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피해 갈 수 없다”
  • 정리· 조윤증 기자 ()
  • 승인 1990.04.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문가 대담/李承潤 경제팀의 정책방향과 과제

 지난 17일 단행된 개각은 무엇보다도 경제 각료들의 경기부진에 대한 문책성 경질로 특징지워질 수 있다. 특히 안정론의 경제정책을 기조로 한 趙淳부총리가 성장론으로 대표되는 李承潤 전재무장관으로 교체된 것은 기로에 서 있는 한국 경제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임에 틀림없다. 《시사저널》은 지난 21일 서울 시립대학교의 姜哲圭(경제학)교수와 대우경제연구소의 李漢久소장(경제학)의 대담을 마련, 앞으로 펼쳐질 경제정책의 향방과 과제를 짚어보았다. <편집자>

  강철규교수 : 부총리를 비롯해 재무, 상공, 동자부장관 등 경제부처 장관들이 대폭 교체되었는데 그것이 경제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겠는가 하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이번에 새로 바뀐 경제팀들의 컬러가 조순 경제팀과는 달라 안정 속에서 개혁정책을 펴기보다는 성장우선 정책을 밀고 나가지 않겠는가 생각됩니다.

  이한구소장 : 새 팀의 컬러에 대해서 속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이미 짐작하신 그런 류의 성향에는 동감합니다. 전 조순부총리팀의 경제정책 수행 방향과 프로그램에 대한 반성의 의미에서 개각이 이루어졌고 반성했다는 자체가 방향을 바꾸는 것이고 보면, 분명히 정책 방향이 바뀌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안정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방향을 바꿀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혁 뒷받침 없는 성장 오래 못가

  강 :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달말쯤 종합경기부양책이 발표된다고 하는데, 그 골격은 대강 나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장의 주체를 기업으로 보고, 기업을 지원한다는 뜻에서 금리를 내리고 투자와 수출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정책 금융지원을 한다, 조세감면 지원을 한다, 덧붙여 노사안정을 위해 노사분규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행사해서라도 강력하게 억제해야 한다등입니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조순 경제팀이 추진해왔던 토지공개념, 내년부터 실시하기로 되어 있는 금융실명제를 완화 또는 연기한다는 소위 경제개혁조치 후퇴라는 그런 내용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사실이라면 당장 기업의 채산성을 좀 좋게 하고 성장에 플러스 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장률이 예상보다 1% 정도 올라갈 수도 있겠죠. 그러나 2~3년 뒤 90년대 중반이나, 후반에 가서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지 않겠느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 이유를 몇가지 들면, 먼저 성장우선론 자체가 큰 오류에 빠져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첫째 소위 토지공개념의 확립이라든지 다시 말해 지가를 안정시키는 등 투기를 방지하는 장치 마련이라든가, 금융실명제 등 소위 안정을 위한 개혁정책의 밑받침이 없는 성장이라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토지에 대한 투기가 계속되고 금융실명제가 확립되지 않아서 차명이나 가명 등으로 주요한 거래가 이루어지면 물가를 올려 안정 기반을 해치고, 또 하나는 검은 돈이 지하에서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거래질서에 상당한 교란이 가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고쳐져야 기업이 올바르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개발과 인력개발을 위한 투자에 자금을 많이 돌릴 수 있고, 물가안정 기반 위에서 생산적인 투자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1~2년간 산업 조정을 해야 90년대 중반, 또는 후반에 8~9%의 고속 성장이 다시 한번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제2의 도약이라고나 할까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바탕이 개혁정책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후퇴시킨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점에서 성장우선론의 가장 큰 오류가 발견되는 것입니다.

