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가 미워하는 자의 죽음
  • 정희상 기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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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뮴중독 ‘이타이 이타이’병 환자 속출…당국, 직업병 인정 거부·은폐 급급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에는 정부가 인정해주지 않는 ‘괴질’로 4년째 죽음의 공포 속에 시들어가는 한 젊은 근로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심문보씨(33). 퀭한 눈에 비쩍 마른 몸, 온몸에 도드라진 붉은 혹은 그가 심상치 않은 병마에 오랫동안 시달리고 있음을 금방 알려준다.

“양심을 걸고 카드뮴중독의 심각함을 밝힐 의료진이 나선다면 제 한몸 기꺼이 생체실험용으로 내놓겠습니다.”

비장함마저 서린 그의 이 말은 지난 4년간 망가진 몸을 이끌고 카드뮴중독의 직업병 인정을 요구하며 노동부와 지정의료진, 회사측을 상대로 뛰어다니다 겪은 ‘절망’의 다른 표현이다. 심씨가 카드뮴중독으로 쓰러진 것은 88년 1월경. 울산시 여천동 (주)송원산업에서 납과 카드뮴을 혼합 분쇄하는 작업을 맡았던 그는 갈수록 하체가 마비되고 복통이 심해지는 증상을 견디지 못하고 급기야 쓰러졌다. 회사측은 심씨를 바로 카드뮴을 쓰지 않는 공정에 바꿔 배치했으나 건강이 날로 악화되자 몇달 후 권고해직시켰다.

당시까지 카드뮴의 유해성을 전혀 몰랐던 심씨는 88년 9월 노동부에서 실시한 ‘직업병 일제 신고기간’에 자신의 증상을 울산지방노동사무소에 신고했다. 노동부 지정병원인 동해산업보건센터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납은 혈중 농도가 1백㎖당 51㎍(마이크로그램), 카드뮴은 1ℓ당 2백75㎍이 나왔다. 법적으로는 납과 카드뮴중독으로 판정돼 요양치료 조처를 취해야 할 수치였다. 그러나 노동부측은 심씨를 ‘요주의자’라고 판정한 후 6개월 뒤 다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관절과 하체의 극심한 마비 증세를 견디다 못한 심씨는 88년 가을 부산 백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소견서를 발부해주지 않고 심씨를 그냥 돌려보냈다.

그가 백병원 검사결과를 알게 된 것은 진료후 1년이 훨씬 지난 89년 12월경이었다. “납 및 카드뮴과의 연관관계를 밝히고 이에 대한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됨”이라 적힌 백병원 이모 의사의 소견서는, 엉뚱하게도 나중에 심씨의 카드뮴중독 인정을 거부하도록 노동부에 자료를 넘긴 순천향병원 이병국 박사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심씨가 노동부 지정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직후 노동부측은 심씨와 같은 부서에서 작업했던 12명의 송원산업 분체2반 근로자들을 검진, 요양이 요구되는 심각한 진료결과가 나왔는데도 이를 몰래 회사측에만 통보한 사실이 밝혀졌다.

89년 6월 송원산업 노조의 파업중 한 이사의 책상서랍에서 발견돼 취재진이 압수한 이 자료에는 12명의 근로자 중 7명이 심씨와 마찬가지로 납 및 카드뮴중독 증상이 나타나 산재처리와 요양을 하도록 돼 있고, 나머지 4명은 요주의 대상자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이 검진결과는 당사자들에게 전혀 통보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7명 중 산재처리를 받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근로자가 직업병을 인정받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한 심씨는 노동부와 지정 의료진을 무조건 믿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저를 검진했던 부산 백병원 이모 의사를 만나 1년 전에 진단결과를 알려줬더라면 직업병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 왜 제3자에게 불법적으로 그 결과를 넘겼느냐고 따졌더니 그제서야 납중독 소견서만 써주더군요. 카드뮴중독에 대해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면서 포기하고, 조용한 산골로 들어가 좋은 공기 마시다 죽게 되면 카드뮴 연구를 위해 사체를 의학계에 기증하라는 거예요. 너무 기가 막혀 이때부터 품속에 소형 녹음기를 감추고 노동부와 지정병원 의료진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심씨가 노동부측에 계속 카드뮴중독 요양신청을 하자 울산지방노동사무소는 다시 순천향의대 산업의학연구소에 검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순천향의대 이병국 박사는 납중독 검사만 한 채 카드뮴은 검사를 누락시키고 ‘정상’이라는 결과를 통보했다. 이에 심씨가 다른 병원의 검사결과들을 가지고 가 체내의 카드뮴 축적 수치를 들이밀자 이병국 박사는 “미안하지만 나는 납중독 전문의”라면서 검진의 애로사항만 늘어놓았다. 심씨가 취재진에게 제출한 녹음테이프에는 카드뮴중독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노동부측 관계자와 해당 의료진의 이같은 ‘고충’의 표현이 그대로 담겨 있다.

