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는 달고 판매경쟁은 맵다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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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 4사, 1조원 시장 놓고 끝없는 소모전…제품 차별화가 살길



과자는 달콤하지만 업계의 과자전쟁은 그 정반대이다. 백화점이나 대형 유통회사의 슈퍼마켓에는 각 제과업체에서 파견한 판촉 여사원들이 있다. 판촉 여사원들은 슈퍼마켓의 제복을 입고 있으나 월급은 각자 자기가 속한 회사에서 받는다. 이들은 자기 회사제품이 소비자 눈에 더 잘 띄도록 진열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이따금씩 남의 것이 못나 보이도록 ‘핀침’을 놓기도 한다. 감자스낵 등 내용물이 부스러지지 않도록 공기를 빵빵하게 채운 포장지에 핀으로 구멍을 내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기네 제품에 ‘핀침’을 놓는 경우도 있다. 판촉 여사원들은 제한된 진열공간에 되도록 많은 과자를 진열하기 위해 기발한 작전을 편다. 사탕처럼 부서지지 않는 제품의 포장지를 뚫어 공기를 빼내면 10개 쌓을 공간에 15개도 쌓아놓을 수 있다.

제과업계는 판촉 여사원을 유통업체에 파견근무시키지 말라는 당국의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으나 그같은 관행을 없애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유통업이 아직 성숙하지 못해 ‘내 식구’가 매장에 나가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치열한 자존심 겨루기…법정대결도 불사

롯데 해태 동양 크라운 등 제과 4사의 경쟁은 치열하다. 이들 4개 회사는 건과와 스낵시장을 앞에 놓고 정면충돌하고 있다. 건과는 비스킷 초콜릿 사탕 껌 등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한편 4~5년 전부터 소비자의 취향이 스낵쪽으로 옮아가는 경향을 보이자 제과 4사는 스낵 시장에도 적극 나서 지난 20여년간 그 분야의 아성을 지켜오던 농심과의 경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제과 4사의 경쟁은 87년 동양제과가 스낵 전문회사인 오리온프리토레이를 따로 설립하면서부터 가속화됐다. 오리온프리토레이는 동양제과로부터 오징어땅콩을 넘겨받는 한편 미국 펩시콜라 계열의 프리토레이와 합작해 치토스를 생산했다. 동양제과측은 과감한 판촉전략을 폈다. 과자봉투 속에 경품이 든 스티커를 넣어 당첨되면 한봉지 더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판촉 덕에 치토스는 우리나라 스낵의 원조격인 농심 새우깡의 자리를 넘볼 만큼 매출이 급신장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사행심을 조장하는 판촉행위”라고 비난하지만 동양제과측은 이를 극구 부인한다. “사행심이란 복권처럼 돈을 날릴 각오로 큰 이득을 노려 승부를 거는 것인데 치토스 경품은 돈의 가치만큼 과자를 먹고 플러스 알파를 얻는 것이니 사행심 조장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동양제과측은 치토스가 새우깡을 따라잡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농심측은 “일일이 대꾸할 필요를 못느낀다”면서 “새우깡의 매출액은 월 25억~26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농심측은 “동약제과측의 젊은 경영과 치토스의 상품력을 인정한다”면서 “치토스는 새우깡에 버금가는 제품”이라고 평가해 1위의 자존심을 드러내 보였다.

업체간 경쟁은 법정으로 옮아가기도 했다. 지난 90년 2월 롯데제과와 동양제과는 상표권을 놓고 법정싸움까지 벌인 바 있다. 롯데측은 84년 ‘훌라보노’라는 상표를 등록했으나 이를 상품화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동양제과측이 89년 12월 후라보노껌을 내놓자 롯데측은 사표권 침해행위 중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서울 민사지방법원은 90년 4월30일 이 신청을 기각했다. 후라보노껌은 현재 롯데 동양 두 회사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에 앞서 두 회사는 오징어땅콩과 초코파이의 의장권 문제로 법정소송을 벌인 바 있었다.

89년 이후 3년간 국내 과자시장은 연평균 20%이상 성장했다. 이는 3저호황으로 인해 소비 수준이 향상된 덕분이었다. 고급스러워진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값비싼 새 과자가 개발되면서 과자시장은 1조원이 넘는 규모로 부풀었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부터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하고 생산도 과잉상태이기 때문에 남이 점유하고 있는 시장을 빼앗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들게 됐다.

중량 줄이기로 ‘편법 가격 인상’

시장상황이 썩 좋지 않은데다 업종 자체가 수익률이 낮아 기업간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1원떼기 장사’라고 할 만큼 이문이 박해 기업이 일정 규모의 매출을 확보하지 못하면 버틸 수 없다. 1백~2백원짜리 과자는 한봉지를 팔아봤자 얼만 남지도 않거니와 과자값에 물가를 반영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해태제과 소비자상담실 金仁浩 실장은 “가령 원부자재값과 인건비가 올라 10%의 가격상승 요인이 있다 해도 1백원이던 과자값을 1백10원으로 올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1백원이면 1백원, 2백원이면 2백원이지 과자에 어중간한 가격은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10원 단위로 가격이 매겨지면 구멍가게 주인이 거스름돈을 거슬러주기 귀찮아지는 것은 물론 과자를 사러 오는 코흘리개도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대신 업계에서는 중량을 줄이는 편법을 쓴다.