 

공권력 동원한 노사안정 의미 없어

  두 번째는, 기업의 생산활동을 보호한다고 해서 임금을 억제하고 노사분규에 공권력을 동원하는 문제입니다. 근대적 노사관계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야 하는데 노사분규에 공권력을 투입하게 되면 오히려 건전한 관계 형성을 해치게 될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노사 관계가 안정될는지 모르지만 추후에는 다시 도져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임금상승 억제라는 것도 집값, 전·월세값 등 생활에 기본인 물가가 계속 오르면, 임금 몇% 올라가도 결국에는 근로자들이 승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죠. 안정의 기반없이 즉 생활이 나빠지는 상황하에서 임금억제나 공권력이 노사분규에 개입한다는 것 또한 성장우선론의 오류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개입해서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고 무역을 촉진하겠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80년대 전반에 60~70년대의 중화학부문에 편중된 투자가 야기한 모순을 해결한다고 투자 조정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가 깊숙이 개입하는 데 따른 비용이 매우 컸고, 이것이 바로 5공의 경제부문 비리 아니겠습니까? 그랬는데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또다시 정부가 나서서 기업 활동에 적극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 아니겠느냐는 생각이고, 그랬을 경우 혜택을 받는 기업은 유리하겠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이는 결국 국민들을 담보로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정부가 개입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입니다.

 

토지는 사회의 것이란 합의 도출해야

  이 : 성장정책이라는 것이 반드시 안정과 거리가 멀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입니다. 성장정책의 내용에 따라서는 오히려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겉으로는 안정을 내서는 정책이지만, 실패할 경우 안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앞뒤 안가리고 사정보지 않고 할때는 겉으로는 안정을 내걸었지만 그렇게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강교수가 지적하신 대로 새로운 팀이 생각하는 정책이 4가지 부문이라면 첫 번째 정책 방향 즉 금리를 인하해서 정책적인 금융지원을 확대해서 수출을 지원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저도 반대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장이 될지 저는 자신도 없고 그것은 큰 희생이 뒤따를 것이라는 견해에 동감합니다. 다른 방향으로 투자의 질을 개선한다든지 아니면 기업인들에게 유효 수요보다는 기대 수익률을 개선해주는 접근 방법이 낫다는 입장입니다. 두 번째, 노사분규에 대한 강경대응 문제는, 이것도 정도 문제이겠지만, 예를 들어 작년, 재작년 같이 노사분규가 질서없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정부는 무엇하느냐는 말을 들을 만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합법적 범위내에서 질서를 지켜가면서 한다면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되지만, 건전한 노사관계를 해칠 정도라든가 질서가 너무 어지러우면 개입해야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토지개념과 관련해서는 완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은 지난번 국회가 통과시킨 토지 관련 3개 법안과 공개념과는 구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난번 통과된 법이 공개념의 취지인 땅값 안정과 불로소득을 잡자는 것이라면, 과연 법안 통과가 그취지에 맞는 것인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지난번 통과된 임대차 보호법의 경우 임차인을 보호한다고 일을 저질러놓고 임차인 보호를 하지 못한 것처럼, 뜻은 좋지만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별개의 것입니다. 잘한다고 하지만 그 과정이 잘못되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토지 초과 이득세법 등은 상당히 좋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아예 소위 토지 기본법을 만들어 토지는 사회가 가지는 것이라는 합의를 빨리 만들어내야 합니다. 공연히 토지 소유자들에게 부담을 지우게 하는 것처럼 해놓고는 결국 그 부담이 토지 사용자에게 넘어가게 하는 제도는 옳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실명제 연기는 기본적으로 반대합니다. 어차피 92년부터 자본이 자유화되기 때문에 외국사람들 자본이 왔다 갔다해 무슨 장난을 칠지 모르는 판에 누가 무슨 거래를 어떻게 할지 모르게 놔둘 수 있습니까? 연기해 보았자 1년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부작용을 줄이느냐입니다. 실명제를 과격하게 해 가지고 해외로 자금이 빠져나간다든가, 실물 대체투자 쪽으로 옮겨간다거나 또 앞으로 새로 저축할 의욕을 빼앗아가고, 이에 따른 이자율의 상승 부분을 기업체는 소비자에게 또는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에게 전가시키고, 그 기업은 자기 종업원들이 임금을 깎는 수밖에 뾰족한 방법이 없는 바에야 어느 정도 준비기간을 주어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접근법이 좋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저의 생각이지요. 실명제나 공개념뿐 아니라 저축을 늘리는 보다 획기적인 대책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이와 함께 초기에는 금융이자 소득에 대한 과세를 완화시키고 상속, 증여 등 불법 자금을 견제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의 검은 돈을 찾아내고 차츰 차츰 저축 기반을 확립시키면서 금융 저축이나 배당에 대한 과세를 넓혀가는 그런 방식으로 하면 충격을 줄여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화끈하게 하려다 오히려 목적대로 가지도 못하고 두걸음 후퇴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대통령의 개혁의지 표명 필요