결국 노동부직업병판정심의위원회가 심씨의 카드뮴중독을 인정하지 않자 그는 녹음테이프 등 모든 자료를 활용해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생명이 사위어감을 느끼는 심씨는 직업병 판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치료와 요양도 제대로 못한 채 비정한 사회를 원망하고 있다.

최근 심씨를 진찰한 울산 현대정공 부속병원장 신인식 박사(예방의학)는 “진료결과와 여러 증상으로 보아 심문보씨는 한국 최초의 카드뮴중독자이다. 작업장을 떠난 지 오래된 현재는 여러 증세로 보아 그의 신장과 뼈 속에 카드뮴이 다량 축적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정식 직업병 인정 한건도 없어

카드뮴은 생산량의 90%이상이 철강제 도금용으로 쓰이는 중금속으로, 인체에 흡입될 경우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유해물질이다. 1929년에서 1946년 사이 일본에서 아연·납 광산에서 흘러나온 폐수가 하천을 오염시켜 그 주변에서 자란 농작물을 섭취한 사람들이 걸리게 된 ‘이타이 이타이’(아야 아야)병이 바로 카드뮴중독이었다. 심한 신경통과 골절, 호흡 곤란 등으로 고통이 너무 커 ‘이타이 이타이’병으로 이름 붙여진 이 집단 괴질은 주민 1백23명을 죽음으로 몰고갔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돼가는 요즘 우리나라 산업현장 곳곳에서는 그 카드뮴중독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산업의 발달로 카드뮴사용량이 급증했는데, 전기도금·합금·폐인트·플라스틱 안정제·축전지·도자기·사진 등 각종 분야에 이용돼 많은 노동자들이 카드뮴에 노출돼 있다. 그러나 그 유해성에 대한 홍보와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최근 곳곳에서 카드뮴중독을 호소하는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심문보씨 외에도 부천 건화상사 근로자였던 고상국씨가 지난 88년 카드뮴중독으로 사망했고, 경남 양산의 현대정밀 근로자 윤종일·한상구·이동진씨, 온산공단 내 고려아연 근로자 정성운·김행준씨 등이 모두 전형적인 카드뮴중독 증세로 죽음과 싸우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노동부로부터 정식으로 직업병 인정을 받은 경우는 단 한명도 없다. 사망에까지 이름으로써 사회와 의학계에 큰 충격을 던진 고상국씨의 경우도 의료진과 여론은 카드뮴중독을 인정했으나 노동부는 끝까지 직업병 인정을 거부했다.

극심한 관절통과 호흡 곤란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포기한 채 현재 집에 드러누워 있는 경남 온산공단 고려아연 근로자 정성운씨(37)는 노동부와 회사측의 직업병 인정 거부에 맞서 지난해 미국까지 다녀왔다.

“노동부 지정병원에서 카드뮴중독 검사를 한 뒤 계속 검사결과를 통보해주지 않아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알파메디컬센터를 찾아 갔습니다. 그쪽 전문의는 ‘카드뮴 폭로로 인한 중독’이라는 판정을 내렸어요. 이 소견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더니 외국 의료기관 진단결과라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정씨는 이처럼 직업병 인정을 못받은 채 호흡 곤란과 두통, 관절통으로 신음하는 가운데 지난 5월23일 회사측으로부터 해고통지까지 받고 실의에 빠져 있다.

카드뮴중독에 의한 노동부의 대응태도를 보면 무조건 ‘있어서는 안될 직업병’으로 취급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많은 환자들의 전형적인 카드뮴중독 증상은 외면한 채 ‘비지정병원 판정’ ‘기준치 미달’등을 이유로 직업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노동부에서는 최초로 카드뮴중독으로 인정했던 환자에게조차 언론에 알려져 입장이 곤란해졌다는 이유로 직업병 인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

경남 양산 현대정밀에서 카드뮴 용접작업을 하던 한상구씨와 윤종일씨는 90년 4월 카드뮴 등 중금속 중독증상이 인정돼 노동부로부터 요양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실이 경남지역의 한 언론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자 노동부측은 지난 3월 요양중이던 한씨와 윤씨에게 일방적으로 요양 결정을 취소해 버렸다.

그 결과 치료는 물론 회사측으로부터 나오던 요양급여마저 끊겨 생계가 막막해진 한상구씨는 법원으로 이 문제를 끌고가 소송계류중이다.

현재 카드뮴중독 증상으로 신음하는 근로자 6명은 치료약조차 없이 속수무책으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 간이나 신장, 뼈에 축적된 카드뮴은 30~50년동안 그 양이 줄지 않으면서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전문의들은 이처럼 심각한 카드뮴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근로자가 방진마스크·보호장갑·보호의 등을 사용하고 분진과 흄(증기)이 발생하는 작업장은 국소배기장치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예방대책 외에 노동부는 정기적으로 작업환경을 측정해 카드뮴 관리상태를 점검하고 근로자들에 대한 특수 건강검진을 실시해야 한다.

이제 노동부는 카드뮴중독과 같은 직업병을 감추고 쉬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때이다. 카드뮴중독 증세로 신음하는 근로자에 대한 사회와 의료진의 적극적인 관심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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