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떨어질 자유도 없나”
  • 이흥연 기자 ()
  • 승인 1990.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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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갑구 郵鎬溶 후보사퇴의 배경과 의미

 “이기면 명예회복, 지더라도 정치생명에는 지장없다. 그러나 후보사퇴로 도중하차한다면 명예와 정치생명은 물론 인간 鄭鎬溶도 죽는다." 대구 서갑구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입후보한 정씨가 여권의 집요한 후보사퇴 압력을 받고 있을 때 내세웠던 방어논리였다. 한마디로 "죽는다면 모를까 후보사퇴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호용후보는 결국 사퇴하고 말았다. "나는 떨어질 자유도 없느냐? 단 두 표를 얻더라도 선거에 임하겠다"던 그가 첫 합동유세도 못해보고 도중에 주저앉고 만 것이다. 선거를 통한 명예회복의 기회는 사라져갔고, 정치생명에는 먹칠을 한 셈이 되었으며, 애초 입장에 변함이 없다면 '인간 정호용'도 죽어버린 것이다.

 

초호화 배역의 정치 드라마

  그의 후보등록부터 사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다. 우선 드라마에 출연한 인물들의 면면이 초호화급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국방부장관과 안기부장 등 권력 핵심부 인사와 申鉉碻전총리, 金埈成전부총리, 鄭壽晶전대한상의의장 등 정·재계의 거물급들이 총출동했다. 서울의 청와대와 대구의 선거전 현장이 주요 배경이었다. 심야의 어둠을 뚫고 서울-대구간을 초고속으로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고뇌의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 등 극적인 장면도 연출되었다. 후보 부인의 자살기도 사건은 드라마의 절정을 이루었다

  그의 사퇴 가능성을 알린 전주곡은 지난 3월14일 盧대통령과 정후보의 1차 만남. 후보등록을 이틀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이때부터 그의 심경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그리고 후보등록 마감일인 16일 오전 부인 金淑煥씨의 자살기도 사건이 터졌다. 김씨의 자살기도 파문은 온갖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김씨는 노대통령에게 "대통령 각하! 용서하여 주십시요. 이 미련한 여자 남편과 가정을 망쳤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고 정호용 주위 모든 분들도 용서하여 주셔요. 꽃님 엄마"라는 글을 남겼고, 가족에게는 "끝까지 선전분투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무엇을 용서해달라는 것인지, 왜 자신이 남편을 망쳤다는 것인지 이 글만으로는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이틀전 남편 정씨가 극비리에 서울로 가서 대통령과 만나고 왔다는 사실과 사퇴종용을 받은 뒤 정씨가 심정의 동요를 일으켰을 것이라는 점을 참고해보면 김씨의 글은 비로소 앞뒤가 맞게 된다. 즉, 정씨가 출마포기의 기미를 보이자 김씨가 이를 막기 위해 자살이라는 '극약요법'을 쓴 것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정씨는 그날 오후 뒤늦게 후보등록을 마쳤고 병원에서 퇴원한 부인 김씨와 함께 선거전에 뛰어들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후보사퇴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열흘만에 이 말은 空言이 되고 말았다

  토요일인 24일 밤 鄭鎬溶씨 부부는 서울에 올라가 청와대에서 노대통령과 만나고 있었고, 노대통령과의 이 두번째 만남은 정씨의 사퇴결심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다음날 대구에 도착한 정씨는 선거사무실에 나타나 한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서울에서 대통령을 뵙고 왔습니다"라는 첫마디를 꺼냈고, 이어 "대통령으로부터 사퇴종용을 받았습니다"라고 했다. 첫 합동유세가 시작되기 20분전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26일 정씨는 후보를 사퇴했다.

  정씨는 후보를 사퇴함으로써 지난해 의원직 사퇴후 정계 재진출을 시도했다가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두 차례 모두 자진사퇴의 형식을 밟긴 했지만 실제로는 외압에 의해 밀려난 셈이고, 두 경우 모두 노대통령과의 '한판 겨루기' 끝에 정씨의 일방적인 '패해'로 끝나고 말았다는 뒷얘기를 남겼다.

  여권은 이번 대구선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선거사상 보기 힘든 희대의 선거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씨는 '죽음'을 걸고 일전을 불사하겠다고 나섰고, 여권은 그런 정씨를 밀어내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다. 위로는 대통령에서부터 아래로는 민자당 소속 40여명 국회의원들을 선거사무원으로 등록시켜 총가동하는 총성없는 물귀신작전을 펼쳤다.