 강 : 지금 새 경제팀이 해야 할 것은 목적이 분명하다면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면서개혁 조치를 계속해나간다는, 다시 말해 지난번 조순 경제팀이 하려고 했던 일을 계속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을 국민에게 천명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총리선에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그런한 의지 표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을 성장우선 정책이라 한다면 우리 경제가 경기 순환적으로 보아서 작년 6월 이후 9개월간 바닥에서 기고 있는데 그 경기 침체기에 산업 조정이 겹친 특수한 경기 순환 국면이고 따라서 침체기라고 보는 것이죠. 86년, 88년엔 12.5%라는 상당한 고속 성장을 했는데 그때 주종은 대체로 단순 가공조립상품이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에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단순 저가공 조립, 예를 들어 가전 제품, 자동차 등은 90년대에도 계속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임금도 올랐고 대외 여건도 나빠져서 기술수준이 높은 주요 부품, 화학 공업제품, 각종 원자재, 주요 소재 등 한단계 높은 상품으로 빨리 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장 우선론이 이러한 조정을 오히려 지체하고 저해하지나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 :  경기부진이 산업 조정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요즈음 경기가 전자 자동차 부문은 부진한 반면, 오히려 경쟁력이 약화된 신발 섬유 등은 좋은 편입니다. 전자 자동차 부문은 지난 3년간 임금이 약 2.5배나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경공업 부분은 상대적으로 적게 올라 그 여력이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산업 조정을 빨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들어가서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기업의 책임이 크지만, 우리 기업이 우리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볼 때, 우리나라 사람, 우리 자본으로 만들어내는 경쟁력인데, 우리의 아이디어, 기술, 판매 전략 수준이 외국에 비해 분명 떨어져 있다고 봅니다. 매니저의 자질도 외국에 못미치고, 행정의 효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이 과연 최선을 다했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분명 '아니오'이지만, 그러나 기업만 최선을 다하지 않고 다른 부문이 최선을 다 했느냐라고 할 때 그역시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총공급을 개선해주는 방향이 됐으면 

  강 : 새 경제팀이 재벌 기업과 밀착되어 있어 경제력이 집중되어 있는 재벌 기업의 이익을 옹호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오히려 가중되고 더 나아가 일반 근로자나 도시 서민들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더 큰 불만이 표출되어 결과적으로 사회적 갈등이 2~3년후에는 지금보다 확대될 것이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만약 이 경제팀이 성장우선 정책만 계속 추진한다면 그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날 우려가 큰 것입니다. 

  이 : 과거 팀이 효율보다는 분배와 공평을 더 중시했다면, 이번 팀은 성장 등 효율을 보다 중시하는 정책 방향으로 조정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단지 성장 정책의 내용에 따라서는, 너무 조급한 나머지 잘못 택할 경우 문제가 있겠지만, 총수요 진작에만 집착하면 문제가 있고 오히려 총공급 쪽을 개선해주는 쪽으로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또 한가지는 토지공개념, 금융실명제 문제는 어차피 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하여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