우리나라 스낵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새우깡의 가격변화를 살펴보자. 새우깡이 처음 나온 71년 12월 1백g들이 한봉지에 50원이었다. 10년이 지나 80년 4월 새우깡은 값이 4배로 껑충 뛰어 2백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 뒤 10년 동안 새우깡 가격은 그대로인 채 중량만 1백g에서 85g으로 줄었을 뿐이다. 업계에서는 “값을 올리지 않기 위해 불가피하게 양을 줄이는 것인데도 소비자단체나 언론에서 너무 호되게 몰아치는 것 같다”고 억울해 한다.

중량 줄이기와 함께 제과업체는 광고를 너무 많이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엄청난 광고비가 결국 소비자에게 떠넘겨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오리온프리토레이 마케팅부 吳日鎬 부장은 “코묻은 돈은 쉽게 쓸 수 있는 돈이고, 어린이들은 생각이 변화무쌍해 제품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들의 마음을 오랫동안 붙들어놓을 수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광고를 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작년에 잘 팔리던 과자도 광고를 많이 하지 않으면 매출이 저조해진다는 것이다.

광고를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맛이 없으면 그 제품은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한다. 제과회사들은 사내에 연구소를 설치해 품질을 개선하고 매년 수십개씩 신제품을 쏟아낸다. 그러나 반짝 했다가 사라지는 과자가 태반이다. 각 회사의 ‘효자’는 5~6가지에 불과하다(75쪽 표 참조). 이들 주력상품은 자사 과자 매출액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과자의 생명주기는 갈수록 짧아지는 경향을 보이지만 제품력이 우수한 과자는 20년 이상 장수하기도 하며 이런 제품이야말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크라운제과의 경우 80년대 초반 크라운산도를 내놓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매출이 보잘 것 없던 크라운제과는 크라운산도 하나로 4대 제과사의 대열에 낄 수 있었다. 동양제과 마케팅부 金興載 차장은 “6개월~1년짜리 단명상품도 있으나 그것은 성의없이 개발했거나 제품을 그냥 내던져놓고 관리를 안했기 때문”이라면서  “소비자의 입맛은 끊임없이 변하므로 과자의 맛도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제품 개발의 부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 일단 신제품을 내놓으면 물건을 많이 깔아놓을 수 있고 소비자들도 호기심에 한번쯤은 사게 되므로 단기적 매출증가를 올릴 수 있다. 이 점을 노려 정성이 덜 담긴 신제품을 생산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제과업계가 매출을 올리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놓는 상품으로 소물류 또는 소물 완구류라는 것이 있다. 포장 크기가 앙징맞게 작은 과자나 장난감을 끼워주는 과자 따위는 어린이를 유인하는 미끼다. 그러나 이런 제품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크라운제과 전략기획부 崔相哲 부장은 “소물류나 소물 완구류는 단기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에 오래전에 생산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제과사들 경영합리화 고심

제과업체는 밖으로 경쟁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군살빼기에 여념이 없다. 해태제과는 올해 물류비용을 19억원 줄인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해태제과뿐 아니라 제과업계 전부가 물류 합리화를 시급한 해결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공장에서 전국에 퍼져 있는 지사로 과자를 실어나르는 8t트럭에 스낵류를 가득 채울 경우 4백만원어치는 실을 수 있다. 부피가 좀 작은 비스킷이나 사탕 등은 6백만원어치쯤 싣는다. 그러나 가전제품이라면 같은 8t트럭에 6천만~7천만원어치는 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계산이다.

더구나 제과 판매조직은 전국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다. 현재 전국에는 약 12만개의 소매점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제과업체는 8만개 가량의 점포와 거래를 하고 있다. 각 영업소의 직원들은 이 소매점들을 일일이 방문하여 물건을 배달하고 대금을 수금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과업계에서는 물류비용이 다른 업종에 비해 10배 이상 들 것이라고 말한다. 제과업계는 유통단계를 줄이는 등 물류비용 절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제는 외국과자와 싸울 힘 기를 때”

한편 제품관리의 합리화로 재고를 줄이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나중에 배달된 과자를 밑에 진열하고 먼저 갖다놓은 과자를 위에 올려 놓으면 손님에게 늘 바삭바삭한 과자를 공급해줄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손님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은 구석에 과자를 처박아두면 그 과자는 몇 달이고 묵었다가 결국 재고로 쌓이는 것이다.

한국의 제과업계는 과자를 거의 수출하지 못하고 있다. 밀가루 설탕 분유 등 원재료의 90%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외국산 과자와 경쟁할 조건이 안되는 측면도 있다. 롯데제과 마케팅실 林鍾吉 계장은 “초콜릿의 경우 원료를 들여올 때 관세를 물고 그 원료로 초콜릿을 만들면 또 특별소비세를 내야 한다”면서 “원가의 20%를 세금으로 물기 때문에 외국 초콜릿과 도저히 경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제과업계 일각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의 신제품을 90% 이상 베껴먹는 관행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일부 독과점 품목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가격규제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업계의 출혈을 가져온다는 지적도 있다. 한 예로 꽤 이름이 알려졌던 한 초코바의 경우 원가상승 요인 때문에 가격을 올려야 했지만 그것이 허락되지 않아 결국 기존의 이름을 버리고 새 상품으로 대체했다. 그 바람에 광고비도 몇배나 더 들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굴지의 제과업체들이 코묻은 돈을 놓고 벌이는 경쟁은 끝없는 소모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피나는 경쟁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품질 및 가격 경쟁력 강화로 발전시키지 못한다. 크라운제과 최상철 부장은 “제과업체끼리 정면충돌하기보다는 제품 차별화를 통해 공존의 길을 모색하면서 외국과자와 싸울 힘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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