 

사퇴 반대급부 설왕설래

  이처럼 여권내 집안싸움이라는 명예스럽지못한 '추태'를 연출하면서까지 극한 대결의 양상으로 치달아야 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외부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입후보했다가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으면서까지 후보사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씨의 사정은 또 무엇인가?

  여권은 정씨의 당락을 중요시했다기보다는 그의 입후보 자체를 묵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5공 인적청산의 상징으로 여권에서 '방출'된 정씨가 5공 정권기간중 대구에서 다시 출마한다는 사실 자체가 여권 입장에서 볼때는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우선 5공청산의 의미가 희석될 공산이 크다. 또 대구는 이른바 TK의 본거지로서 현여권의 지역적 통치기반이다. 권력의 지역적 핵심 지지기반에서 내분이 일어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 보궐선거는 민자당 탄생 이후 처음 치르는 선거인 만큼 3당통합의 명분을 시험받는 일종의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정씨의 입장에서는 원했든 원치 않았든 여권과 정면대결, 나아가서는 권력 핵심부에 정면으로 도전한 셈이었다. 그는 부인의 '자살기도'라는 극한상황을 경험했다. 이번 선거의 당락에 관계없이 정치인으로서 시한부 '정치생명'을 살고 있다는 판단도 했음직하다. 결국 그는 육사 동기생이자 오랜 친구인 노대통령과의 두차례 면담 끝에 사퇴를 결심했다. 지난해 의원직을 사퇴할 때도 그는 끝까지 버티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물러섰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씨가 주장했던 것은 명예회복이다. 노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은 정씨의 발목에 족쇄를 채운 대신 어떤 형태로든 명예회복의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정씨의 장기외유나 대사등 공직기용설, 14대 총선 출마보장설 등이 거론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씨의 후보사퇴는 정씨 자신의 정치적 입지 약화라는 측면보다 여권의 도덕성 또는 노대통령 개인에 대한 정치도의에 적지 않은 흠집을 남긴 것이 틀림없다. 권력의 비정함을 논하기에 앞서 전체 국민을 담보로 한 '정치라는 이름의 권력놀음'의 비도덕성이 먼저 거론되기 때문이다.  李興煉 기자

“나는 떨어질 자유도 없나”

대구 서갑구 郵鎬溶 후보사퇴의 배경과 의미

  “이기면 명예회복, 지더라도 정치생명에는 지장없다. 그러나 후보사퇴로 도중하차한다면 명예와 정치생명은 물론 인간 鄭鎬溶도 죽는다." 대구 서갑구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입후보한 정씨가 여권의 집요한 후보사퇴 압력을 받고 있을 때 내세웠던 방어논리였다. 한마디로 "죽는다면 모를까 후보사퇴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호용후보는 결국 사퇴하고 말았다. "나는 떨어질 자유도 없느냐? 단 두 표를 얻더라도 선거에 임하겠다"던 그가 첫 합동유세도 못해보고 도중에 주저앉고 만 것이다. 선거를 통한 명예회복의 기회는 사라져갔고, 정치생명에는 먹칠을 한 셈이 되었으며, 애초 입장에 변함이 없다면 '인간 정호용'도 죽어버린 것이다.

 

초호화 배역의 정치 드라마

  그의 후보등록부터 사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다. 우선 드라마에 출연한 인물들의 면면이 초호화급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국방부장관과 안기부장 등 권력 핵심부 인사와 申鉉碻전총리, 金埈成전부총리, 鄭壽晶전대한상의의장 등 정·재계의 거물급들이 총출동했다. 서울의 청와대와 대구의 선거전 현장이 주요 배경이었다. 심야의 어둠을 뚫고 서울-대구간을 초고속으로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고뇌의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 등 극적인 장면도 연출되었다. 후보 부인의 자살기도 사건은 드라마의 절정을 이루었다

