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자리 빼앗긴 항만산업
  • 편집국 ()
  • 승인 1990.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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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선사 등 대부분 서울에 본사… 지역경제에 도움 안돼

부산항은 '수출입국'의 상징이자, 세계, 10대 무역국인 한국의 제1관문이다. 이런 명성은 국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세계의 숱한 항구 중에서 컨테이너화물을 6번째로 많이 처리하는 국제적인 항만이다. 부산항을 통해 지난 한해 동안 들어오고 나간 컨테이너화물은 20피트짜리 단위로 2백15만9천개로서, 이는 국내 전체의 94.8%에 해당된다. 컨테이너에 넣어 수출입되는 화물은 거의 부산항을 거친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막강한 항구를 끼고 있는 부산의 경제는 해운항만 경기만으로도 흥청거릴 수 있을 법하다. 지난해 9월 부산지방 해운항만청이 연구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부산항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평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8년도를 기준으로 부산의 모든 취업인구 중 27.7%인 33만4천6백91명이 해운항만 관련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이들의 연간소득액은 전체 취업인구 소득의 20.7%에 해당되는 1조9천억원에 이른다. 또 이들 관련산업의 그해 부가가치는 부산시 총 부가가치액의 34.2%인 3조1천7백33억원으로 산출됐다. 

  이 보고서를 얼핏 보기에는 해운항만 관련산업으로 부산경제가 지탱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착각은 '책상위 분석'에서 나온 것이다. 그 현실은 참담할 만큼 딴판이다. 

  부산의 딜레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이 보고서에 나타난 해운항만 관련산업의 취업인구와 그 소득비중을 비교해보면, 전체 취업인구에 비해 소득이 7% 포인트 낮아 다른 산업에 비해 불황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요인은 이들 중 대부분이 지사·영업소·하청관리업체의 종사자들이거나 선원이라는 데에 있다. 이와는 다르게 관련산업의 부가가치 비중은 34.4%로 높아 이들 기업이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물론 해운항만 관련산업은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므로 금리와 감가상각 비중이 높아 단순한 계산을 순이득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렇지만 이런 부가가치는 부산경제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이들 관련산업 중 굵직한 해운선사 조선기업·하역육운업체 등이 모두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이어서 부산경제와는 애당초 거리가 멀다. 

  해운선사들이 서울에 몰린 이유는 70년대 정부가 무모한 선복량 증강정책을 펼 때, 당국으로부터 선박도입 인가를 얻어내고, 외국돈을 빌어쓰기 위해서는 '관청과 은행주변에서 움직여야 했던' 정경유착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서울로 옮긴 선사들은80년대 불황을 겪으면서 선적화물을 확보하려면 대기업 본사 주변에 눌러앉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렇게 해서 한국해운산업은 서울에 터를 잡은 '내륙산업'으로 변하게 되었다.

 

해양관련 기업은 대부분 부산을 떠나 

  70년대 초까지 부산의 주력 중공업으로 꼽혔던 조선산업은 땅 부족 때문에 경남 거제도로 본거지를 옮겨갔고, 한때 법정관리로나마 부산기업으로서 명맥을 유지했던 조선공사도 논란끝에 한진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부두하역산업은 해운화물이 컨테이너화되면서 정부투자기업으로 운용돼, 일거리를 잃어 고전하고 있다. 육운산업은 육·해·공을 연계해 운송하는 복합서비스체제가 세계적인 추세로 되어가고 있는데, 그 체제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영세한 지방기업의 역할은 부산경제권역내의 화물을 옮겨주는 데 그치고 있다. 여기에다 제주· 목포·여수·충무 등지를 연결해 70년대 초까지 호황을 누렸던 연안 여객해운업도 항공 고속도로 등의 교통수단에 손님을 빼앗기면서 늪에 빠져 있다. 

  70년대 중반까지 부산경제를 뒷받침했던 해양관련 산업 중 수산 분야를 제외하면 모조리 부산을 떠났거나 일거리를 서울의 대기업 등에게 빼앗긴 셈이다. 몇년 사이 부산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수산산업이 종전의 어획주력과 함께 가공산업에 투자하면서 공장 지을 땅을 찾아 부산에서 떠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바다산업은 부산의 기업과는 무관하다. 

  올 연말 완공될 3단계 부산항 컨테이너부두의 운영을 맡을 회사가 최근 발족되면서 75%의 민영부문에 부산의 하역업체들이 대기업과 함께 주주로 참여하게 됐다. 부산항만하역협회 김규선사무국장은 "업계의 형편이 당장 나아질 것은 없으나 항만의 민영화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데에는 만족한다"고 밝혔다.

  부산항은 부산시민들의 문전옥답이다. 그러나 부산항이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쉼없이 드나드는 대형차량들에 의해 교통체증마저 일으키게 하고, 둘러쳐진 철조망으로 시민을 멀리하는 '금단의 구역'으로 남아 있는 한 귀찮은 존재밖에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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