규범화한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비진보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법을 운영하는 인간의 보수성까지를 의미할 수는 없지요. 보수해야 할 가치가 아닌 것에 매달리는 것은 보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守舊이거나 완고함이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수구의 심정적 기저에는 보수주의가 아니라 보신주의와 이기주의,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비겁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억압된 침묵 속의 평화는 평화가 아닙니다. 법은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법의 안정성과 법원의 보수성은 본질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법원의 수장인 대법원장의 권위를 훼손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대법원장의 권위는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법원은 독립된 국가기관으로서의 권위와 위신을 갖추어야 하고 대법원장은 그 권위의 상징적·현실적 정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권위는 사법의 이상과 사법의 제도와 그리고 현실을 서로 접근시키려는 부단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기능할 수 있는 권위라야 합니다. 우리는 공동으로 추구하는 선을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예절과 법도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그 공동의 선을 위해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권위를 극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법원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지요.

평소 법원의 인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사회의 총체적 비리 구조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법원 수뇌부들의 사위라고 해서 서열과 관계없이 아무도 납득 할 수 없는 좋은 보직을 차지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또 그러한 편파적 혜택이 한두번이 아니라 여러번 거듭되는 사태도 보았습니다. 하위 서열자들이 상위 서열자들의 희망지를 대거 차지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 동료 법관들은 그러한 사태를 내놓고 거론하지 않았지요. 많은 동료는 그같은 사태를 비판하거나 질타하기보다는, 자기 자신도 그들처럼 편애받는 그룹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법원 내부에 새로운 권부가 형성되고 있구나 하고 느낄 정도였어요. 판사들은 이런 문제를 세련되게 외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요.

헌법소원은 언제 제기할 것입니까?

 시점을 못박아서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관련 법조문을 다시 들여다보고 자료를 수집해 읽으면서 논리를 구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소원을 제기하겠습니다.

결과에 대해서 어떤 예측이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것은 개인이 이기고 지는 싸움의 문제가 아니지요. 승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현실이 개선될 수 있느냐 없느냐, 사람들에게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진정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행동은 권위에 대한 반항이나 항거가 아닙니다. 나를 불쾌하게 여기는 분들이 그 점을 잘 생각해보기 바랄 뿐입니다. 나의 소원이 기각되더라도 나는 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인으로서 혹은 직업인으로서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까?

 (웃음) 왜 그런 마음이 없겠습니까. 이번 영장기각 문제를 확대시켜오면서, 사실 내 자신의 앞날에 대한 불안이 마음 속에 자리 잡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이러는 것인가’라고 자문도 해보았지요. 처음에는 사표를 내고 조용히 물러가고 싶은 충동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또 다른 오류일 뿐이라는 것을 곧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특별히 모나거나 거친 인간이었던가를 반성도 해보았지요. 나는 그런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알 수 없는 것은, 그같은 생각을 갖는 동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非法의 지배를 견딜 수는 없습니다.

“법은 이미 이루어진 것들을 정리한다는 점에서 비진보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법을 운영하는 인간의 보수성까지 의미할 수는 없지요. 보수해야 할 가치가 없는 것에 매달리는 것은 守舊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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