  그의 사퇴 가능성을 알린 전주곡은 지난 3월14일 盧대통령과 정후보의 1차 만남. 후보등록을 이틀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이때부터 그의 심경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그리고 후보등록 마감일인 16일 오전 부인 金淑煥씨의 자살기도 사건이 터졌다. 김씨의 자살기도 파문은 온갖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김씨는 노대통령에게 "대통령 각하! 용서하여 주십시요. 이 미련한 여자 남편과 가정을 망쳤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고 정호용 주위 모든 분들도 용서하여 주셔요. 꽃님 엄마"라는 글을 남겼고, 가족에게는 "끝까지 선전분투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무엇을 용서해달라는 것인지, 왜 자신이 남편을 망쳤다는 것인지 이 글만으로는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이틀전 남편 정씨가 극비리에 서울로 가서 대통령과 만나고 왔다는 사실과 사퇴종용을 받은 뒤 정씨가 심정의 동요를 일으켰을 것이라는 점을 참고해보면 김씨의 글은 비로소 앞뒤가 맞게 된다. 즉, 정씨가 출마포기의 기미를 보이자 김씨가 이를 막기 위해 자살이라는 '극약요법'을 쓴 것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정씨는 그날 오후 뒤늦게 후보등록을 마쳤고 병원에서 퇴원한 부인 김씨와 함께 선거전에 뛰어들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후보사퇴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열흘만에 이 말은 空言이 되고 말았다

  토요일인 24일 밤 鄭鎬溶씨 부부는 서울에 올라가 청와대에서 노대통령과 만나고 있었고, 노대통령과의 이 두번째 만남은 정씨의 사퇴결심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다음날 대구에 도착한 정씨는 선거사무실에 나타나 한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서울에서 대통령을 뵙고 왔습니다"라는 첫마디를 꺼냈고, 이어 "대통령으로부터 사퇴종용을 받았습니다"라고 했다. 첫 합동유세가 시작되기 20분전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26일 정씨는 후보를 사퇴했다.

  정씨는 후보를 사퇴함으로써 지난해 의원직 사퇴후 정계 재진출을 시도했다가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두 차례 모두 자진사퇴의 형식을 밟긴 했지만 실제로는 외압에 의해 밀려난 셈이고, 두 경우 모두 노대통령과의 '한판 겨루기' 끝에 정씨의 일방적인 '패해'로 끝나고 말았다는 뒷얘기를 남겼다.

  여권은 이번 대구선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선거사상 보기 힘든 희대의 선거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씨는 '죽음'을 걸고 일전을 불사하겠다고 나섰고, 여권은 그런 정씨를 밀어내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다. 위로는 대통령에서부터 아래로는 민자당 소속 40여명 국회의원들을 선거사무원으로 등록시켜 총가동하는 총성없는 물귀신작전을 펼쳤다.

 

사퇴 반대급부 설왕설래

  이처럼 여권내 집안싸움이라는 명예스럽지못한 '추태'를 연출하면서까지 극한 대결의 양상으로 치달아야 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외부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입후보했다가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으면서까지 후보사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씨의 사정은 또 무엇인가?

  여권은 정씨의 당락을 중요시했다기보다는 그의 입후보 자체를 묵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5공 인적청산의 상징으로 여권에서 '방출'된 정씨가 5공 정권기간중 대구에서 다시 출마한다는 사실 자체가 여권 입장에서 볼때는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우선 5공청산의 의미가 희석될 공산이 크다. 또 대구는 이른바 TK의 본거지로서 현여권의 지역적 통치기반이다. 권력의 지역적 핵심 지지기반에서 내분이 일어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 보궐선거는 민자당 탄생 이후 처음 치르는 선거인 만큼 3당통합의 명분을 시험받는 일종의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정씨의 입장에서는 원했든 원치 않았든 여권과 정면대결, 나아가서는 권력 핵심부에 정면으로 도전한 셈이었다. 그는 부인의 '자살기도'라는 극한상황을 경험했다. 이번 선거의 당락에 관계없이 정치인으로서 시한부 '정치생명'을 살고 있다는 판단도 했음직하다. 결국 그는 육사 동기생이자 오랜 친구인 노대통령과의 두차례 면담 끝에 사퇴를 결심했다. 지난해 의원직을 사퇴할 때도 그는 끝까지 버티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물러섰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씨가 주장했던 것은 명예회복이다. 노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은 정씨의 발목에 족쇄를 채운 대신 어떤 형태로든 명예회복의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정씨의 장기외유나 대사등 공직기용설, 14대 총선 출마보장설 등이 거론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씨의 후보사퇴는 정씨 자신의 정치적 입지 약화라는 측면보다 여권의 도덕성 또는 노대통령 개인에 대한 정치도의에 적지 않은 흠집을 남긴 것이 틀림없다. 권력의 비정함을 논하기에 앞서 전체 국민을 담보로 한 '정치라는 이름의 권력놀음'의 비도덕성이 먼저 거론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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