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 횡포에 “국민노릇 않겠다”
  • 문정우 기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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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개발법 시행 앞두고 주민 반발 “20년간 묶여온 그린벨트 풀어달라”



대한민국 국민 노릇을 안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시 전체 19개동 중 그린벨트에 묶여 있는 14개동에 거주하거나 땅을 갖고 있는 6만여 주민의 대표들은 지난 8월25일 집회를 갖고 “만약 현재 입법예고된 제주도개발특별법 시행령안이 대폭 수정되지 않으면 정부 산하기관단체장, 통·반장, 선거관리위원직에서 모두 물러날 것이며 아울러 참정권 자체를 포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민연합회 위원장 김병훈씨(농업)는 “정부는 우리의 최소한의 기대마저 묵살했다. 정부가 우리를 동등한 국민으로 대우하기를 끝내 거절한다면 우리도 현정부를 우리의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 앞으로 우리는 정부와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아마도 이번 대선 때는 제주시 태반의 지역에서 한명도 투표를 하지 않는, 해외토픽감의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곳 주민들의 본래 목표는 그린벨트의 완전철폐였다. 지난 73년 그린벨트로 지정돼 20년간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온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그린벨트 철폐를 요구하며 정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실력행사도 불사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다 최근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주거 및 편의 시설의 신축과 개축을 허용한 제주도개발특별법이 통과되자 완전철폐는 아니더라도 그린벨트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막상 입법예고된 특별법 시행령안 내용이 그들의 희망과는 너무 거리가 멀자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언론에서 “눈에 차지도 않는 시행령마저” 대선을 겨냥한 특혜가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하자 주민들은 더욱 발끈했다.

“특혜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20년간 자기 땅에 개집도 마음대로 못짓던 사람들이 이제 집 한칸 지을 수 있게 된 것을 과연 특혜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또 시행령을 보면 이는 주민을 위한 것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 시행령이 통과된다 해도 혜택을 누릴 사람은 소수입니다.”

제 땅엔 개집도 못짓고 남의집살이

연합회 부위원장 문장부씨는 시행령을 만들기 전에 제주도내 각계 전문가 36명으로 구성된 제주도종합개발지원위원회에서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건설부에 안을 제출했지만 그들의 견해는 철저히 무시당했다고 주장한다.

특별법 시행령안은 대상 마을을 20호 이상으로 주택신축 대상을 73년 구역지정 이전부터 거주했던 자의 자녀분가용 25평으로 한정하고 있다. 또 증개축은 35평, 감귤농장 부속사는 15평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공시설의 경우는 동사무소 마을금고 5일시장건물 농·수·축·감귤협회와 신용협동조합의 지소를 지울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주민과 관련된 사항은 당초 위원회가 제안한 것보다 훨씬 축소된 반면 공공시설은 오히려 대상이 늘어났다. 결국 관공서만 운신의 폭이 잔뜩 넓어진 것이다.

“이곳에서 살기가 어려워 집을 팔고 시내에 가서 전세를 살면서 땅만 갖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전혀 혜택을 못받도록 돼 있습니다. 또 20년간 그린벨트 지역 안에서 서로 집을 팔고 산 사람들도 제외됐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아마도 4만명은 될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4·3사건 때 집이 불타버리고 73년 개발제한에 묶여 자기 땅이 엄연히 있는데도 수십년간 남의 집살이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문장부씨는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구제되도록 법이 만들어져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문씨는 또 시행령의 적용 대상이 되는 사람도 대부분 영세민이어서 그들이 토지와 집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는 근본적인 조처가 선행되지 않는 한 어떤 혜택도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린벨트 내에 사는 제주시민들이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도대체 제주도에 그린벨트라는 것이 왜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사실 그린벨트와 제주도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제주도 면적의 절반 이상을 국립공원인 한라산이 차지하고 있어 도시가 팽창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도시민의 휴식공간 마련과 환경보전을 위해 녹지를 더 보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재 제주시 도시계획 면적의 66.8%가 그린벨트에 묶여 있다.

제주시 면적의 상당 부분이 이같이 그린벨트에 묶이게 된 까닭은 간단하다. 73년 당시 담당 공무원이 “도청소재지 부근은 무조건 묶으라”는 정부의 지시에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고 따랐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공무원은 무슨 착각을 했는지 주로 3백~5백년이나 된 자연부락을 모두 그린벨트 구역 안에 포함시켜 버렸다.

제주시 태반이 그린벨트에 묶이게 된 까닭은 이같이 어처구니 없지만 그 영향력은 이곳 주민들의 운명을 뒤바꿔놓을 정도로 엄청났다.

그린벨트 밖의 세상은 눈부시게 발전한 반면 그린벨트 안의 시계는 멈춰버렸다.

그린벨트 안의 주민들은 농사밖에는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20년 전의 가난도 그래도 물려받았다.

“아마도 온세상을 다 뒤져도 한발로는 평당 10만원짜리 땅을, 한발로는 평당 1천만원짜리 땅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곳은 이곳 제주밖에는 없을 겁니다. 한마을에서 오순도순 살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거부가 되고 어떤 사람은 끼니를 걱정하는 신세입니다. 이걸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까.”

도심에서 걸어서 5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살고 있는 개발제한 구역 주민 강재필씨(상업)는 “이제는 더 이상 이같은 모순을 감수하며 살지 않겠다”고 말한다.

사실 제주시의 그린벨트 선정이 잘못됐다는 것은 도의 관계 공무원들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제주도개발특별법추진기획단의 한 관계자는 “제주도의 삼림은 대부분 절대보전지역과 상대보전 지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그린벨트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제주시의 그린벨트가 풀리지 않는 까닭은 과거에는 독재정권 아래서 누구도 부당성을 지적하지 못한 탓이고 요즘에는 육지의 다른 지역 그린벨트 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제주시의 그린벨트를 풀면 다른 지역의 그린벨트 철폐 요구를 뿌리칠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에 정부는 그들의 요구에 대해 귀를 막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결국 제주시민들은 육지 그린벨트의 볼모가 돼 있는 셈이다.

따라서 제주시민들이 ‘독립선언’이란 다소 엉뚱한 길을 택한 것은 그들로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제 중앙정부의 횡포에 넌덜머리가 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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